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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캣 May 28. 2022

#1 프롤로그

북카페 피터캣, 8년의 기록

프롤로그


12시 5분전. 오전 온라인 모임을 마치고 나면 영업시간이다. 봄볕이 아쉽지만 창문 블라인드를 내리고, 물통에 얼음과 물을 채우고, 잠깐 어떤 음악으로 시작할까 고민하다가 어제처럼 쇼팽을 고르고, 자동문 잠금 해제를 하면 영업준비는 끝이다.


2층으로 이사 온 이후로 점심 시간을 맞은 직장인 손님들은 거의 없다시피 하니 마음 쫓길 일은 없다. 노트북 전원을 켜며 ‘그래도 그 때가 심심할 일 없었지’라고 중얼거리며 쓰다 만 원고를 찾는다. 점심시간이면 연신 커피를 추출하면서도 입은 쉴 새가 없었던 것 같다. 그냥 날씨 얘기, 점심 메뉴 얘기였을 뿐인데, 뭐가 그렇게 재미있었을까?


생각하며 파일을 확인하니 유튜브 영상도 벌써 96회차다. 96주. 어떤 의미가 있겠지. 잃어버린 시간 같은 건 없으니까. 어느새 영상 원고가 A4 5백장 분량을넘어서고 있다. ‘그만큼 썼으면 글이 조금 늘어도 될 텐데’ 다시 중얼거리며 절반쯤 쓴 제발트 원고를 다시 훑어보기 시작한다.  


가게를 오픈한지 8년째, 이곳으로 이사 온 지도 벌써 3년째에 접어들고 있다.


원고를 이어가면서 문득 8년전 시작했던 가게와 지금의 피터캣이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많이 바뀐 것 같은데, 기억이 깔끔하지 않다. 유튜브, 책방, 독서모임. 이런 건 분명 오픈 계획에는 없었는데, 그럼 오픈 계획에는 뭐가 있었지?  


가게가 비었을 때는 손님 없는 가게를 혼자 걷곤 한다. 한바퀴 도는데 50걸음 정도에 불과하지만, 음악을 들으며 책과 식물들 사이를 걷는 건 생각보다 기분좋은 일이다. 비 맞을 일도 없고, 심지어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기까지 하다. 물론 가끔은 우산도 쓰고 싶고 땀도 흘려보고 싶지만, 뭐 원하는 걸 다 가질 수는 없으니까. 내가 선택한 것에 집중하자 결심한 것도 오래된 일이다. 오늘도 그렇게 책 사이를 느긋하게 걸으며 생각한다. 시작할 때의 피터캣은 어떤 모습이었고,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고, 결국 무엇이 남았고, 무엇이 사라졌는지. 어떤 가지들이 문득 뻗어 나와 자리를 잡았고, 또 어떤 사람들이 환하게 웃으며 가게 문을 열었는지.


중요한 건 지난 8년동안 일어난 일들을 되짚어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달라진 것에는 다 이유가 있을 터였다. 그 기억들을 하나씩 찾아내어 꼼꼼히 살펴보면 언제 무엇이 시작되고, 또 무엇이 사라지는 식으로 조금씩 변화하면서 지금에 이르게 되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기억을 복원하는 일은 의미가 있을 터였다. 잃어버린 시간 같은 건 없으니까.


그렇게 나는 마들렌도, 비틀즈의 노래도 없이 가물가물한 기억을 찾아 8년전 신촌으로 되돌아갔다.





경의선 책거리  문학 카페/책방 피터캣의  8년을 기록합니다

업데이트는 비정기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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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서대문구 신촌로21 2F 피터캣 (070-4106-3467, 12:00~20:00, 월요일 휴무) 

인스타그램 : @petercat1212 

유튜브 : 채널 피터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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