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소방관의 평균수명을 아시나요?
지금도 코로나19를 비롯한 각종 재난으로부터 국민의 안전을 위해 힘쓰시는 전국의 소방관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姑김윤섭 소방교를 기억합니다
"명환아 그래서 죽은 사람도 실제로 봤어?"
내가 소방서에서 근무를 하니까 친구들은 이런 게 궁금했나 보다. 대답은 했지만 사실 6년 전 소방서에서의 추억은 이런 기억 보단 다른 게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의무소방으로서 소방서에서 2013년부터 2015년까지 23개월을 근무했다. 의무소방의 인원이 많지 않아 모르는 분들이 많을 텐데, 쉽게 말해 의무경찰의 소방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의무경찰이 경찰서에서 먹고 자고 일하듯, 나는 소방서에서 먹고 자고 일하며 소방대원들의 보조역할을 했다.
친구들의 저런 질문에 해줄 수 있는 답은 사실 차고 넘친다. 가드레일 박고 고꾸라진 차에 진입해 시체를 안고 나온 이야기, 피범벅이 돼 생과 사를 넘나드는 사람을 위해 심폐소생술을 한 일(내가 심폐소생술을 했던 환자는 전부 사망했다) 그리고 구급차에서 무방비로 취객한테 폭언과 폭행을 당한 일(구급차로 같이 출동하는 구급대원 반장님은 대체로 여성이고, 취객은 남성이었기 때문에 방어하기 쉽지 않다. 일 년 전 우리는 결국 한 여성 구급대원을 그렇게 보냈다) 등. 괄호를 치고 여담을 늘어놓을 정도로 사실 저 한 주제만 가지고도 이야기를 풀 수 있겠지만, 나는 조금 더 사소한 이야기로 시작하려고 한다.
의무소방은 현장출동직이다. 한마디로 긴급 현장에 소방관처럼 똑같이 투입된다는 말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소방관 하면 떠올리는 와일드한 이미지, 그러니까 화마와 싸우고 불 속에 있는 사람을 구해오는 그런 이미지는 구조대에 속한 소방관들의 이미지로부터 나온 가능성이 큰데, 나는 한 때 이 구조대에 속해있었다. 불이 심한 현장에서는 대체로 소방관들이 그 안에 들어가지는 않는데, 그 날은 달랐다. 안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이 안 된 것이다.
"명환아 위험하니까 너는 여기서 상황보고 있어"
나를 제외한 구조대 반장님들은 그 출동을 그의 마지막 출동으로 만들법한 건물 안을 망설임 없이 수색하러 들어갔는데, 나는 그 모습에 경외감을 느꼈다. 5미터 정도의 거리에 있었지만, 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고 앞을 쳐다보기도 힘들었으니까. 저기를 들어갈 용기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건가.
다행히 안에 사람은 없었고, 화재진압이 마무리되었다. 사소한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소방장갑을 깜빡한 나는 급한 대로 목장갑을 끼고 뒷수습을 하다가 손에 못이 살짝 찔렸다. 아파하면서 잠깐 고개를 들어 반장님을 보고 있었는데, 대부분의 반장님들이 나처럼 목장갑을 끼고 똑같이 일을 하는 거였다. 서에 복귀해 차를 닦으면서 반장님에게 왜 구조장갑을 안 끼는지 여쭤봤는데, 대답이 참 가관이다.
"없어. 있던 거 다 해지고 한쪽은 현장에서 잃어버려서 새로 사야 하는데 형이 지금은 여유가 없다. 니가 하나 사줘라"
나는 이때 저 여유가 뭐 장갑을 받으러 갈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건가 싶었는데
돈
돈이었다. 아니 무슨 사치품도 아니고 소방장비를 개인이 부담하고 있지?
참고로 소방장갑은 만원, 이만 원대가 아니다.
이 조그만 사건을 계기로 나는 보이지 않던 게 보이게 됐다.
내가 닦던 이 소방차가 출동 중 언제 멈춰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것
소방차는 이미 제 수명을 다했다.
골든타임 때문에 마음 급한 부장님이 왜 그렇게 불안해한 건지.
출동 중 다른 차를 박으면, 소방관 개인이 모두 책임져야 했다.
(결과론적이지만 골든타임이 지켜졌다면, 내가 심폐소생술한 환자 중 한 명은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그때였다. 소방관에 대한 낭만이 거짓말 같은 현실로 덮인 시점이.
당시에 SBS에서는 연예인들이 소방관과 동고동락하는 리얼리티, 심장이 뛴다를 방영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방송을 보면서 소방관의 희로애락을 공감했지만, 나와 같이 일하던 반장님들에게는 조금 다르게 전달된 것 같았다.
"나는 5명으로 출동해본 적이 없다."
불속에 뛰어드는 서울의 소방관들을 보며 부러움을 느낄 줄이야. 이 자조적인 반장님들의 푸념에는 이유가 있다. 실제로 보조역할에 그치는 나를 포함해도 사실 한차에 5명으로 출동한 기억이 없었다. 현장이 현장인지라 소방관들은 현장에 출동하며 부랴부랴 방화복으로 갈아입고 산소통을 착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반장님이 적게 타면 '자리가 넓어서 좋다' 이렇게 멍청한 만족을 하고 있었다. 이게 정말 위험한 건데. 현장에서 필요한 인원이 적으면 한 사람이 집중해서 일을 할 수가 없다. 소방호스를 혹시 잡아본 적이 있는가? 수압 좀만 높아져도 성인 남성 한 명이 컨트롤을 못한다. 뒤에서 한 명이 보조를 해줘야 한다. 그리고 현장 상황 보며 수압 조절을 해야 하는 인원도 있어야 한다. 대단한 걸 말하는 게 아니다. 불이 난 순간에 시민들은 현장에서 피하고, 소방관은 들어가는 건 정확히 대치되지만, 최소한의 역할 수행자가 없다면 그 현장 속에서 두렵고 혼란스러운 건 소방관들도 마찬가지다. 이 최소한의 것이 지켜지지 않음으로 인해 소중한 소방관의 목숨은 이미 여러 번 희생됐다.
기껏해야 23개월. 내가 일한 건 저게 전부다. 2년도 안 되는 근무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노출돼있는 현장, 어느 하나 특별한 순간을 묘사한 게 아니다.
잠깐만. 끝이 아니다. 시스템은 더 최악이거든.
당시 나는 3교대 근무를 했다. 주변에 간호사 친구나 3교대 하는 친구들이 있으면 물어봐라. 3교대가 얼마나 힘든지. 병원에 응급환자가 들어오면 퇴근할 수 있을까? 불이 났는데 퇴근할 수 있을까? 음... 근데 이것도 모자라 원래 2교대였단다 2교대. 그러니까 24시간 근무하고 교대하고 다음날 와서 다시 24시간 하고...
자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게 끝이 아니다. 이렇게 일을 했는데 돈을 안 준다. 초과근무수당 때문에 일선 소방관들과 지자체가 법정에서 싸운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40년은 거꾸로 간 기분이었다. 어이가 없어서 사실 화도 나지 않을 지경이었다(난 당사자가 아닌데도 말이다).
그래서 대한민국 소방관의 평균수명이...?
58.8세
우리나라 평균수명이 83세고, 북한이 63.8세다 북한이.
세계 평균수명 표, 위에서 부터가 아닌 아래에서부터가 훨씬 가까운 베냉, 세네갈, 부탄의 평균수명이 저 정도다.
내 근무기간을 보면 알 테지만, 저 기간에는 2014년 4월 16일이 포함된다. 그날의 참사가 발생하고 각 지자체는 너나 할 것 없이 수상안전을 강조했고, 그로 인해 나는 근무지역의 한 호수에 파견을 나갔다. 한 번은 팀장님과 둘이 나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소방관의 이 거짓말 같은 처우가 어디서부터 비롯됐는지를 알게 됐다.
소방관은 지방직 공무원이다. 국가의 산하에 있는 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 하에 있는 공무원이다. 나처럼 처음 들을 때는 이게 이해가 안 갈 수 있고, 뭐가 문제인지 모를 수도 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어디에 사는지 모르겠지만, 이 글을 쓰는 4월 1일 기점으로 어제까지 여러분은 사는 지역에 따라 안전도가 달랐다. 뭐에 의해 다른가? 지방의 재정자립도다. 똑같은 화재가 일어나도 서울은 안전하고, 제천은 안전하지 않다. 돈이 많은 지역의 국민은 질 높은 안전을 제공받고, 돈이 적은 지역의 국민은 그러지 못한다. 지자체의 돈이 부족하면 소방관들의 인력과 장비도 당연히 부족하고 열악하니까.
이제는 찾을 수 있다.
목장갑으로 현장에 출동하는 반장님이 여유가 없다는 이유, 심장이 뛴다의 서울 소방관을 우리 반장님이 부러워했던 이유, 지자체와 일선 소방관이 말도 안 되는 다툼을 한 이유
그리고
"오래 다니려면 신중하라"는 간부의 협박을 무릅쓰고 일선 소방관들이 광화문에서 1인 시위를 강행한 이유를.
그리고 오늘, 거짓말 같은 소방관의 처우가 '최소한의 것'을 얻게 됐다.
소방관이 국가직 공무원이 된 것이다.
훗날 "저런 말도 안 되는 처우가 진짜 우리나라에 있었단 말이야?"라고 혀를 차며,
누군가 나에게 2020년 4월 1일을 물어본다면 나는 이 정도로 대답하지 싶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대한민국의 보호를 받는, 지금의 우리에게는 평범한 상식이 실현된 날이었습니다.
참고로 내가 제대할 때, 내가 가진 모든 소방복은 전부 반장님들께 나눠드리고 나왔다.
반장님의 소방복에 비해 내 방화복은 부끄러울 정도로 깨끗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