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티티카카 Nov 10. 2021

배려란 무엇인가

어쨌든, 수영 15

수영장을 오래 다니다 보면, 목욕용품이나 오리발 때문에 짐이 많아지며 사물함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다니는 수영장은 집에서 가까웠지만,  매일 수영 준비물과 목욕용품과 기본적인 화장품, 오리발 수업을 하는 날에는 오리발까지 들고 가기에는 짐이 많고 부피도 컸다. 챙겨야 할 짐이 많아지면서 가방도 큰 백팩으로 매야 했다. 오리발 수업이 있는 날은 따로 오리발을 챙겨가야 했고, 긴 오리발을 큰 수영 백팩에 낑낑거리며 겨우 담아가곤 했다. 매일 수영을 가는데 갈 때마다 이것저것 다 챙기는 것도 무척 번거로웠다. 


가끔 가장 필요한 물건을 잊고 빼먹어서 집에 갔다 오는 경우가 생기기도 했다. 수영복이라든지, 수모라든지, 수경이라든지, 샤워타월이라든지(쓰고 나면 잘 씻어 말리려고 빨랫대에 널어두었으니까. 물론 가끔 급해서 앞뒤 타임 사람들에게 수영복도 수모도 수경도 다 빌려서 수영할 때도 있었다 ^^*), 수건이라든지…. 하여간 물건이 많아지니 수영장에 사물함을 신청하려고 했다. 목욕용품과 부피가 큰 오리발만 사물함에 두고 다녀도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내 데스크에 가서 사물함이 있냐고 물으면, 담당 직원들은 제대로 듣지도 않고 무조건 없다고 대답하는 것이 일상다반사였다. 어느 날은 마음을 먹고 가서 찬찬히 하나하나 물어보았다.

“사물함은 어떻게 신청하나요?”  

돌아온 대답은 따로 사물함 신청서는 없고 수영장에 올 때마다 데스크에 와서 사물함이 있는지, 물어봐야 한다는 거였다. 이런 황당한 일이. 


그러니까 매일 아침에 수영을 하러 와서 데스크에 물어보고 사물함이 비었는지 물어보고 확인하라는 거였다. 수업이 끝나고 갈 때도 혹시나 하고 사물함이 생겼는지 물어보라는 거였다. 순간 이게 말이 되는 건가라는 생각을 했다. '빈 사물함이 나올 때까지 그렇게 매일 와서 수영을 하러 가면서 하고 나오면서 물어봐야 한다고?' 내가 때마침 물어봤을 때 빈 사물함이 생기면 내가 쓸 수 있다고 말씀하는 거냐고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다면서, 뭐가 이상하냐는 듯, 안 그래도 문의가 많아 죽겠는데 왜 이렇게 계속 귀찮게 물어보냐는 듯 대답을 퉁명스럽게 대충 해주셨다.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건네는 말 한마디가 사람 마음을 얼마나 좌지우지하는지 잘 모르신 듯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듯이,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물론, 매일 회원들의 다양한 항의에 격무에 시달리는 분들에게 다정함까지 기대하면 안 된다.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이렇게 하면 된다, 안 되면 안 된다라고 확실히 방법을 얘기해줘야 하지 않을까? 내가 듣기엔 전혀 성의가 없이 "없어요"가 끝이었다. 누군가 물어보는 것을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고 "안 돼요"와 "없어요"로 일관하시니 문의한 회원들의 불만도 폭주할 때였다. 자기보다 늦게 수영을 등록한 사람도 사물함이 있는데, 누구는 사물함을  두 개는 쓰는 것 같던데라며 말들이 많았다. 


직원분께 사물함이 필요하다는 사람들에게 신청서를 받아서 빈 사물함이 생기면 순서대로 연락하면 되지 않냐고 했다. 그랬더니 사물함 비었다는 연락을 받고도 등록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여러 가지가 복잡하다며, 몇 가지 이유들을 늘어놓으셨다. 우선 알겠다고 하고, 수영장 게시판에 올린다고 하자, 갑자기 내 개인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했다. 사물함이 생기면 연락을 주겠다고. 이건 무슨 일? 그렇게 사물함이 없다, 없다를 외치시더니... 이틀 후 갑자기 사물함이 생겼다고 전화가 왔고, 지금 바로 와서 등록하지 않으면 사라진다고 했다. ㅜㅜ


사물함 사용료는 1달에 3,000원, 보증비 1만 원은 나중에 사물함을 뺄 때 돌려준다고 했다. 이렇게 빨리 연락이 온 것도 황당했다. 나중에는 센터가 내부 수리 공사에 들어가면서 센터 안의 물품도, 사물함들도 한꺼번에 자연스럽게 정리가 되었다. 수영 수업을 듣지 않는데도, 사물함을 계속 이용하던 사람들을 체크해서 사물함을 정리했고, 수영 수업을 등록할 때 사물함 사용료도 같이 결제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물론 이후에는 사물함도 체계적으로 신청할 수 있게 되었다. 


사물함이 생겨서 좋았지만, 내가 배정받은 사물함은 맨 아래칸이었다. 맨 아래칸이든 맨 위칸이든, 사물함이 생긴 것에 감사하며 쓰고 있지만, 위치가 불편해서 다른 자리로 사물함을 옮겨볼까 하고, 안내 데스크에 가서 “사...” 자라고 말만 꺼내도 직원 분은 딱 잘라서, 없다고 말하신다. 사물함 신청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사물함에 대해 예민하게 관심을 갖고 계속 물어보니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사물함이 없을 때는 있으면 좋겠다 하곤, 막상 사물함이 생기니 좋은 자리를 갖고 싶은 마음이 드니, 사람 욕심은 참 끝이 없다.


수영할 때 맨 먼저 서는 1번 선두가 어렵다. 눈치도 빨라야 하고 선생님이 지시하는 것도 잘 따라서 해야 한다. 잠시 1번이  딴생각이라도 하는 날에는 줄줄이 제대로 무슨 동작을 하는지 따라 하지 못해 헤맬 때가 많다. 마찬가지로 수영 강습반의 맨 마지막 사람(꼴찌)도 마음은 편하지 않다. 마지막에 서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자신이 출발도 하기 전에 1번으로 출발한 사람이 벌써 돌아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느긋한 성격이 아니면 쫓아오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급해지고, 마구잡이로 수영한다. 내 속도대로 수영을 할 수 없다.


1번인 선두가 뒤를 바짝 쫓아오며 몇 바퀴 정도를 계속 돌면, 마지막 사람은 (자신 때문에 더 밀린다고 생각하고) 옆으로 빠져서 쉬기도 한다. 앞이 막히거나 뒤가 막히는 것에 신경 쓰는 사람은 제대로 수영을 할 수 없다.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자기 속도대로 하는 사람은 수영은 늘겠지만, 가끔 회원들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기도 한다. 눈치 빠르게 분위기 파악하고 쉬는 척 옆으로 빠져주는 분들도 있지만, 자기 운동한다고 줄줄이 밀리는 데도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선생님이 뒷사람이 어떻게 붙어오든 멀어지든 신경 쓰지 말고 자기 수영을 하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절대 쉽지 않은 일! 


정답은 없다. 각자의 스타일에 따라 수영이 다 다르다. 다른 사람들이 신경 쓰여 배려해서 운동이 안 된다고 하는 사람이 있고, 자기 운동만 신경 쓰느라 다른 사람의 운동에 방해가 되는 사람들도 있다. 어쨌든 같이 수영하는 사람들이니 좋게 좋게 합의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아니면, 어느 순간 감정이 쌓이고 쌓여 서로 미워하고 욕하면서 싸우기도 한다. 언제 어디서 부딪혀서 쌓여 있던 게 갑자기 터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물 밖에서는 좋은 사람도 물 안에서는 작은 거 하나에 예민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수영장에서는 마냥 좋은 사람인 듯한데, 씻고 나오면 이상한 사람들도 있다.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차이거나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그 사람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는지의 차이일 것이다. 


수영도 사람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수영할 때 친한 사람이 실수로 부딪히거나 발로 차면 웃으면서 괜찮다고 할 수 있지만, 탐탁지 않게 별로라고 여기는 사람과 부딪치면 고소를 한다느니, 손해배상 청구를 한다느니 하며 상대방이 사과를 하기도 전에 싸우는 경우도 있다.

사람의 관계란 무엇인가? 배려란 무엇인가? 수영을 하면서 생각한다.


사물함


 

작가의 이전글 수영에 중독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