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문예지 <베개> 8호(2024)
빨래판
_ 정정안
곰팡이가 피었다고 했다. 사이사이 홈마다 곰팡이가 피었다고. 햇볕을 보여준 적 없으니까. 물기 가득한 구석이 자리였거든. 알고 있으면서 너는 한 번도 자리를 옮겨준 적 없었다. 힘이 드니까. 무거워서가 아니라 오랫동안 박혀 있던 것을 새 자리에 두는 게 어떤 모험인지 알아서다. 어떤 용기가 필요한지 알아서다. 하지만 그게 내버려두는 이유가 되나. 그 이유가 너를 가볍게 해줄까.
아무도 나서주지 않아서 나는 태어나기 전부터 곰팡이를 마주했다. 거품이 안 나는 싸구려 비누와 차가운 물이 저기 있다. 빨래판에 닿는 부른 배를 하고서 엄마는 남의 옷을 빨았다. 속으로도 시댁 욕 한마디 못했다고 엄마에게 들었다. 사실 내가 욕하고 있었어, 엄마. 엄마를 대신해 욕을 하고 있었어. 지금도 나는 아직 젊은, 무릎이 멀쩡한 엄마를 봐. 그리고 그 안의 나를 본다. 발길질은 어쩌면 다른 신호. 거기서 나오라는 손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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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발표.
시는 처음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