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혜정 Jun 23. 2021

애정과 통제 사이

드라마 나빌레라를 보며 깨닫게 된 것.

사람들은 저마다의 각자의 삶에서 다양한 키워드를 가지고 살아간다. 어떤 키워드는 내가 그리 살고 싶어 꼭 붙잡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 어떤 것은 떨쳐버리고 싶으나 떨쳐지지 않는 무엇이기도 하다. 

tvn 드라마 나빌레라 중(2021년)

 넷플릭스를 살펴보다가 나빌레라라는 드라마를 발견하였다. 발레를 사랑하는 할아버지 심덕출(박인환 배우)의 이야기. 왠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은데 하며 시작한 드라마였는데 결국 눈물을 펑펑 흘리며 보고 말았다. 드라마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인공 할아버지 친구들끼리 모여 이야기 나누는 장면에서 “우리 또래들은 기저귀를 차고 있거나 아니면 손주들 기저귀를 갈고 있거나 둘 중 하나야”라는 대사는 특히 마음에 콕 박혔다. 나도 그렇게 손주들 기저귀를 갈아주시는, 이제 노년기에 접어든 양가 부모님의 도움을 받으며 아이를 키우고 있기에. 마음에 죄송함과 감사함이 함께 스쳤다.

 회차가 진행되며 주인공의 새로운 도전을 눈을 반짝이며 따라가는데 자꾸 의외의 인물에 눈이 갔다. 심덕출 할아버지의 장남인 심성산(정해균 배우). 심성산은 아버지가 발레를 배우는 일이 영 마뜩찮다. 강하게 울부짖으며 아버지의 집을 찾아가 발레강습을 말리기도 하고 도대체 저 나이에 왜 그러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한다. 헬스클럽 연간 이용권을 끊어서 아버지를 가져다드리며 헬스클럽에 다니시라 권하는 성산.  

드라마 장면 곳곳에 애정이 가는 여러 인물과 상황이 있었지만 그 안에서 심성산은 사실 일반적으로 애정을 주기는 조금 어려워 보이는 캐릭터였다. 평생의 숙원이었던 발레 강습, 더 이상 기회가 없을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용감히 발레 스튜디오로 몸을 던지는 덕출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세상의 시선에 갇혀 아버지의 이야기조차 들으려고 하지 않는 성산. 그 인물에게 나는 자꾸 눈이 갔다. 


통제. 

내 안에 있는 떨쳐 버리려하나 떨쳐지지 않는 그 단어와 닿아있기 때문일까. 아버지를 자신의 뜻에 맞춰 사랑하려는 그의 마음. 그의 통제욕. 드라마 안에서 전혀 매력적이지 않은 그의 태도를 보며 나의 안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양하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것을 내가 아끼는 사람에게 나누는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한다. 특히 가족 관계에서 그러한 표현은 더욱 적극적인데 나의 부모에게도 남편에게도 형제에게도 자식에게 내가 좋았던 것 내가 좋은 것을 미루어 짐작해서 건네는 것이다. 

심성산은 자기가 생각하기에 70대 노인이 취미로 향유하기에 그럴듯한 헬스클럽 연간 이용권을 발레의 대체제로 내밀었다. 발레를 해서 무대에 서고 싶은 것이 일생의 소원이 된 아버지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말이다. 

그런데 나의 이야기가 아닌 드라마 속 이야기로 떨어뜨려놓고 보니 현실이 명료하게 보였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통제하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그것이 너를 위한 것이라는 착각. 그것은 나의 생각일 뿐 그의 생각도 동일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사실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은 얼마나 제한적인가. 세상에는 예측할 수 없는 수많은 변수들이 있고 삶의 생각지 못한 어느 순간 그러한 변수들이 튀어나온다. 그러한 변수들을 그대로 손 놓고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들이 얼마나 많은지. 나의 삶 조차 내 스스로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심지어 다른 사람의 삶이야 오죽하겠는가.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무엇인가를 계획하고 조정하여 통제하고 싶다는 마음, 그들의 삶을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함. 심성산의 모습을 통해 내 안의 부끄러운 것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내 삶에서 ‘통제’라는 단어를 내려놓자 다짐한다.(바로 내려놓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기에 다짐한다-라고 진술한다.) 통제해서는 안되고 통제할 수 없을을 안다. 당위의 차원에서도 가능성의 차원에서도 통제의 마음을 버려야한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여. 그대들이 원하는 길로 나비처럼 훨훨 날아가소서. 그저 응원하고 지켜보겠습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나의 삶이여. 통제할 수 있다 믿는 오만함을 내려 놓습니다. 자유와 행복을 향해 훨훨 날아갈 수 있기를 그저 바랍니다. 

나빌레라! (조지훈 작가의 '승무'에 나온 문구로, '나비'와 '-ㄹ레라'가 결합된 표현 - 출처 : 네이버 오픈 백과사전)







매거진의 이전글 나를 두렵게 하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