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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이 설화를 만드는 이유

위로수집 일지 26

by 단비

엄마는 딸과 함께 가보고 싶은 곳을 얘기하다가 설악산 오세암의 전설을 들려주셨다. 한 승려가 일찍 돌아가신 형님의 어린 아들을 절로 데리고 와 키웠는데, 겨울을 날 양식을 구해 오기 위해 5살 난 조카에게 관세음보살을 읊으며 기다리고 있으라 일러두고 산을 내려갔다.


그러나 갑자기 몰아닥친 폭설로 산길이 모두 막혀버렸다. 승려는 몇 번을 죽을 각오로 산을 올랐으나, 번번이 정신을 잃고 쓰러져 구조되기를 반복했고, 이듬해 봄이 되어야 조카를 두고 온 절로 돌아갈 수 있었다. 절망적 결말이 예견되는 이 시점에서 기적이라는 반전이 일어난다. 조카는 관세음보살의 비호를 받아 건강하고 평안하게 잘 있을 수 있었고, 불성을 이루어 파랑새가 되어 날아갔다.


엄마는 승려의 깊은 신심과 어린아이의 순수한 동심이 하늘에 닿아 기적이 일어난 행복한 결말에 마음이 가 있었지만, 내 마음은 기적 말고는 아픔을 견딜 방법이 없었던 두 사람의 고통 한가운데 서 있었다. 조카에게 가기 위해 눈 덮인 산을 오르다 쓰러지기를 반복하는 승려, 삼촌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배고픔과 목마름과 두려움과 외로움을 견디는 5살 어린아이. 그 둘의 고통을 상상하며 명치끝의 통증을 참아야 했다.


승려는 죽은 조카의 영혼이 배고프지도 목마르지도 두렵지도 외롭지도 않기를 바랐을 것이다. 조카가 고통의 사슬에 메이지 말고 영혼의 자유를 얻어 해탈할 수 있기를 간절히 빌었을 것이다. 승려는 진실로 그렇게 되었다고 믿어야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위로하기 위해 믿기 어려운, 그러나 간절히 믿고 싶은 설화를 만들어내는 건 아닐까?


내가 겪는 이 고통의 끝에도 믿기지 않는 설화 같은 이야기가 생길까? 내가 간절히 믿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파랑새가 되어 날아간 동자처럼 지나간 시간에 메이지 않고 자유롭고 가볍게 날아오르게 되었다는 이야기였으면 좋겠다.


네이버 이미지 추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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