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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캣 Jul 17. 2022

#8 율리시스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북카페 피터캣, 8년의 기록

#8 율리시스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신기한 일이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율리시스>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로 먹고 사는 북카페가 있다는 것이.  


내 추억에는 <율리시스>가 먼저다. 그때 난 대학생이었고, 대학생이니까 <율리시스>를 샀고, 첫 페이지 다섯 줄까지 읽고 아, 이건 안되겠다 싶어 포기했다. 당시에도 뭔가 느낌이 서늘했는지, 평소 전집을 지르는데 망설이지 않고, 심지어 어떤 쾌감마저 느끼던 내가 이 책 만큼은 네 권 중에서 일단 한 권만 구입 했고, 그때 한 권만 구입한 걸 지금까지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 후 수십년 동안 짊어져야 할 부담이 네 배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이미 눈치챘기때문일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흐른 다음이다. 2012년이 끝나갈 무렵 드디어 이 책이 직역본으로 출간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심지어 김희영 번역가님의 이름이 들렸을 때, 그리고 이 작업에 총 10년이 걸릴 예정이라는 정보까지 접했을 때, 드디어 때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12년에 시작한 독서가 2022년에 마무리 된다면, 물론 때론 조급증에 시달리기도 하겠지만, 하지만 이 위대한 작품을 10년 동안 읽고 나면, 10년 뒤의 나는 크게 달라져 있을 것이라는 (당시에는) 몹시 합리적인 기대와 함께 1권을 펼쳤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출근길 지하철 내부는 일종의 중간계 같은 세계다. 잠들어 있지도, 깨어 있지도 않은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 내 경우라고 다를 리 없다. 그래도 평소에는 하루키도 읽고 심지어 지하철에서 단테의 신곡도 읽은 자라 자부하고 있었지만 이 책은 경우가 많이 달랐다. 자꾸만 감기는 눈과 싸우며 1권과 2권을 꾸역꾸역 읽고 난 후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자신을 바라보며, 나 다시 태어나리라, 다짐했다. 


나만의 북카페에서 도스토예프스키 네 작품을 연달아 읽고 충만한 자신감 속에서 먼저 펼친 책은 역시 <율리시스>였다. 생각보다 오래 살 수도 있고, 그러면 다시 볼 기회는 충분할 테니 일단 처음에는 가능한 하루 백 페이지 씩 읽자고 다짐했다. 그런 독서법은 문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괜찮지만 읽으면서 딴생각을 하지 않는게 중요했다. 이해되는 문장은 왜 이해가 되는지, 또 이해하지 못하는 문장은 왜 이해하지 못하는지 이유를 새기면서 읽어야 했다. 그래야 다음에 볼 때 어느 정도라도 나아질 수 있다. 벌써 주말은 바빠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주말은 제외하고 주중에 부지런히 읽으면 한달 정도면 가능할 것 같았다. 당시에는 텅 빈 시간을 채우고, 또 내가 자영업에 뛰어든 진정한 이유를 찾으려는 시도였지만 그것이 결국 피터캣을 어떻게 바꿔 놓을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두 달 가까이 걸리긴 했지만 결국 완독에 성공했다. 너그럽게 판단해도 전체 작품의 10% 정도 이해한 것 같으니 완독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는 부끄럽지만 다음 기회가 있을 것이고, 직장인이라면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을 해낸 것은 분명하니 그것만으로도 뭔가 증명한 것 같아 만족감은 더할 나위 없었다. 마치 떨어져 죽을 걸 알면서도 아버지가 만들어준 날개를 달고 태양을 향해 날아올랐던 이카로스 처럼. 진부한 비유라 할지도 모르겠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 중 한 명이자 작가의 분신인 스티븐 데덜러스의 이름은 이카로스의 아버지 다이달로스에서 가져왔다. 


지금은 <율리시스>를 일곱 번째 읽고 있다. 이 작품으로 세번째 온라인 모임을 진행 중이고, 또 얼마 전에는 총 스무 개의 유튜브 영상을 만들어 올리기도했고, 또 그것을 통해 여러 새로운 사람들 과의 만남이 생겨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처음의 10%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제임스 조이스 다음은 당연히 프루스트였다. 당시에는 이미 6권까지 번역이 되었기 때문에 더 여유를 갖고 천천히 읽어갔다. 다행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율리시스>와는 달리 집중해서 읽으면 어느 정도 이해는 되는 작품이다. 다만 모든 것이 너무 길 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화자는 자신의 지난 날을 집요하게 탐구하고 관찰한다. 안 그래도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 자주 과거를 돌아보게 되는데, 처음에는 잊고 있던 기억들을 마주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작가 프루스트의 말처럼 잊고 싶은 과거 또한 내 소중한 일부분이고, 그것까지 받아들여야 완전한 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으로 살아간다는 생각, 그건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다. 일단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이라는 의미를 분명하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 방법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읽는 수밖에 없다. 고 말해도 무방할 것 같다. 


예정대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올해 말 마지막 편인 <되찾은 시간>이 출간될 예정이다. 지금까지 출간된 열 한권의 책들 또한 10년 전의 바람대로 손때가 잔뜩 묻을 정도로 여러 번 읽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10년 뒤의 나는 많이 달라졌다. 안타깝게도 성격이 좋아졌다 거나 인격이 고양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처음으로 온전한 나 자신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그동안 모른 척 살았던 진정한 나 자신을 만나, 눈을 맞추고, 대화하고, 화해하고, 함께 걸어갈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건 정말 끝내주는 경험이다. 게다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모임은 피터캣 독서모임을 상징하는 모임이 되었다. 



재미있는 이야기로 마무리 할까 한다. 

겨울에 시작한 <율리시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읽기는 여름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그리고 어느새 피터캣은 꽤나 인기있는 북카페가 되어 있었다. 점심 시간에는 직장인들로 북적거렸고, 주말에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광고비 한푼 쓰지 않았는데, 신촌 홍대 주변에서 북카페를 검색하면 가장 먼저 소개되는 장소가 되어 있었다. 신기한 일이다. 나는 그저 나 자신과 대화를 나눴을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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