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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더 Oct 24. 2023

"넌 참 불만이 많은 것 같아."

괴로움에 대한 일기 #1.


어제도 같은 시각에 잠이 깼다.

새벽 2시 40분.

집 앞으로 쓰레기 수거차가 지나가는 시간이다.


띠-띠-하는 긴 작업 알림음이 나고, 커다란 트럭이 털털거리며 멈춰 선다. 인부들이 길모퉁이에 쌓여있는 종량제 봉투들을 하나씩 털썩털썩 던져 넣는다. 10분에서 15분 정도 걸려 작업이 마무리되면 엔진이 우르릉 기침을 해대고, 도로 너머로 사라진다.

(가끔 짐칸을 기울여 별도의 쓰레기차에 쓰레기들을 솨르르릉하고 쏟아 넣는 배리에이션도 있다.)


예민한 성격이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귀가 밝아서 예민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예전부터 남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작은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쓰레기 수거차 소음 정도면 그리 작은 소리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나마 컨디션이 좋을 때에는 깨지 않고 푹 자거나 깼다는 사실도 거의 잊어버리기도 하지만,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다양한 이유로 상태가 그만큼 좋지 않을 때는 말똥말똥하게 눈을 뜬 채 쓰레기차의 알림음과 쓰레기 봉지를 트럭에 던져 넣는 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나는 쓰레기 수거차에 대해 그에게 말했다.

잠시 이야기를 들은 그는 한마디 했다.


넌 항상 부정적인 것에 집중하는 것 같아.


그리고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아무런 말도 하고 싶지 않았고, 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식탁에서의 대화는 끝났다.


남은 것이 침묵뿐이었으면 차라리 좋았겠지. 내가 '또' 불만만 투덜대서 남을 귀찮게 했다는 자괴감과 언제나처럼 나의 고통에 전혀 공감을 얻을 수 없었다는 외로움과 맛있는 저녁 식사가 아무런 감흥을 남기지 못하고 소화되는 불쾌감이 침묵 속에 찌꺼기처럼 떠다녔다.




그렇다. 나는 불만이 많다.

이것도 예민해서 불만이 많은 건지, 불만이 많아서 예민한 건지 알 수가 없다. 고치려고 노력해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각각의 특성을 어떻게 분리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귀가 밝고 예민한 불만쟁이로 살고 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가끔 불평불만을 늘어놓는다.


사실은 "아, 정말 힘들겠다."라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 같다.

"운동을 하면 밤에 푹 잘 수 있을 거야." "귀마개를 해보는 건 어때?"라는 말도 괜찮았을 것이다. 비록 시도해 본 일이고, 귀마개를 하면 알람 소리를 들을 수가 없어서 그만두기도 했지만.


적어도 그 말은 듣고 싶지 않았던 건 분명하다.


다분히 '답정너'같은 짓을 했다는 의식도 있고, '인과응보'라는 말도 떠오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고통을 늘어놓을 때 그 고통의 정도는 전혀 전달되지 못하고 '고통을 말하는 나 자신'이 분석당한다는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비참하다.


상대에 대한 분노와 아쉬움에 나 자신에 대한 자학과 슬픔, 막막함이 뒤섞여 거대하게 부풀어 오른다. 이 팽창한 비참함은 더 이상 말을 이어나갈 의지를 꺾고, 의사소통의 여지를 셧다운 한다.


나는 내가 정말로 불평불만밖에 말하지 않는, 같이 상대하고 싶지 않은 짜증 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여기서 더 가면 우울증으로 가는 지름길인데, 나는 경험상 더 넘어가지는 않고 길목에 가만히 서 있는 상태다.)

그동안 상대는 말 한마디에 또 예민하게 반응하는, 정말로 예민하기 짝이 없는 애라고 생각하겠지.




모든 것은 마음의 문제라고들 한다.

나도 그 말에 동의한다. 

이론적으로는.


내가 쓰레기 수거차나 윗집 아이들이 쿵쾅대는 소리가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한다면, 아무렇지도 않겠지.


나는 한때 마음의 평화라는 것을 찾기 위해 명상 클래스를 들으러 다니고, 신학서부터 과학책과 자기 계발서에 이르기까지 '마음'에 대한 책이라면 닥치는 대로 읽었다. 덕분에 세계는 주관적인 인식과 감각에 따라 개개인에게 다르게 존재할 수 있으며, 그것을 결정하는 것이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은 잘 알게 되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무엇도 내게 그것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가르쳐주지 않았다. 


눈을 감고서 온몸에 힘을 빼고, 소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생각하지 마.

-라는 걸 생각하지 마.

-라고도 생각하지 마.

-라고 생각하면 안 돼......


아니면 감사일기를 써야 할까? 

윗집 아이들이 참 활기차서 좋네요. 이런 애들이 대한민국의 미래가 된다면 얼마나 끔찍할까?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보다 많은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입니까? 너무 기뻐서 돌아버릴 것 같아요.


숱한 시도와 실패와 깊어가는 우울증을 지나 나는 약간의 요령을 터득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내가 컨디션이 좋다면 어느 정도의 소음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낮에 활기차게 활동하고 커피는 딱 오후 4시 전까지만, 즐거운 화제로 친구와 시시덕대다가 내일 일찍 일어나야지, 하는 결심과 함께 잠을 자면 되었다.

(그렇다. 마음의 문제였다. 거기까지는.)


생리 기간이라든가 친구와 다퉜다든가 내일 예상치 못한 일정이 생겼다든가 갑자기 삶에 회의를 느끼는 일은 나도 어쩔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오랜 분투 끝에 어둠 속에 누워서 '오늘 자긴 글렀군. 하지만 대충 견디고 내일은 진짜 9시에 자야지...'라고 생각하는 법을 터득했다. 그렇게 사흘을 내리 잠을 설친 적은 있지만, 어쨌든 4일째에는 그럭저럭 잘 수 있었다.


지금은 일주일에 하루이틀 정도를 빼고는 나름대로 무사히 보내고 있었다. 쓰레기 수거차의 소음에 퍼뜩 깼다가도 웅얼거리며 다시 잠이 들었고, 공공기물을 파괴하기 위한 테러 계획도 짜지 않았다. (예전엔 703호의 주민들이 토막살인 당하는 추리 소설을 구상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성이 불만쟁이라서 그런 건지 나도 모르게 "새벽에 돌아다니는 쓰레기 수거차 소리에 잠이 깬다니까!"라면서 투덜거리고 마는 것이다.

오히려 내가 정말 매일 울면서 밤을 새웠을 땐 아무에게도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조용히 죽고 싶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일이다. 아니, 내가 그때 그런 말을 했고 그런 답을 들었다면 진짜로 죽으러 갔을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어쩌면 내 무의식이 생존을 위해 일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먹고살만하니까 슬슬 불만이 생긴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너무 예민하다" "맨날 불평불만이다" "넌 항상 부정적이다" "그러려니 하고 넘기지 뭘 그런 걸 가지고"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내 마음은 다시 한번 엎어진다.

매번  다음번엔 다시는 남들 앞에서 불평불만 안 해야지,라고 결심하곤 하는데 기분이 풀어지면 또 까먹어버린다. 그러니까 역시 이건 매사에 불평불만인 내 탓이겠지. 네가 말하는 것처럼.


그래서 나는 잠을 자기 전에 눈을 감고 상상한다.

아무도 없는, 너도 없는, 누구와 전화 따위도 할 일 없는, 오로지 바람이나 파도 소리뿐인 아주 조용하고 먼 곳에서 - 이를테면 아이슬란드 같은 곳에서, 눈을 감고 푹 자는 상상을.

.... 오늘밤의 쓰레기 수거차가 다가올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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