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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크 Nov 17. 2024

행복한 우리 집

내가 꿈꾸는 우리 집


어릴 때 보미씨가 봤던 티브이 드라마엔 한 지붕 세 가족이 있었다.


뚜렷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전파상을 운영하며 셋방살이를 하는 순돌이네가족,

중산층에 좋은 직업을 가진 아빠와 화목한 주인집, 그리고 2층엔 막 결혼 한 신혼부부 가족 총 3세대의 좌충우돌의 재미난 에피소드들이 있는 드라마였다.


보미씨는 남녀가 각자 역할이 나뉘어있음에도 함께 대화 나누고 함께 식사를 하는 장면을 볼 때마다

가정이라는 것이 이런거구나를 느끼며 부러워했다. 보미씨네 가정은 셋방살이 방한칸에 작은 부엌인데 연탄보일러가 방 쪽으로 설치되어 있고 싱크대가 없던 때라 작은 수도꼭지 하나로  앉아서 요리와 설거지를 같이 하는 구조였다. 문은 창호지였고 작은 다락방이 있었다.

골목엔 이와 비슷한 주택들이 모여있었고 양옥집이라는 벽돌로 새로 지은 집은 골목을 꺾어 돌아가는 새로운 구역에 속속들이 지어지고 있었다.

보미씨가 사는 곳엔 구식 양옥집과 한옥이 섞여있는 골목이었다. 대문 양쪽엔 작은 창문이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화장실 창문이었고

대문을 열고 친구집에 들어가려면 화장실의 나프탈렌 냄새가 자욱하게 진동하며 어둡고 눅눅한 공기를 맡으며 지나가야했다.


보미씨는 항상 그 대문을 지나가는 것이 곤욕이었다. 푸세식과 용변기가 있는 집들이 달랐는데 푸세식은 푸세식의 냄새, 용변기 있는 집은 대체로 다 떠내려 가지 못한 잔여물들을 봐야 했다. 보미씨는 그때마다 화장실이 무서웠다.  


하지만 티브이 드라마에 보는 집은 더럽지 않고 깨끗하고 항상 가족이 모여 밥을 먹고 일상생활을 하는 것조차 행복하게 느껴졌다.

보미씨네 집은 전혀 그런 환경이 아니었기에 늘 집에 안 계시는 아빠, 밖에서 일을 하고 고단한 몸으로 들어오는 엄마, 남매는 아무렇게나 방에 어른들이 올 때까지 각자 알아서 놀고먹어야 했던 상황들 때문인지 보미씨는 점점 환상에 빠지게 되었다.


행복한 가정은 무엇일까?

나도 저렇게 행복한 삶을 꾸리고 살 수 있을까?



성인이 된 보미씨 집에는 아빠의 사업부도로 몇 번의 빨간딱지가 집에 붙여졌다. 학교에서 자취를 했던지라 집에 오면 갑자기 집이 이사했다면서

문자로 찍어준 주소로 오라는 메시지를 전달을 받았다. 그럴 때마다 내 짐은 어떻게 하고 이렇게 이사 말도 없이 옮겨진다 말인가 생각이 들더라도 엄마는 보미씨가 행여 신경 쓸까 봐 일부러 안 좋은 상황이라 말을 전하지 않았던 것이다.


지긋지긋한 집이다 생각했다. 왜 항상 우리 집은 일을 많이 하는데 이렇게도 가난할까 하면서 남들 점심밥값정도 챙겨주는 부모님인데 보미씨는 차비 빼고 겨우 커피 한잔 사 먹을 수 있는 천 원 정도의 여유뿐이었다. 한 지붕 세 가족처럼 주인집이 되어보고 셋방도 놓아보고 싶었다. 그건 보미씨의 엄마가 항상 꿈꾸던 희망이었지만 그녀가 돈을 모을 때마다 보미씨의 아버지가 뽑아다 써버렸기에 보미씨 집은 항상 돈이 쌓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알고 있었다. 보미씨의 집안에 아버지가 거의 부재중이라는 것은.. 아버지가 아버지의 인생에 너무도 충실히 살았기 때문이다.

어머니 때는 이혼이 인생에 가장 큰일이라고 생각했던 시대에 살았다. 어머니는 참고 또 참아야 했다. 그것이 마치 인생이라는 듯, 그러면서 그녀도 살길을 모색했다. 자식들을 낳았고 먹이고 따뜻한 곳에 잘 수 있게 재워주었다. 다만 항상 그녀는 돈이 없었기 때문에 자녀들이 뭘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다는 희망보다는 네가 알아서 해보거라가 일상이었기에 보미씨 남매들은 가난에 익숙한 듯 꿈도 없어졌다. 그냥 흐르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첫째가 방황을 하기 시작했다. 방위산업으로 보미씨 아버지가 대학진학을 취소하고 공장으로 강제로 들여보냈다. 보미씨 오빠는 그것이 인생이라고 순순히 받아 들었다. 둘째는 실업고를 나왔다. 수도권의 반도체 공장에 취업했다고 어느 날 갑자기 떠났다. 두 남매는 지속적으로 보미씨 아버지에게 생활비와 월급을 몽땅 보냈다 했다.. 그것이 자식 된 도리라고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보미씨가 드디어 성인이 되었다. 두 남매를 보고 티브이 드라마를 봐도 이건 이상하다 생각했다.

보미씨는 대학을 가고 부모는 셋 중 하나가 대학을 간다고 하니 보내준 것이다. 장학금을 타면 용돈을 더 주시기로 했던 아빠가 일절 없던 일로 해버렸다. 보미씨는 허탈한 마음에 졸업하고 집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다. 대학생이라도 거의 굶다시피 살았기 때문에 빨리 돈을 벌고 싶었다.


엄마의 소원처럼 내 집마련이 꿈이 되었다. 내 공간만 있다면 어떻게든 자신 있게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마침 옆에 평범하고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남자가 있었다. 청혼이 들어왔고 보미씨도 취업을 하자마자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행복한 우리 집을 드디어 만들어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한 지붕 세 가족처럼 모두가 웃고 대화를 하고 그렇게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보미씨의 20여 년의 결혼을 돌아보니 수많은 일들이 있었다. 드라마에서 보이지 않는 다른 부분이 있었다. 서로의 가치관의 충돌, 남녀 역할의 충돌, 시댁친정문화의 충돌, 그리고 가부장제의 충돌..


보미씨가 학교에서 배운 가부장제와 보미씨가 자란 환경, 그리고 결혼 환경의 가부장제의 충돌.

현실과 이상의 충돌..


얼마 전 결혼식에 초대되어서 하객으로 방문한 보미씨는 근래 멋진 호텔 결혼식장에서 미래를 함께 꿈꾸는 예비 신랑, 신부의 들뜨고 기쁨이 만연한 표정을 보았다. ‘나도 한때는 앞날이 창창할 거란 장미 빛 인생을 꿈꾸었지..’  보미씨는 하객 테이블에 착석을 하고 신랑 입장을 앞두고 사회자 멘트에 귀를 기울였다.


“신부께 신랑의 장점을 알려달라고 먼저 인터뷰를 했어요. 그랬더니 신부님이 신랑을 이렇게 소개했답니다.

우리 오빠는 오직 나만을 생각하고 나를 위해 배려해 주는 오직 내 편이라 너무 든든해요.”


신랑이 오직 신부에게 내 편이 되어줄 거라는 착각, 아니 진실일지도 모르지만 글쎄 보미씨는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보미씨 주변을 돌이켜 보면 내편이라는 것은 내 이익과 맞닿아 있을 때만 내 편이지 서로 편하게 살려고 미친 듯이 싸우고 살아가는 게 부부의 삶이라는 것을.. 부디 저 예비부부에겐 그런 일이 되도록 없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행복한 집을 꿈꾸는 것은 돌이켜 보면 누군가의 일방적인 희생이 필요했다.

보미씨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보미씨 시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보미씨 남편도 그의 아버지처럼 하고 싶은 거 마음대로 하고 살면서 보미씨와 많이 다투었다. 남편은 시어머니와 누나들 편에 서서 보미씨와 대적했다. 과거엔 모두 철이 없었다.  보미씨가 꿈꾸던 행복한 가정은 아빠가 자녀들에게 훌륭한 아버지로서의 역할이 포함되었다.

그러나 보미씨 남편도 그의 아버지에게 배웠던 것처럼 아녀자의 할 일로 치부했다. 돈만 가져다주면 훌륭한 가장이라고까지..


보미씨 언니가 그렇게 설득했다.

“제부는 자기 돈을 벌어 적어도 자기 용돈 벌이는 하잖아. 세상에 나쁜 남자들은 여자가 가정을 위해 쓰는 돈까지 가져다 쓰는 아빠 같은 사람이잖아.”

그럼에도 보미씨는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기엔 체력의 한계에 부딪혔다. 제발 도와달라고 몇 번을 외치고 다행히 보미씨 남편은 20여 년을 부딪치고 그의 형제 누이보다 더 오래 알고 지낸 아내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대화를 나누며 자녀들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내의 고충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너무 늦었지만 그럼에도 보미씨 남편이 서서히 가정 안에서 맴도는 게 느껴졌다. 보미씨가 꿈꾸는 행복한 가정은 큰 부동산도, 많은 현금자산도 아니었다.

그저 건강하게 우리 가족이 무탈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그리고 보미씨 남편과 백년해로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그렇게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게 보미씨가 어려서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느끼면서 살아가고 싶은 것이다.


지금은 보미씨 가정이 한 지붕 세 가족이 되었다. 같이 밥을 먹고 함께 대화를 나눈다. 서로에게 신뢰를 가득 담아준다.

서로는 늘 평행선을 달리더라도 함께한 세월에 친구보다 더 진한 우정을, 사랑보다 더 깊은 신뢰가 있다. 함께 늙어가고 있음을 서로가 감사해하고 있다.



얼마 전 보미씨 아버지가  병원에 조직검사를 하러 갔다. 그때마다 보미씨가 함께 다녀갔다.

수면 내시경하고 막 깨운 아버지가 보미씨의 손을 잡으며 첫마디가 ‘내가 엄마와 사이좋아 보이냐?”였다.


당장 아버지가 큰 병에 걸려 자식과 아내에게 의지가 되다 보니 옆에 다 늙은 마누라밖에 생각이 안 난 것이다.


그의 평생의 80%는 그의 인생을 살았다. 70 넘어 집에 들어와 일이 없으니 엄마 옆에서 주거니 받거니 함께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꼬박 먹으며 ‘나는 행복한 편이야. 내 친구들은 은퇴하고 이혼당하거나 아프거나 죽어버렸지’ 하고 여자가 얼마나 일이 많은지 남편들도 알아야 해. 네 엄마가 하는 일이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나는 지금이라도 네 엄마에게 잘 보여야 네 엄마가 밥을 잘 챙겨줄 것 아니냐 “


보미씨는 그런 아버지를 볼 때마다 소름 돋았다.

그놈의 밥!! 알아서 드시면 어때서요.. 아빠도 함께 요리해서 차려주라고 했더니 그제야 아버지도 그리하고 있다고 엄마와 함께 밥 해 먹는다고 하신다.


보미씨는 이제야 가정다운 가정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오래전에 알았더라면 더 싸워서라도 남편을 설득했을 텐데.. 하지만 아쉬워하지 말고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있으니까 지금부터라도 남편을 설득해서 함께 대화를 나누고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어려움을 나누고 그런 삶이 되길 꿈꾼다.


비로소 중년의 고비를 넘어가는 이때 결혼식 때 신부가 말한 “ 온전히 내 편이에요”가 서로의 안전한 삶을 보장받는 부부사이엔 더욱 결속력이 생기게 마련이다. 보미씨의 아버지가 예전에 했던 말이 떠오른다.


“남자는 어머니보다 아내를 선택해야 해, 왜냐하면 어머니도 아버지를 평생 따르고 살았는데 아내와 충돌이 일어나면 난 당연히 이제는 아내 편이지.. 아내가 내 밥을 차려주고 평생 함께 늙어갈 배우자인데 당연히 아내 편에 서야 한다”라고 뒤늦은 아버지의 생존본능이 발동했다.

가부장제에서 아버지 노릇, 가장노릇을 하면 당연히 그에 맞은 대접을 받을 수 있다. 다만 보미씨의 주변 남자들을 보건대 모두들 가장이라는 위치는 자연적으로 생물학적으로 아버지가 되어서 만들어진 자동승진이 아닌데  그 본질을 잊어버린다. 각자 역할을 잘 만 해줘도 훌륭한 아버지가 아닐까. 보미씨는 남편에게 가정적으로 아버지로서의 올바른 훈육과 가정 내 머무름을 바란 것이 욕심일까?


하긴 보미씨도 어머니와 딸, 아내이기 전에 한 명의 개인으로 우선적으로 느끼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걸까?


웃음이 나온다. 엄청난 불협화음이 올 것이라는 예측과 함께..  



결국 행복한 가정은 완벽해서가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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