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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 고슴도치 Nov 30. 2022

이 순간에도 우리의 DNA에 뭔가가 새겨지고 있어.

학부모상담주간의 생물학 이론






 친구s의 최근 가족 여행 사진을 함께 보았다. 사진 속 60대와 30대 20대 여자들이 너무나도 닮아있었다. 동그스름한 턱과 코를 찡긋하며 보는 사람마저 절로 웃게되는 장난기 어린 미소까지.





" 어머니랑 언니랑 너랑 똑같아. "

"그치, 몰랐는데 나이 들면서 더 닮아가는것 같아."




 DNA는 실로 강력한 것. 학부모 상담주간에 문을 열리는 순간부터 이 어른이 누구의 보호인지 알 수 있다. 모질, 눈동자 색깔, 아니 문을 두드리는 소리부터 어쩜 그리 닮는걸까? 나 역시 이 몸과 마음을 이루고 있는 많은 것들이 부모님으로부터 왔을 것이다. 이런 형질이 부모님의 부모님과, 또 그 부모님으로부터 세대를 거쳐가며 이어져온 것이라 생각하면 아득해진다.





  그래서인가, 사랑하는 사람의 옛 사진을 보다 보면 오만해진다. 어떤 어린이였을지도 모르면서 그저 귀엽고 지금에 비해 작고 연한 몸이 한없이 신기하고 어여쁘다. 굳은살이 박힌 손을 꾹 잡으며 사진 속 작은 손가락을 쓸어내리며 가만가만 상상한다. '그간 누구의 손을 잡고 어떤 샤프를 쓰면서 이렇게 커진걸까?'  가끔은 어떤 무한한 가능성이 방금 막 손에서 놓쳐버린 것만 같은 기분에 아쉽기까지 하다. 그래서 감히 또 한번 상상해보는 것이다.  '양가 가족들이 다 키가 되게 크네, 좀 더 집에서 봐줬으면 몇 센티미터 더 클 수도 있었을까?'. 정성을 다했을 그의 부모님께 무례한건가, 퍼뜩 떠올리기 전까지 그가 '어쩌면 될 수도 있었을' 더 멋진 어른을 구체적으로 그려도 본다.





 아, 무진장 아깝다. 그러면 20세기의 어느 어린이집에서 멜빵바지를 입고 웃고 있는 이 눈이 처진 어린이를 다 덮어놓고 내가 '직접' 사랑해주고 싶어져버리는 것이다. 체크셔츠가 아니라 더 예쁜 니트를 입혀주고 싶고 학비가 비쌌지만 급식이 맛있었다며 그가 자랑스레 이야기하는 그 자사고가 아니라 실은 나도 사실 잘 모르는 외국고등학교에서부터 공부를 시켜주고싶다.





 이렇듯 연인의 유년기 사진은 자주 보면 위험한 것. 보다보면 눈이 처지고 보조개가 깊은 이 예쁜 부산어린이를 내 품과 내 노력으로 서울에서 아니 미국에서 더 잘 키워보고 싶은 거만하고 이상한 충동에 휩싸여 버린다. 심지어 몇십년을 갈아 넣어서. 아마도 인류는 이렇게 대를 이어왔을 것이다. 우리반 아이들이 그들의 보호자와 닮은 것이, 나의 유전형질이 잘 보존되어 온 것 역시 이러한 사고과정에서 비롯되었겠지.





 한편 돼지고기를 가득 먹고, 온 피부가 뒤집히고는 무식했던 그 저녁회식을 후회하는 아침이라던지, 내 연봉에 비해 더 예민하게 좋은것을 알아볼 수 있는 기가막힌 눈과 손에 스스로 주눅 들때면 다 지겨워져 버린다. 끈질긴 체질과 기질을 무작정 세게 밀어내 버리고도 싶다.




 유전자가 무섭단 내게 J 선생님이 말했다.


"그대로 연결되는게 아니야. 생물학적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DNA에 새로운 정보들, 뭔가가 계속 새겨지고 있거든. "





 흥미롭다. 지금 우리가 유전형질을 DIY 하고 있는것일까? 어쩌면 내가 힘겹게 거스르는 일들, 어렵지만 맡아보는 책임들, 떨리지만 꾹 참아보는 말들, 이 수많은 시도들이 긴 역사의 일부분을 살짝 비틀어보는 노력인 것은 아닐까? '타고난 기질'이라 부르는 틀을 애써 늘리는 것. 그 틀은 아주 단단한 물성으로 되어 있어 모양을 바꾸기 힘들겠으나, 한편으로는 단단하기에 누군가가 바꾸어놓으면 쉽사리 돌아가지 않는 틀이라 생각하면서. 또 감사해졌다. 나의 윗세대 그리고 그 윗세대의 윗세대가 가장 좋은 것들을 골라서 보존한것, 가끔은 힘들여 그 틀을 바꾸어도가며 넘겨준 덕에 지금 이렇게 살고 있구나. (돼지고기 대신 소고기 얻어먹으니 이득이군!)






스스로에게 신선한 음식을 먹이고 자연스레 느끼는 아름다운 것들을 듣고 봐야지. 편안하게 느끼는 여러 사람들과 귀한 시간을 지속해야지. 그리고 한편으로  새로우며 어려운 것들도 애써서 부단히 해봐야겠다. 그게 어려운 날엔 과정이라도 글로 꾹꾹 담아 써보면서 오래 기억하려 노력해보고 싶다.  J 말이 맞다면, 그렇게  dna 안에 차곡차곡 곱게 새겨나가고 싶으니까. 그리고 진심으로 사랑하는 이에게도  가장 좋은 것들만 골라서 그의 안에 고이 새겨주고 싶다.


우리  아이들도 이렇게 새겨지고 그렇게 연결되어 나타난 귀한 개체일 것이란 생각에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러워 지는 날이다.



90년대 사진 속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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