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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캣 Jun 11. 2022

#3 땡땡거리

북카페 피터캣, 8년의 기록

#3 땡땡거리 


<소극장 산울림>이라는 정식 명칭이 입에 붙지 않아서 늘 <산울림 소극장>이라 부르는 신촌의 극장은 그 중에서도 가장 자주 찾는 곳이었다. 서교동 언덕위 미술학원 거리 끝자락에 있으니 요즘은 홍대 주변이라고 하겠지만, 전에는 같은 이유로 신촌 주변이라고 했다. 나는 전부터 주로 신촌쪽에서 땡땡거리를 따라 오가곤 했기 때문에 그냥 신촌이라 부른다. 그다지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고 하겠다. 


산울림 소극장에서 공연하는 작품들은 저 유명한 <고도를 기다리며>를 비롯해 작품 대부분의 수준이 높았기 때문에, 그저 겸손한 마음으로 프로들의 연기를 감상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연극판이 참 험하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그런 곳에서 수십년을 버텨내어 지금 이렇게 무대를 지배하는 연기자가 되었는지볼 때마다 신기했고, 그 긴 세월동안 연기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을 수 있었는지, 언제나 몹시 궁금했다. 


그런 이유로 땡땡거리는 주말이면 즐겨 찾는 산책 코스가 되었다. 서울과 신의주를 오가던 경의선 기차가 천천히 주택가를 통과할 때, 건널목 차단기가 내려지며 땡땡 소리가 났다고 해서 땡땡거리라 불리는 그곳은 보면 볼수록 신기한 구석이 많은 골목이었다. 


연극을 핑계로 그 골목을 자주 찾던 때는 기차가 더이상 지상으로 다니지는 않았지만, 아직 경의선 숲길 공사가 끝나지 않아서 예전의 기차길은 그냥 넓은 풀밭으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풀밭을 바라보고 있으면 왠지 아직 신입생 티를 벗지 못했던 어느 날, 허름한 야외 술집에 앉아 주택가를 조심스럽게 통과하던 기차와 저 멀리서 땡땡 하는 소리를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저 내 상상이 만들어낸 풍경이었나 싶기도 한 장면들이 떠오르곤 했다. 




저렴한 가격에 술을 아주 많이 마시고 싶은 날이나 그렇게 마시기를 강력하게 원하는 친구나 선배의 손에 이끌려 찾곤 했던 그 시절의 땡땡거리에는 사실 좋은 추억은 없다. 굳이 추억하고 싶지 않은 장면들만 밀도 있게 모여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찌어찌 살아남아 다시 찾게 된 그곳에는 전에는 관찰되지 않았던 수많은 시간의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60년대부터 <고도를 기다리며>를 공연해왔던 산울림 소극장을 비롯해서 마포 껍데기, 헌책방 숨어 있는 책, 김진환 제과점 등 수십 년 된 작은 가게들이 짧은 골목길 여기저기에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 있었는데, 그 모든 풍경이, 어린 시절 추억의 장소들이 아파트 단지로 변해 버린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서울 출신에게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서울 한복판에 이런 장소가 남아있다고? 


그 곳에 자리를 잡은 후 알게 된 땡땡거리의 자세한 역사에 대해서는 나중에 개성 할머니를 통해 직접 들어보도록 하겠다. 


땡땡거리를 자주 찾던 그 시절은 연극을 기다리는 동안 골목 여기저기를 산책하거나, 헌책방 숨어 있는 책에서 하루키 소설의 오래된 판본을 발견하고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기도 하고, 주변 카페에 앉아 책을 펼쳐 들고 오가는 사람을 구경하기도 하면서 시간이 멈춘 하루에 온전히 잠긴 날들이었다. 


그 날도 역시 야외 테이블에 앉아 책과 행인들을 번갈아 감상하던 중이었다. 그러다 문득 ‘왜 이렇게 지나는 사람이 많지?, 이 오래된 좁은 언덕길을 오가는 사람이, 비록 망해가는 중이기는 했지만 압구정 로데오 거리를 걷는 인파보다 더 많은 것 같은데? 심지어 이 사람들은 왜 이렇게 어리지?’하는 의문이 들기시작했다.  


생각해보면 사실 전부터 이 길을 지가는 사람이 많기는 했다. 버스 타기도 뭐하고, 대로변으로 가면 너무 돌아가니까 나부터도 역시 신촌과 홍대를 오갈 땐늘 이 길을 지나곤 했으니까 그다지 새로울 건 없는 풍경이었다. 게다가 이 동네는 서울의 다른 곳에 비해 많이 허름하긴 하지만, 바로 그 허름하고 저렴하다는 이유로 전부터 학생들이나 젊은 예술가들이 많이 살았던 곳이기도 하니까 젊고 개성 있는 사람들이 자주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한창 북카페 뽕에 빠져 있던 내 눈에 그 장면이 예사로울 리 없었다. ‘하루키의 피터캣도 젊고 가난한 예술가들이 주로 모여 살던 도쿄의 허름한 동네에서 시작했다고 했지?’  



1960년대의 서울을 그린 김승옥의 단편집 <무진기행>에는 <다산성>이라는 제목의 단편 소설이 포함되어 있다. 그 소설은 시골에서 상경해 각자 열심히 살아가던 친구들이 어느 일요일, 현장에서 잡아 먹을 목적으로 살아있는 새끼 돼지 한 마리를 사서 자루에 담아 기차를 타고 행주산성으로 소풍 가는 풍경을 담은 작품이다.  


아마도 그들이 탔던 기차가 경의선이었을 것이다. 기차가 행주산성으로 향하는 동안에는,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새끼 돼지가 살기 위해 뛰고, 그 돼지를 잡기 위해 모두 숨가쁘게 달리게 되리라는 걸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부푼 꿈을 안고 서울로 향하는 기차에서도 친구들은 달리는 서울을 따라잡기 위해 자기들이 얼마나 힘들게 뛰어야 할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경의선 기차가 아직 행주산성으로 향하고 있는 동안에는, 그들의 심장은 걱정보다는 소풍에 대한 기대로 몹시 두근거렸을 것이다.




경의선 책거리 문학 카페/책방 피터캣의  8년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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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 @petercat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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