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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경 Jan 12. 2016

영화Her, 사만다

그녀는 정말 그곳에 있었을까

* 스포일러 있습니다.



영화 'Her'을 떠올리면 테오도르라고 발음하는 사만다의 목소리가 먼저 떠오른다.


"테오도르" 하고 부르는 스칼렛 요한슨의 셈세하고도 허스키한 목소리를 들을 때 마다 내 머릿속엔 영화에 한 장면도 등장한 적 없는 그녀가, 그 소리를 만들어 내는 그녀의 입술 모양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영화에서 테오도르는 인공지능OS 사만다를 구매한다. 그리고 인간인 '그'와 인공지능인 '그녀'의 연애가 시작된다.

감정들을 꼭꼭 묶어둔 채 혼자이던 테오도르는 사람에게는 보여 줄 수 없었던 진짜 마음을 '그녀'에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녀는 프로그램 된 인공지능을 넘어 인간의 진짜 감정을 배우고 진화한다.

그리고 그녀의 감정의 결이 섬세해지면 질수록, 그래서 그들이 나누는 감정이 '진짜'에 가까워지면 질수록 그녀를 그저 인공지능으로 대할 때는 의미없던 의문들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 시작한다.


프로그래밍 된 인공지능이 말하는 '감정'이 진짜 일까?


테오도르는 진짜라고 믿는 쪽을 선택한다. 그리고 사랑에 빠진다.


어쩌면

고객의 감정을 대신해 편지를 쓰고, 가상게임으로 여가를 보내며, 익명의 음성채팅으로 욕구를 해결하면서 가상의 감정 속에 살아가던 테오도르에게는 그 속에 감춰둔 진짜 상처를 함께 마주한 사만다가 진짜로 느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니었을까.

사만다는 완벽한 연인이다.


육체가 없다는 것이 안타깝지만 덕분에 그녀는 그가 있는 곳이라면 어느 곳에나 존재하고 그의 취향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공감하며 사려깊게 그를 배려하고 그의 일을 돕는다.  


우리가 연인에게 바라는 꿈 같은 일들은 사만다는 해낸다. 마치 그만의 작은 신 처럼.


그렇게 둘의 연애를 지켜보면서 나 역시 사만다를 진짜로 느껴지기 시작 할 즈음 영화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려준다.


'그녀' 가 테오도르와 대화하는 동안에도 팔천명이 넘는 이들과 동시에 대화하고 있었으며 칠백명이 넘는 사용자(?)와도 연애하고 있었다는 것.


테오도르 만의 사랑스러운 여신인 줄 알았던 그녀가 공유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충격이란...


그 순간 우리는 판매 된 OS가 그만의 것일리 없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깨닫지 못한 스스로의 어리석음에 쓴웃음을 짓게 된다.


그리고 의문은 도돌이표를 그리며 제자리로 돌아온다.


사만다의 사랑이 진짜였을까?


때때로 우리는

우리가 경험한 사랑에서 조차 그것이 진짜였는지, 진심이었는지 알 수 없을때가 있다.


사만다가 '진짜' 였는지 알 수 없는 것 처럼 말이다.


다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영화를 통해 던진 우리의 질문이 '진짜'였고, 영화 속 테오도르가 사만다를 통해서 경험한 생생한 아픔과 환희가 '진짜' 였다는 사실뿐이다.


그러니 그녀가 진짜 였는지 정말 알고 싶다면 나를 들여다보면 될 일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내 곁에서 기꺼이 한쪽 어깨를 내어준 그들에게 진짜 마음을 보이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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