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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경 Sep 01. 2015

소유와 무소유 사이

어디쯤

오 년을 함께 살았던 친구가 나에게 붙여준 별명이 있었다.


무소유. 자본주의파괴자.


특별히 가지고 싶어하는 것도 없고 한 가지 품목을 소유하면 그것이 못쓰게 될 때까지 그것 한 가지만 쓰는 까닭에 친구가 붙여준 별명이었다. 사실 그땐 지방에서 올라 온 대학생이었고 자발적 무소유라기 보다 환경적으로 가질 수 없는 범위의 것을 욕망하지 않았다는 게 맞다. 가질 수 있는 것만 가졌고 부족함 없이 그걸로 만족했었다.


그러던 내가

요즘 부쩍 가지지 못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 많아졌다.


쉬는 날 유명한 카페에 갈 때면 비싼 머신, 고급진 인테리어, 심지어 가죽끈을 덧댄 앞치마까지 모두 부러워지기 일 수고 그런 것 들을 부러워 하다보면 그 끝엔 항상 내가 돈이 좀 더 있었으면 가게를 더 잘할텐데 하는 마음까지 들 곤 했다.

겉으론 그 마음을 짐짓 모른 채 하며 의연한 척 했지만 그 모든 걸 갖춘 그들이 사실 부러웠다.


부러움이 일으킨 좌절감이 약간의 우울함을 불러 올 즈음 전단지를 돌리는 청년이 가게에 왔다.



가게를 하다보면 매일 같이 받게 되는 것이 사업자대출 일수 전단이다. 대부분은 가게에 사람이 있건 말건 가게 문 밑으로 휙 던져 넣고 가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던져진 전단지를 치우며 가끔은 인상을 쓰게 되곤 하는데 그 청년은 수줍은 듯 쭈뼛쭈뼛 가게 문을 열고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고 들어와서는 '메모지 좀 놓고 가겠습니다' 했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나도 모르게 '감사합니다.' 하고 답변했고, 청년이 여전히 쑥쓰러운 낯빛으로  '수고하세요.' 하고 가게를 나갔다.


순식간에 일어난 상황에 웃음이 났다.

저 성실한 청년은 하고 많은 일 중에 어찌하여 일수 전단지를 돌리는 일을 하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더운 날씨에 이 가게 저 가게 저렇게 성실히 인사를 하며 돌아다니는 저 청년이 보기엔 나는 멀쩡한 카페를 운영하는 젊디 젊은 속편한 사장처럼 보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멀쩡한 가게에서 시원하게 에어컨을 틀어 놓고 원하는 만큼 커피를 마시면서 일하는 호사를 누리고 있었다.

고급진 인테리어도 비싸보이는 앞치마도 없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소박하게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갖추고 꾸려가고 있었던 거다.


이미 충분히 가진 나는 그 동안 왜 더 가지지 못해 속상해 했을까.




가게를 운영하면서

가끔은 혼자서 뭔가를 책임지고 해나간다는 것이 버겁고 무거울 때가 있다.


어쩌면

내가 요즘 그 모든 걸 가지지 못해 안달이 났던 건 내가 응당 짊어져야 할 그 무게를 덜어내고 탓할 곳을 손 쉽게 찾으려 했던 건 아닐까.


높은 천정도 값비싼 머신도 고급진 앞치마도 내가 짊어진 무게를 덜어 줄 순 없다는 걸 알면서 말이다.


자신의 생계를 온전히 책임지는 어른이 된다는 건 예상보다 더 어려운 일인 듯 싶다.


무소유도 소유도 아닌 어디쯤에서

가지지 못한 것 보다 가진 것에 만족하는 어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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