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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쟁 Feb 21. 2022

무거움의 무게

무거운 브런치와 가벼운 블로그

일기를 쓰려다가, 개인 일기장에 끄적이기는 조금 아쉬운 감이 있어서 블로그에 바로 제목을 적었다가, 성격이 맞지 않나 싶어 고민하다가, 이렇게 가벼운 맘으로 글을 쓸 수 있는 이유를 생각해 보니 묵직한 마음의 브런치가 떠올랐고, 다시 일기장으로 도망갈 뻔한 걸 휴대폰 배터리가 50퍼센트 넘게 충전될 때까지만 쓰자 싶어 멱살 잡고 브런치에 접속했다.


서두가 길다는 건 마음이 또 복잡하단 얘기.


이제 알림도 안 온다.


360일쯤 지났을 땐 울면서 저렇게 작가님 보고 싶다고 알림도 뜨고 그랬었는데 이젠 아예 자동 로그인이 풀려서 브런치에서 알림도 오지 않는다. 오랜만에 카카오 계정으로 로그인했다. 이제 글을 쓴 지 1년이 넘고도 해가 바뀌었네.


임산부가 되었다고 선언하고 뭔가 대단한 걸 써내겠다고 작심했을 때부터(말은 아니었지만) 이미 이 긴 공백은 예정되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브런치도 카테고리를 따로 설정해서 주제 별로 글을 쓸 수 있음에도 나에겐 타임라인 형태로 인식이 되는 바람에 임신 관련 글이 아니면 바로 다음에 쓰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강했다.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 이 지경이 됐다.


임신 초반에는 뭘 몰라 쓸 게 없었고, 중반에는 아주 현실적인 이유로 혹시 아기가 잘못되어서 너무 슬픈 글로 남을까 봐 뭘 쓸 수가 없었고(다행히 아기는 잘 태어나서 만 9개월이 되었다.), 후반에는 매일 만보씩 걷고 집 구조 바꾸면서 정리하느라 별다른 취미활동마저 하지 못한 데다가 엄마랑 거의 매일 만나 얘기하느라 엉덩이 붙이고 글을 쓸 시간이 없었다.


그렇지만 모두 변명이란 걸 이젠 인정한다. 내가 뭐 언제부터 잠을 많이 잤다고. 맘먹고 쓰려면 자기 전에 다 쓰지.


그냥, 브런치는 늘 내게 무겁다.


브런치 작가가 된 게 백일장 금상만큼이나 기뻤는데 아무도 부여하지 않은 괜한 무게에 눌려 제대로 누리지도 못했다. 이미 낡은 작가가 되어버린 듯하다.


왜 자꾸 무거울까 이유를 따져보면 간단하다. 부담스러워서다.


갑자기 아주 단순한 목표를 가지고 한 달 전에 막 시작한 블로그는 이제 틈나는 대로 살피는 공간이 되었다. 내 일상의 한 패턴이 되었다.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부담 없이 재단장을 했던 거다.


반면 브런치에서는 자꾸 힘이 들어간다. 뭣도 없고 글도 몇 개 안 써놓았는데도. 백지 공포증이랑은 좀 다르다. 쓸 내용은 다 잡아뒀었다. 로그인하는 게 어려웠다. 잘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다.


사실 초반에 황송하게 다음 메인에 걸린 글이 있었다. 그때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내 미숙한 글을 읽었다는 사실이 내 속 어딘가에 각인되어버렸다. 조회수를 보고 놀라서 남편한테 물었다. 나 힘내라고 혼자서 조회수 늘려놨냐고. (당연히 아니었다.) 또 그럴까 봐 사실 약간 겁먹었다. 아쉽게도 그 후로 그런 일이 다시는 없었지만.


제발 막 쓰자 제발, 아무리 나를 타일러도 소용이 없었다. 뭔가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름을 좀 덜 실명 같은 걸로 할 걸 그랬나 싶기도 했다. 세상 흔한 이름이라 본명으로 쓴다한들 내 이름이 온전히 나일 수 없는데도. 이런 건 뭐라고 불러야 하나. 브런치 작가병인가.


그래도 다른 데서 힘을 빼고 나니 이제 조금 트인 기분은 든다. 일로써의 글을 놓은 덕이기도 하다. 일이 아니니까 좀 못 써도 돼 싶은 거다. 집착이 좀 사라졌다. 한정적인 시간 속에서도 뭔가를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이젠 그저 하나씩 해 나가야지 하고 있다. 브런치의 재단장 시점은 우연히 오늘이 된 거고.


브런치는 생각을 쓰고,

블로그는 정보와 일상을 담고,

유튜브는 차별화를 꾀하고.


그렇게 하려고 한다.

나의 무게 중심은 이들 정 가운데에 있다. 모두 나의 일부이므로.


이제 배터리가 다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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