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를 쓰려다가, 개인 일기장에 끄적이기는 조금 아쉬운 감이 있어서 블로그에 바로 제목을 적었다가, 성격이 맞지 않나 싶어 고민하다가, 이렇게 가벼운 맘으로 글을 쓸 수 있는 이유를 생각해 보니 묵직한 마음의 브런치가 떠올랐고, 다시 일기장으로 도망갈 뻔한 걸 휴대폰 배터리가 50퍼센트 넘게 충전될 때까지만 쓰자 싶어 멱살 잡고 브런치에 접속했다.
서두가 길다는 건 마음이 또 복잡하단 얘기.
이제 알림도 안 온다.
360일쯤 지났을 땐 울면서 저렇게 작가님 보고 싶다고 알림도 뜨고 그랬었는데 이젠 아예 자동 로그인이 풀려서 브런치에서 알림도 오지 않는다. 오랜만에 카카오 계정으로 로그인했다. 이제 글을 쓴 지 1년이 넘고도 해가 바뀌었네.
임산부가 되었다고 선언하고 뭔가 대단한 걸 써내겠다고 작심했을 때부터(말은 아니었지만) 이미 이 긴 공백은 예정되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브런치도 카테고리를 따로 설정해서 주제 별로 글을 쓸 수 있음에도 나에겐 타임라인 형태로 인식이 되는 바람에 임신 관련 글이 아니면 바로 다음에 쓰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강했다.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 이 지경이 됐다.
임신 초반에는 뭘 몰라 쓸 게 없었고, 중반에는 아주 현실적인 이유로 혹시 아기가 잘못되어서 너무 슬픈 글로 남을까 봐 뭘 쓸 수가 없었고(다행히 아기는 잘 태어나서 만 9개월이 되었다.), 후반에는 매일 만보씩 걷고 집 구조 바꾸면서 정리하느라 별다른 취미활동마저 하지 못한 데다가 엄마랑 거의 매일 만나 얘기하느라 엉덩이 붙이고 글을 쓸 시간이 없었다.
그렇지만 모두 변명이란 걸 이젠 인정한다. 내가 뭐 언제부터 잠을 많이 잤다고. 맘먹고 쓰려면 자기 전에 다 쓰지.
그냥, 브런치는 늘 내게 무겁다.
브런치 작가가 된 게 백일장 금상만큼이나 기뻤는데 아무도 부여하지 않은 괜한 무게에 눌려 제대로 누리지도 못했다. 이미 낡은 작가가 되어버린 듯하다.
왜 자꾸 무거울까 이유를 따져보면 간단하다. 부담스러워서다.
갑자기 아주 단순한 목표를 가지고 한 달 전에 막 시작한 블로그는 이제 틈나는 대로 살피는 공간이 되었다. 내 일상의 한 패턴이 되었다.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부담 없이 재단장을 했던 거다.
반면 브런치에서는 자꾸 힘이 들어간다. 뭣도 없고 글도 몇 개 안 써놓았는데도. 백지 공포증이랑은 좀 다르다. 쓸 내용은 다 잡아뒀었다. 로그인하는 게 어려웠다. 잘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다.
사실 초반에 황송하게 다음 메인에 걸린 글이 있었다. 그때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내 미숙한 글을 읽었다는 사실이 내 속 어딘가에 각인되어버렸다. 조회수를 보고 놀라서 남편한테 물었다. 나 힘내라고 혼자서 조회수 늘려놨냐고. (당연히 아니었다.) 또 그럴까 봐 사실 약간 겁먹었다. 아쉽게도 그 후로 그런 일이 다시는 없었지만.
제발 막 쓰자 제발, 아무리 나를 타일러도 소용이 없었다. 뭔가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름을 좀 덜 실명 같은 걸로 할 걸 그랬나 싶기도 했다. 세상 흔한 이름이라 본명으로 쓴다한들 내 이름이 온전히 나일 수 없는데도. 이런 건 뭐라고 불러야 하나. 브런치 작가병인가.
그래도 다른 데서 힘을 빼고 나니 이제 조금 트인 기분은 든다. 일로써의 글을 놓은 덕이기도 하다. 일이 아니니까 좀 못 써도 돼 싶은 거다. 집착이 좀 사라졌다. 한정적인 시간 속에서도 뭔가를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이젠 그저 하나씩 해 나가야지 하고 있다. 브런치의 재단장 시점은 우연히 오늘이 된 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