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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경 Mar 13. 2017

'딴' 카페에서 만나는 일상의 단상

폐업 10개월 만에 쓰는 자아성찰이랄까?

작년, 그러니까 2016년 5월에 2년 6개월 동안 '내 가게'였던 카페를 정리했다.


나의 작은 로망이었고 생계였던 카페 어쿠스틱을 정리하면서 알량하나마 '카페 사장' 이었던 나의 직함 또한 정리했다.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삼십대가 되었는데도 이 철딱서니는 한치 앞을 모르고 그래도 좋다고 속시원해했다.


그리고 십 개월.

짧다면 짧은 시간동안 이사를 했고, 웹소설을 썼고, 여행을 갔고, 웹툰 학원을 다녔다. 그렇게 가게만 정리하면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던 날들이 흘러가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손에 쥔 것 없이 서른셋 봄이 되었다.


사장도 아니고 작가도 아니고 제대로 된 직장인도 아닌 서른셋의 봄.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 인간인가. 

다시 고민이 시작됐다.


폐업 이 후, 소속과 직함을 가진 사람들을 앞에서 말할 이름이 없어 쪼그라들 때면 나는 슬쩍 가게 얘기를 꺼내곤 했다. '내가 지금은 내밀 직함도 없지만 말야, 예전에는 내가 사장도 할 수 있는 인간이었거든..'하고 말하고 싶어서 였을 것이다.

그렇게 가게 이야기를 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카페사장이라는 직함이, 소상공인이라는 그 쥐꼬리만한 사회적 지위가, 내 서른 살 자존감의 기반이었 싶어 뒷 맛이 씁쓸했다.


이토록 연약한 자아라니..


브런치의 시작도 '카페에서 만나는 일상의 단상'이라는 이름이었으니, 어쩌면 가게를 정리하고 한동안 일상을 남기가 조심스러웠던 것도 그 때문인가 싶기도하고.


어쨌거나, 이제는 '내'카페에서 만나는 일상 단상이 아니라 '딴'카페에서 만나는 일상의 단상들이 되겠지만 이것 또한 그 나름으로 다채로워지지 않을까하고 '또' 무작정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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