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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을 비는 방법

위로수집 일지 25

by 단비

엄마와 근교 단풍 구경을 나갔다. 계곡의 바위 위에 작은 돌탑이 야무지게 쌓아 올려져 있었다. 그 누군가의 소원을 맡아 들고, 쉽게 무너지지 않을 기세로 중심 잡고 서 있는 모습이 퍽이나 믿음직스러웠다. 저 돌탑을 쌓은 그 누군가는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누구를 위해 빌었을까?


인간은 모든 곳에서 어떤 방법으로든 소원을 비는 것 같다. 바위에 돌을 쌓고, 강에 등을 띄우고, 하늘에 연을 날리고, 그릇에 물을 떠 놓고, 나무에 자물쇠를 걸면서 우리는 소원을 빈다. 인간의 상상력은 소원을 빌기 위해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나는 무슨 소원을 빌어야 하나? 지금의 이 고통이 빨리 끝나길 바란다고 빌까? 고통이 끝난 자리에 행복이 있길 바란다고 할까?’ 순간 나의 소원이 초라하고 구차하게 느껴졌다. 현실을 벗어나게 해 달라는 소원이 너무 현실적이어서 슬펐다. 비현실적인 꿈같은 소원을 빌 수 있었다면, 나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한 소원을 빌 수 있었다면 좀 더 소원다웠을 것 같았다.


슬픈 듯, 부러운 듯 아련히 돌탑을 바라보고 있는 딸을 등 뒤로 두고, 엄마는 가파른 돌길을 한 발 한 발 조심히 딛고 계곡으로 내려가 바위 위에 좀 더 야무진 돌탑을 쌓아 올리고 계셨다. 자식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은 세상 누구한테도 지지 않을 태세로, 자식에게 어미가 쌓아 올린 돌탑의 건재함을 보여주고 싶으셨나 보다.


엄마가 무슨 소원을 비셨든, 그 소원이 꼭 이뤄졌으면 좋겠다. 긴 시간 걱정만 끼치는 애물단지를 소중한 보물단지로 보듬고 살피는 그분의 소원의 무게가 나에게로 묵직하게 얹어졌다. 그렇게 나는 엄마의 소원을 맡아 들고 있는 야무진 돌탑이 되었다.


소원돌탑.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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