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영화 '이게 원본에 가장 가까운 것 같다.'
푸티지 다큐멘터리footage documentary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라는 다큐멘터리의 장르가 있다. 옛 영상을 발굴해서 지금 연출자의 시선으로 재배치한 영상이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기존의 영상을 콜라주해 만들어진 영상’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이전에 사용했던 영상이지만, 지금 연출자의 시선과 의도에 맞춰 그 영상이 다른 의미로 비춰지는것도 푸티지가 활용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쉽게 생각하면 예전의 영상을 지금의 자료로 쓰는 것. 콜라주라고 생각해도 되겠다. 영화 ‘파라노말 액티비티’도 파운드 푸티지 형식을 차용했다.
I think this is the closest to how the footage looked
2012년 이스라엘에서 만들어진 영상이 하나 있다. 약 10분 정도 되는 아주 짧은 영상이다. 무려 선댄스에서 상까지 받은 작품이다. 감독 Yuval Hameiri 의 단편영화 ‘I think this is the closest to how the footage looked’ 이다. 해석하자면 ‘내 생각에 이게 그 영상이 어떻게 보이는지랑 가장 가까운 것 같아(파파고)’, 의역하자면 ‘이게 그 영상이랑 가장 비슷하겠다’? ‘이게 원본에 가장 가까운 것 같다’. 감독은 이 영상에 대해 한 마디로 정리했다.
A man brings objects to life in a struggle to recreate the lost memory of his mother’s last day.
영화의 내용도 사실 간단하다. '돌아가신 엄마의 마지막을 아빠가 찍었다.'가 핵심 내용.
엄마의 부재로 텅 빈 집에서
엄마의 흔적이 담긴 물건들을 하나씩.
(엄마가 '나를 행복하게 하는 꽃'이라고 설명했던 꽃이 담긴 화분,
엄마가 쓰던 물감, 엄마가 그린 그림, 옷장, 손잡이 등)
물건Object이 배우이자 배경이자 인물이자 핵심으로
이 영화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물건들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치약, 손잡이, 천사조각상 등이 인물을 대체하고, 뚜껑이 열린 물티슈가 발코니가 된다.
"2002년, 아버지는 어머니의 마지막 날을 찍었죠. 그런데 이 영상은 제가 보기도 전에 없어졌어요."
출처 뉴욕타임스
없어진 영상을 어떻게든 다시 만들어 보기 위해 그는 사물을 택했다.
존재하지 않는 영상을 어떻게 다시 보여줄 수 있을까? 돌아가신 엄마를 어떻게 보여줘야 할까? 대역 배우를 쓴다는 것도 터무니 없지. 그들은 내가 그리는 그림을 만들어내지 못할 거야. 내가 엄마를 연기하는 건 어떨까. 남아있는 영상이라도 반복해서 보고 있자니 그 다음날 아빠가 찍어놓으신 사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 영화에서 푸티지란
이 영화에서 언급되는 푸티지란 ‘실수로 지운 엄마의 마지막 영상’을 가리킨다. 그 영상을 어떻게든 재현해보기 위해 감독이 온갖 물건을 부랴부랴 꺼내 다시 찍었기 때문에 이런 제목이 만들어진 것이겠고.
‘엄마의 마지막을 추억한다’, ‘엄마를 그린다’는 점에서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푸티지는 그 뒤에 이어지는 아빠가 찍은 집안 풍경이 아닐까 싶다. 엄마가 쓰던 물감, 엄마가 그린 그림, 엄마가 먹던 약, 집안 곳곳 엄마의 흔적이 묻어나는 것들. 엄마의 마지막 영상은 없어졌지만, 아직은 엄마의 손길이 남아있을 그 물건들의 영상. 엄마의 일상을 채우던 것들이기 때문에 엄마를 그리워하는 데에 더 적합하지 않을까. 그 물건들만 봐도 생전의 엄마 모습이 떠오를테니.
음. 엄마의 마지막보다 더 원본에 가까운 것들은 엄마의 흔적이 남은 물건들인 것 같다. 아빠가 잃어버린 그 마지막 영상보다 집안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찍은 그 물건들이 오히려 더 소중하다. 엄마가 쓰던 물감들을 보면, 그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던 뒷모습이. 꽃이 담긴 화분을 보면, 그 화분만 보면 미소짓던 엄마의 얼굴이. 물론 엄마의 마지막 모습을 영상으로 남겨놓지 못했다는 것이 너무 아쉽고 애통하지만. 엄마의 손때가 묻은 물건들이야말로 그 마지막 영상보다 더 우리 엄마에게 가까운 것들이 아닐까.
친구와 무언가를 나누고 싶을 때 꼭 소개하는 영상
이 영화는 2018년 다큐멘터리 영화를 감상하는 모임에서 알게 됐다. 풋티지에 대한 이론을 짤막하게 공부하고 다른 영상을 보고 마지막으로 본 게 이 영화다. 당시 진행자는 이스라엘 영화지만 낯설지 않은 것만 보여주기 때문에 낯선 문화권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자연스레 공감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그 모임은 영화를 한 편 볼 때마다 질문을 던져야 했다. 뒤로 감기와 재생이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한 질문이다. 너무 뻔한 질문 아닌가요? 라는 싸한 피드백을 받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마지막에 반복되는 파란색 화면이 시린 듯 강렬하게 남아 했던 질문이다. 대체 무슨 심정이었을까. 어렴풋이 알것 같지만 그 당사자가 아닌 이상 나도 그 마음 안다고 자신 있게 말 못하겠지.
사물로만 모든 것을 보여주는 것. 사물에서 현실로 넘어가는 영상. 부인의 흔적을 보며 한마디씩 하는 아버지의 떨리는 목소리. 믿을 수 없다는 듯 되감기와 재생을 반복하는 화면. 그렇게 나타나는 파란색 조정 화면. 아직까지 남아있는 여운에 나는 새로운 사람과 만나고 그 사람과 친해지며 더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때 이 영화의 링크를 보내주곤 한다.
왠지 이 사람이라면 나랑 똑같은 걸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거나, 그 사람이 이를 보고 어떤 감상을 남길지 궁금할 때. 나는 이 영상을 주기적으로 찾아볼 만큼 푹 빠져있지만, 이 영상을 처음 볼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할지. 이 글을 읽은 당신 또한 이 영상에서 무엇을 느낄지.
https://www.youtube.com/watch?v=fNeRsAQ6nd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