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수영 12
수영을 배우는 초기에는 호텔이나 워터파크 수영장에 가서도 수모와 수경이 없으면 수영을 할 수 없었다. 0.0 한국에서 여자들은 수영장에서 주로 4 PCS(기본 브라와 팬티에 반바지나 긴바지를 입고 그 위에 래시가드 혹은 후드 집업)의 수영복을 입는다. 4 PCS 수영복을 입으면 수영 동작을 제대로 하기가 어렵다. 원피스 수영복이나 비키니 수영복을 입으면 수영하기는 편한데, 그곳에 온 많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그대로 받아내야만 한다. 어느 수영장을 가든 기본을 입고 그 위에 딱 붙는 긴팔 래시가드(후드 집업은 절대 안 됨)와 긴 바지, 수모와 수경까지 챙겨야 수영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입고 수영하지 않으면 운동했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수영장에 운동하러 가는 사람). 수영장에 놀러 가서 유유자적 수영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수영 시력을 늘리기 위해 운동삼아 하는 전투 수영이 된 거다. 나만 그런가 하고 수영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다른 친구들도 나와 비슷하다고 했다(거짓말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때 수영에 빠진 나와 수영 친구들은 모두 수영을 엄청 잘하고 싶어 했다.
선생님이 수업 중에 ‘회원님들, 대회 나갈 거 아니잖아요? 호텔 수영장이나 바닷가에서 편하게 수영하실 거 아니에요? 그러면 우선 힘을 빼셔야 해요’라고 말했을 때, 힘 빼면서 수영하는 건 결코 쉽지 않으리라 예상했다.
헤드업 자유형이든 헤드업 평영이든 머리를 들고 하는 수영은 둘 다 기존 영법 발차기 박자가 달랐다. 머리를 들고 헤드업으로 할 때는 자유형이든 평영이든 평소 수영과 다르게 팔과 다리를 동시에 써야 했다. 그래야 앞으로 나가고 물도 많이 먹지 않을 수 있었다. 수영을 잘한다는 사람도 머리를 들고 하는 헤드업의 영법들은 힘들어서 잘 안 된다고 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박자와 힘 빼기의 문제일 것이다. 물론 수영을 진짜 잘하는 사람은 헤드업 자유형과 헤드업 평영도 쉽게 한다.
고개를 들고 헤드업 자유형을 처음 한 날에는 물을 엄청 먹었다. 헤드업은 머리를 들고 자유형 발차기나 평영 발차기로 간다. 호텔 수영장이나 바닷가에서 머리를 들고 수영하는 사람들을 보면 다 이렇게 헤드업으로 물 밖으로 머리를 들고 수영한다. 그곳에서 얼굴을 물속에 집어넣고 정석대로 자유형 팔 돌리기를 하며 수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나만 예외).
수업 중에 스컬링 하는 법도 배웠다. 물 잡기를 위한 자세. 머리를 물속에 넣고 엎드린 상태에서 자유형 발차기를 하며 물속에서 양 손을 8자로 돌리면서 물 잡기를 느껴보는 것이다. 손목이 아니라 손목과 팔꿈치 사이의 부분으로 물 잡기를 느껴야 한다. 물 잡기는 모든 영법에 필요하다. 하지만 잘 안 된다. 그러나 물을 잘 잡기를 위해서는 스컬링을 계속 연습해야만 한다.
4년 차에서 편한 영법은 접영이다. 다른 사람들도 내가 접영 하는 걸 보면, 오히려 힘도 거의 안 들이고 편하게 하는 것 같아 보인다고 했다. 실상 나도 접영의 물 잡기는 어렵다. 수영할 때 내가 물 잡기 자체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건 오래되지 않았다. 4년 차 초기에 한 달 정도 가르쳐주다 떠나신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회원님은 왜 접영 할 때 물 잡기를 안 하세요?” ㅜㅜ
접영 할 때는 물을 최대한 많이 잡고 양팔을 뒤로 쭉 뻗은 다음에 수면 위 가까이에서 힘을 뺀 팔을 앞으로 가져와야 한다고 했는데... 팔을 가져올 때도 수면을 스치면서 하는 게 아니라 손을 물속으로 꽂아야 한다고. 접영 할 때 팔을 물속으로 넣을 땐 머리도 같이 깊게 숙여야 한다. 보통 접영을 할 때 내 양팔은 ‘만세’를 하고 있다. 팔을 죽 펴지 못하거나 발을 힘껏 세게 차서 상체가 앞쪽이 아니라 위쪽으로 많이 올라오기 때문이다. 그러니 접영만 하면 허리가 아팠다. 발을 제대로 눌러 차는 게 안 되니 나도 모르게 허리의 힘으로 접영을 했던 것이다.
오리발을 끼고 접영을 하면 맨발로 접영 할 때보다 훨씬 더 편하다. 그래서 오리발 끼고는 접영의 자세 교정은 힘들다. 오리발을 끼고 수영을 하다가 오리발을 빼고 접영을 하면 25미터가 너무 멀게 느껴진다. 스타트를 잠영으로 발차기 3번 하고 수면 위로 올라와서 팔을 몇 번이나 돌려도 쉽게 끝에 도달하지 않는 느낌이다. 오리발을 끼고 하면 팔을 몇 번 돌리지 않았는데도 끝까지 금방 도착한다는 느낌이 드는데 말이다. 접영을 잘하는 사람은 시작부터 잠영 발차기 몇 번 하고, 팔을 3-4번 돌리면 벌써 끝에 도달한다. 나는 멀리서 그 사람을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볼 뿐이다.
오리발을 하고 접영을 하면 상체가 위로 많이 솟구친다. 최대한 고개를 아래로 고정하고 글라이딩을 하면서 앞으로 나가야 한다. 오리발 없이 하는 접영은 많이 허우적거리고, 숨도 차서 계속 헉헉댄다. 접영을 시작할 때는 처음부터 잠영을 많이 하면 선생님께 지적을 받는다. 잠영을 길게 하면 팔을 몇 번 하지 않고도 25미터를 가서 몸이 운동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기에(운동이 안 됨으로), 나중에는 오리발 끼고 접영 할 때는 심지어 잠영을 길게 하지 말라고 횟수까지 정해주셨다. --;;
접영은 혼자 25미터를 끝까지 갔다가 맨 뒤의 회원들까지 다 도착하고 난 후에 다시 25미터를 출발한다. 그렇지 않으면 서로의 팔을 부딪치며 할 수밖에 없고, 그러면 다친다. 연이어서 접영을 해야 할 때는 한 팔 접영으로만 50미터를 몇 바퀴씩 돈다. 접영도 입수 킥보다 출수 킥을 더 세게 차야 한다는데, 보통은 입수 킥을 온몸에 힘을 주고 찬다. 접영의 교정도 갈 길이 멀다. 도대체 내 수영은 언제쯤 지적을 받지 않을까? 그런 날이 오긴 올까 싶다. (그런 날은 아직까지 오지 않았다. ㅜㅜ)
수영 영법이 어느 정도 가능해지면, 수업 전에 워밍업으로 수영장을 몇 바퀴 돌고 수업을 시작한다. 워밍업은 오리발이 없는 날은 자유형을 3~4바퀴 돌고, 오리발을 하는 날에는 자유형으로 5~6바퀴를 돈다. 오리발을 장착하고 1∼2바퀴를 돌 때는 자세에 좀 더 신경을 쓰면서 돌지만, 그다음부터는 자세 교정이고 뭐고, 마구 팔을 돌리게 된다. 아, 망했다고 생각하지만, 점점 더 멀어지는 앞사람을 빨리 쫓아가야지, 라는 생각만 들뿐이다. 그런 날은 수영이 잘되지도 않고 몸도 엄청 무겁다고 느껴진다. 앞으로 잘 나가지 않으니까.
맨 처음 오리발을 끼었을 때의 느낌을 잊을 수 없다. 갑자기 내가 수영을 엄청 잘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접영은 물 위를 나는 듯한 느낌. 반대로 오리발이 없는 날의 수영은 스스로 좌절감을 크게 느낀다. 오리발을 낀 날처럼 앞으로 쭉쭉 나가면 좋겠는데, 오리발의 유무에 따라 앞으로 나가는 느낌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오리발이 없으면 허우적거리며 열심히 해도 25미터가 저 멀리 있고 길게만 느껴진다. 오리발 없어도 수영을 잘해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