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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크 Nov 13. 2024

행복한 우리 집

먹는 것에 감사한 마음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보미씨의 철학은 자기 밥은 자기가 차려 먹을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보미씨 가정환경이 어릴 때부터 각자 알아서 챙겨 먹는 분위기였을지도 모른다. 항상 집에 오지 않는 아버지를 두고 그리워했던 어머니, 자전거 타고 생선을 팔며 보미씨 남매 들와 삶을 붙잡고 살아왔다.


보미씨의 어머니는 항상 고된 일을 하고도 한 상을 멋지게 차려서 독상으로 맛있게 음식을 드셨다. 그녀는 영양제가 무엇인지, 좋은 옷과 화장품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관심이 없었다. 무섭도록 생존하는데 최적화된 어쩌면 유능한 유전자로만 이루어진 사람일지도 모른다. 보미씨의 아버지가 한 달에 두어 번 집에 올 때면 공장에서 기름때가 지는 옷을 풀어놓는다. 물론 보미씨는 부모님을 보며 항상 궁금했다.

왜 항상 우리 집은 가난할까? 아버지가 저렇게 평생을 고되게 일을 하시는데 우리 집은 왜 늘 월세방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하며 그녀의 어머니가 냉장고에 넣어둔 신 김치와 조미김으로 밥을 차려 먹었다. 제대로된외식이나 다양한 식재료로 음식을 먹어보는것이 극히 드문일이었다. 


그러나 보미씨는 불만이 없었다. 원래 좋은 것을 경험하지 못해서 모르니까 자신의 삶에도 불만이 없다. 

남매들끼리는 그나마 서로 싸우며 자랐지만 서로 먹는것에 대한 불평없이 없는대로 의지가 되기도 했다. 

보미씨의 가족들 중에 드센 사람이 없었다. 그중에 보미씨가 가장 자기주장이 강했는데 그것은 보미씨가 세상과 비교했을 때 보미씨의 가정환경이 남달라 보였기 때문에 체념으로 살아가는 분위기가 싫었을지도 모른다. 


보미씨의 집안 식구들은 남자든 여자든 각자 알아서 생존해 왔다. 보미씨 오빠는 집에 와서 당근 볶음밥, 감자 볶음밥을 척척 만들어 먹었다. 각자 알아서 자기 밥을 차려 먹었다. 함께 먹는 집안의 분위기는 아니었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흘러 가족들이 전부 성년이 되고 직장을 얻게 되었을 때 비로소 남들보다 못하지만 외식도 하고 명절에는 다 함께 모여 밥을 먹는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밥 한 끼 먹는 것엔 늘 감사하고 즐거웠다. 그게 보미씨의 가정환경이다. 



아무거나 잘 먹던 보미씨가 이제는 먹는 것에 혐오증이 왜 걸렸을까?


한국사회에서 먹는 것만큼 보편적이고 공통의 공감성을 불어 일으키는 소재가 없다. 

보미씨는 처음에는 먹는 것에 노이로제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결혼하고 20년이 지나면서 이제는 시댁과 모임에서 먹는 것에 대한 환멸 나는 감정이 생겼다. 



자기 밥은 알아서 자기가 잘 챙겨 먹어야 한다. 이것은 보미씨의 삶의 철학이자 보미씨 어머니에게서 배운 교육이다. 냉정하고 차가운 보미씨 어머니가 여전히 건강하게 살아가는 이유는 그녀는 본인의 밥상을 정말 맛있게 차려 먹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바쁜 현대인의 빠르고 실속 있고 편한 방법이 아니라 구한말 근대시기처럼 그녀는 손수 조몰락 거려 만든 반찬과 밥뿐이다. 


보미씨가 또 어머니에게 배운 것은 음식에 대한 감사함이다. 평생을 간소하게 드시던 어머니여서 이탈리아 음식점이나 미국, 호주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에 함께 다녀오면 


"늘 새롭고 재밌는 경험을 해줘서 고맙다. 특색이고 정말 맛있구나. 이런 맛도 있다는 걸 첨 알았다. 내 입맛엔 생소하지만 너와 함께 하니 정말 즐겁구나." 하신다. 그녀는 모든 경험들이 신기해할 만큼 어느 시대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왔는지 늘 보미씨 마음을 흥겹게 한다. 


그러니 항상 맛있는 음식만 먹는 사람들과는 반응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녀는 빨간머리 앤처럼 온갖 화려한 말들로 자신의 진심어린 감정에 충실히 표현을 한다. 보미씨가 가난하게 자랐을지라도  그녀가 자립심 있고 매사 감사하고 겸손하게 사려는 마음은 팔 할의 어머니 덕분이다. 



그런데 보미씨가 결혼하면서 시댁의 소속으로 들어감에 따라 먹는것이 완전히 여성에게 몰빵되는 가정분위기에 적잖이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그녀가 결혼 전에는 부모님과 함께 살아서 가사노동에 참여하지 않았으니 몰랐던 것도 컸다. 


보미씨가 결혼한 지 한두 해가 지났을 때 서울에서 지방으로 내려오는 버스가 귀성길이라 하여 많이 밀릴 때였다. 남편이 보미씨에게 회사를 조퇴하고 빨리 집에 가자고 서두른다. 그녀는 연휴가 긴데 그렇게 급하게 갈 필요가 있냐고 물어봤고 남편은 " 엄마가 차례 음식 준비하면 힘드니까 며느리 빨리 데리고 가려고 하는 거지"라고 말했다. 보미씨는 같은 맞벌이인데 여자들의 삶은 가부장제에서 어쩔 수 없구나 이해를 하려고 했다. 


보미씨는 며느리 없이 잘만 쇠던 명절을 아들은 결혼한 이후 효도랍시고 자기 아내를 엄마에게 들이미는구나 싶었다. 보미씨가 자라나던 시대에는 전형적인 가부장적인 영상과 교육이 널렸었다. 행복한 가족 드라마에는 전업주부인 엄마, 집안의 가장 권위가 높은 아빠, 또 동화책에서는 어려운 상황에서 착하게 살면 백마 탄 왕자님이 구원해 준다는 스토리들, 숱하게 여자들은 주방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세뇌를 받으며 자라왔다. 

어쩌면 보미씨도 한동안은 현모양처로 살아야 하고 현숙한 아내가 모범이고 평안한 가정을 유지할 거라고 꽤 오랫동안 스스로를 포장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를 화나게 하는 것은 한두 번의 경험들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음식과 손맛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검증받아야 했던 보미씨의 시어머니입장에선 요리에 대한 자부심이 만만치 않았다. 그녀는 웬만해서는 늘 만족하지 않았다. 


가부장제의 권위는 적어도 시어머니는 본인의 남편과 자녀들에겐 자애로운 어머니를, 그리고 권위는 며느리에게 내세웠다. 다른 사람들은 다 이해하고 엄마로서 포용한다면 며느리인 보미씨는 굉장히 엄격한 사감선생으로 돌변한다. 


보미씨가 사 온 한우 갈비의 형태를 보고선 " 수놈이네, 수놈은 맛없다"

임신해서 만삭인 보미씨가 온 가족이 모여 시어머니가 해주신 갈치조림을 먹는데 " 가운데 몸통은 네가 먹더라" 하며 누가 어떤 부위를 먹는지 관찰을 하며 자신은 아껴서 아들들에게 먹이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을 아쉬워서 은근하게 내비친다. 게다가 늘 보미씨 남편의 끼니 걱정을 하며 보미씨에게 신신당부를 한다.

'잘 먹여야 한다. 항상 신선한 재료를 사다가 맛있게 해줘야 한다.'


보미씨는 손맛이 좋은 시어머니에게 요리를 전수받고 배움의 기간도 길었다. 그녀도 결혼하기 전까지는 혼자 밥을 차려먹는 정도였지 어머니들 같은 요리를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고작해야 볶음밥정도가 다였던 그녀가 탕과 조림, 김치등 온갖 종류를 시도해야 했다. 그녀는 사실 요리에 딱히 소질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보미씨는 자신의 요리를 그냥 요리라고 생각하지 맛있다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최소한 솜씨 좋은 시어머니에게 배운 보미씨는 적어도 요리 못한다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냥 맛있게 먹으면 그만이지 이것을 누구에게 검증받을만한 직업도 아니고 보미씨 식구들은 또 제법 잘 먹고 맛있다고 하니까 아무 생각이 없기때문이다. 기왕 요리 잘하면 좋은거고 건강하게 먹으면 좋은거고 하면 할수록 요령이 생기는것도 있으니까. 첨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딨을까? 요리 못하고 미각이란걸 몰랐던 보미씨도 20년 주야장천 하면 늘수밖에 없는것이다. 




신혼 때 남편이 보미씨에게 "나는 결혼하면 엄마 같은 요리를 먹고사는 줄 알았어. 그런데 네가 하는 음식은 전부 자취 때 내가 하던 음식이잖아. 참치찌개 같은 거." 하길래 보미씨는 평생 자취음식만 먹게 해 줄 테다라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 


언제가 보미씨 시어머니가 제사 음식을 준비하기 힘들다 해서 지방에 친척 마트에서 재료를 준비하고 시댁으로 배송했었다. 그때 돌아온 답변은 " 너 나 무시하냐?"였다. 고급 재료만 취급하던 시어머니가 노발대발한 사건이었다. 


또 회를 좋아하신다 해서 생선회를 사다 드렸더니 " 날것 먹지 마라. 적당히 먹어야 한다"라고 사 온 사람 입장을 생각을 안한채 난감하게 만들었다.


살아있는 해산물을 사다 드렸더니 " 상했다. 먹지 마라." 했다.


맛집이 있어서 같이 방문해서 외식했더니 매번 들려오는 말이 "너는 먹겠더냐? 하나도 맛없더라" 하신다. 


시누들이 하는 요리는 극찬의 일색이고 시누이집에서 밥을 먹을 때면 그녀의 요리 칭송들을 먹는 내내 들어야 한다. 보미씨는 이런 생활도 20년 이상을 듣다 보니 토악질이 나올뻔했다. 가족이 모이면 대화가 집주인의 요리솜씨, 요리 재료들 이야기뿐이기 때문이다. 보미씨가 시어머니에게 맨날 혼나던 대화와 다르게 시어머니는 그녀의 딸의 음식솜씨에 감탄을 한다. 처음엔 보미씨도 시누가 요리를 잘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녀가 세상을 살면서 자연스럽게 본능적으로 터득하는 것도 미각이다. 보미씨 입장에선 한두 번이여야지 시댁의 모임도 많은데 매번 갈 때마다 로봇처럼 ctrl+c , ctrl+v로 자동으로 나오는 멘트들이 가식처럼 다가왔다.


"어머, 형님, 너무 이쁘게 차려놓으셨네요. 너무너무 맛있어요" 앵무새처럼 20년 말하니 보미씨도 지겨워졌다.  보미씨가 차려준 음식, 사다 놓은 재료는 그렇게 후려치면서 그와 반대급부로 칭찬으로 도배되는 이 집안의 이상한 가족 분위기. 


점점 세월이 흐를수록 이제는 보미씨는 무조건 반대하고 보는 시어머니의 화법에 화가 날 지경이었다. 


매사 보미씨는 마지막 가부장제에서 그녀가 누릴 수 있는 권위로 하대하고 존중하지 않아도 되는 며느리였기 때문이다. 시댁에 음식들을 시어머니의 진두지휘 아래 준비하면 그것들은 대부분 손윗 시누들 가족들에게 돌아간다. 김치를 맛있게 담그고 소고기를 준비하면 요리를 했던 며느리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항상 그녀의 자식들에게 돌아간다. 보미씨는 의아했다. 며느리는 가족이 아닌가? 그러다가 더 큰 생각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나는 그녀구나." 보미씨는 시어머니와 동일시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그녀의 자식도 아니요 그녀의 바닥으로 내려간 체력을 대신해 줄 또 하나의 몸뚱이 취급이었다. 


자 이제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보미씨의 시어머니가 여전히 자식의 끼니를 걱정한다.

손위시누가 일 때문에 혼자 사는데 밥을 못 챙겨 먹어서 비실비실거린다고.. 

하지만 엄마의 자식에 대한 마음과 타자의 눈은 엄격하게 다르다. 보미씨는 콧소리로 팽하며 


"낼모레 환갑인 사람이 알아서 밥 잘 차려먹어야죠. 뭘 그걸로 걱정하시나요? 어머니. 그리고 작은 형님(둘째 작은시누)은 자식들 다 키워 따로 살고 부부도 각자 따로 살면서 알아서 가사 노동을 전담하는 것도 아니고 

직위가 있는 직업이라 어디 가면 대접만 받을 건데 뭐가 힘든 일이라 고요? 알아서 잘 챙겨 먹겠죠.요즘처럼 먹거리 풍부한 시대에 " 했더니 

시어머니가 말씀이 없어졌다. 


" 어머니, 저 같은 사람은 맨날 맞벌이에 혼자 전담해서 가사노동을 몰빵으로 하고 있는데 더구나 얻어먹을 데도 없고 차려먹어야 하고, 통계로 보면 여자들이 노동력이 더 길어서 몸 상한다고 하네요. 작은 형님은 절대 아플 일이 없을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자기 밥 못 챙겨 먹는 게 말이 되나요? 형님이 좋아서 그 직업을 선택했고 누가 강제로 떠밀렸나요? 거기 가면 순 고위직 사람들 만난다는데 맨날 먹는다는 게 고급음식이겠죠. 뭘 걱정하시나요?" 

좋은 소리가 하나도 나가지 않았다. 이제는 보미씨는 그녀의 끼니에 지긋지긋하다.  20년의 세월 동안 남겨진 것은 보미씨 자신에게 한번도 배려받지 못한 것들이 쌓여 만들어낸 아쉬움과 환멸이다. 


반드시 보미씨가 준비해온 음식은 관성이 되어버린 습관으로 시어머니는 또 이렇게 말할것이다.

'재료가 좋지 않다. '


그러나 반대로 이렇게 말을 하면 먹힌다.

'어머니, 이번에 과일을 샀는데 우리가족끼리 먹으려고 흠과를 샀어요. 맛은 보장받지 못해요. 그러니 맛없어도 그냥 드셔보세요' 


그리고 그녀의 사위가 그 과일을 맛있게 먹는다면 반드시 칭찬으로 돌아온다.

 ' 지훈엄마야. 그 과일 맛있더라.' 






그리고 보미씨는 혼자서 그녀에게 말을 건다.



'왜 칭찬에 인색했나요? 왜 노력하는 며느리의 좋은 마음을 그렇게 후려쳤나요? 단 한 번이라도 고맙다 해줄 수 없었나요? 나는 절대로 그런 시어머니 안되렵니다. 나는 우리 엄마처럼 되렵니다. 

나는 먹을 것에 감사하며 위아래로 평가하고 훈계하지 않으렵니다. 그리고 나와 함께 사는 남편을 누구보다 주방에 가까이하며 함께 시장을 보고 같이 요리하며 그렇게 늙어가렵니다. 


나는 어머니와 완전히 다른 세대의 사람이에요. 나의 가치는 남을 후려쳐서 나를 돋보이는게 아니고 내 자신이 가치가 있기때문에 설사 내가 요리를 못한다 하더라도 내 요리를 저는 사랑해요. 제가 어머니에게 드리는것이 독초인가요? 썩은 재료인가요? 이제 그만하세요.

저는 더욱 다정하게 매사 앞의 음식들에 감사하다고 생각하며 거예요.누가 준비해주는 따뜻한 마음씀이에 호불호를 말하지 않을거예요. 그게 제가 배운 교양이에요. 취향을 존중하는것이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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