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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ㅈㅈㅜㄴ Nov 18. 2020

실수로 영상이 지워져서,
어떻게든 다시 만들어봤다.

단편영화 '이게 원본에 가장 가까운 것 같다.'


푸티지 다큐멘터리footage documentary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라는 다큐멘터리의 장르가 있다. 옛 영상을 발굴해서 지금 연출자의 시선으로 재배치한 영상이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기존의 영상을 콜라주해 만들어진 영상’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이전에 사용했던 영상이지만, 지금 연출자의 시선과 의도에 맞춰 그 영상이 다른 의미로 비춰지는것도 푸티지가 활용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쉽게 생각하면 예전의 영상을 지금의 자료로 쓰는 것. 콜라주라고 생각해도 되겠다. 영화 ‘파라노말 액티비티’도 파운드 푸티지 형식을 차용했다.   




I think this is the closest to how the footage looked 



 

 2012년 이스라엘에서 만들어진 영상이 하나 있다. 약 10분 정도 되는 아주 짧은 영상이다. 무려 선댄스에서 상까지 받은 작품이다. 감독 Yuval Hameiri 의 단편영화 ‘I think this is the closest to how the footage looked’ 이다. 해석하자면 ‘내 생각에 이게 그 영상이 어떻게 보이는지랑 가장 가까운 것 같아(파파고)’, 의역하자면 ‘이게 그 영상이랑 가장 비슷하겠다’? ‘이게 원본에 가장 가까운 것 같다’. 감독은 이 영상에 대해 한 마디로 정리했다. 


A man brings objects to life in a struggle to recreate the lost memory of his mother’s last day.

 

 영화의 내용도 사실 간단하다. '돌아가신 엄마의 마지막을 아빠가 찍었다.'가 핵심 내용.  




콜록콜록 소리를 내며 치약이 앞뒤로 흔들린다.



영화는 먼저 사물로 표현되는 가족을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여동생과 나란히 앉아하나씩 사진을 보며 추억을 그리고.



꽃이 놓인 침대로 엄마를 눕히는 장면.



엄마가 돌아가시고 그 캠코더를 돌려본 주인공.테이프를 풀지 않았고, 그 다음 날 아침 아빠는그 사실을 모른 채 다른 영상을 찍는다.






 엄마의 부재로 텅 빈 집에서

엄마의 흔적이 담긴 물건들을 하나씩.

(엄마가 '나를 행복하게 하는 꽃'이라고 설명했던 꽃이 담긴 화분,

엄마가 쓰던 물감, 엄마가 그린 그림, 옷장, 손잡이 등) 

그렇게 영상을 찍고아빠는 테이프를 처음부터 튼다.

 

딸과 부인이 나란히 앉아있는 영상이 나오고.




누워있는 부인이 나와야. 나와야 하는데 없다.자신이 찍은 집안 풍경들만 나온다.


영상이 덮혀버린 것이다.그는 없어진 영상을 찾으려되감고 재생하기를 반복한다.




물건Object이 배우이자 배경이자 인물이자 핵심으로 


 이 영화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물건들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치약, 손잡이, 천사조각상 등이 인물을 대체하고, 뚜껑이 열린 물티슈가 발코니가 된다. 


"2002년, 아버지는 어머니의 마지막 날을 찍었죠. 그런데 이 영상은 제가 보기도 전에 없어졌어요." 

출처 뉴욕타임스


 없어진 영상을 어떻게든 다시 만들어 보기 위해 그는 사물을 택했다. 

존재하지 않는 영상을 어떻게 다시 보여줄 수 있을까? 돌아가신 엄마를 어떻게 보여줘야 할까? 대역 배우를 쓴다는 것도 터무니 없지. 그들은 내가 그리는 그림을 만들어내지 못할 거야. 내가 엄마를 연기하는 건 어떨까. 남아있는 영상이라도 반복해서 보고 있자니 그 다음날 아빠가 찍어놓으신 사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 영화에서 푸티지란 


 이 영화에서 언급되는 푸티지란 ‘실수로 지운 엄마의 마지막 영상’을 가리킨다. 그 영상을 어떻게든 재현해보기 위해 감독이 온갖 물건을 부랴부랴 꺼내 다시 찍었기 때문에 이런 제목이 만들어진 것이겠고. 


 ‘엄마의 마지막을 추억한다’, ‘엄마를 그린다’는 점에서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푸티지는 그 뒤에 이어지는 아빠가 찍은 집안 풍경이 아닐까 싶다. 엄마가 쓰던 물감, 엄마가 그린 그림, 엄마가 먹던 약, 집안 곳곳 엄마의 흔적이 묻어나는 것들. 엄마의 마지막 영상은 없어졌지만, 아직은 엄마의 손길이 남아있을 그 물건들의 영상. 엄마의 일상을 채우던 것들이기 때문에 엄마를 그리워하는 데에 더 적합하지 않을까. 그 물건들만 봐도 생전의 엄마 모습이 떠오를테니. 


 음. 엄마의 마지막보다 더 원본에 가까운 것들은 엄마의 흔적이 남은 물건들인 것 같다. 아빠가 잃어버린 그 마지막 영상보다 집안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찍은 그 물건들이 오히려 더 소중하다. 엄마가 쓰던 물감들을 보면, 그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던 뒷모습이. 꽃이 담긴 화분을 보면, 그 화분만 보면 미소짓던 엄마의 얼굴이. 물론 엄마의 마지막 모습을 영상으로 남겨놓지 못했다는 것이 너무 아쉽고 애통하지만. 엄마의 손때가 묻은 물건들이야말로 그 마지막 영상보다 더 우리 엄마에게 가까운 것들이 아닐까.   




친구와 무언가를 나누고 싶을 때 꼭 소개하는 영상 


 이 영화는 2018년 다큐멘터리 영화를 감상하는 모임에서 알게 됐다. 풋티지에 대한 이론을 짤막하게 공부하고 다른 영상을 보고 마지막으로 본 게 이 영화다. 당시 진행자는 이스라엘 영화지만 낯설지 않은 것만 보여주기 때문에 낯선 문화권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자연스레 공감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이 영화에 쏟아진 질문들


 당시 그 모임은 영화를 한 편 볼 때마다 질문을 던져야 했다. 뒤로 감기와 재생이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한 질문이다. 너무 뻔한 질문 아닌가요? 라는 싸한 피드백을 받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마지막에 반복되는 파란색 화면이 시린 듯 강렬하게 남아 했던 질문이다. 대체 무슨 심정이었을까. 어렴풋이 알것 같지만 그 당사자가 아닌 이상 나도 그 마음 안다고 자신 있게 말 못하겠지. 


 사물로만 모든 것을 보여주는 것. 사물에서 현실로 넘어가는 영상. 부인의 흔적을 보며 한마디씩 하는 아버지의 떨리는 목소리. 믿을 수 없다는 듯 되감기와 재생을 반복하는 화면. 그렇게 나타나는 파란색 조정 화면. 아직까지 남아있는 여운에 나는 새로운 사람과 만나고 그 사람과 친해지며 더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때 이 영화의 링크를 보내주곤 한다. 


 왠지 이 사람이라면 나랑 똑같은 걸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거나, 그 사람이 이를 보고 어떤 감상을 남길지 궁금할 때. 나는 이 영상을 주기적으로 찾아볼 만큼 푹 빠져있지만, 이 영상을 처음 볼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할지. 이 글을 읽은 당신 또한 이 영상에서 무엇을 느낄지.




https://www.youtube.com/watch?v=fNeRsAQ6nd8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49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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