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수집 일지 24
우울과 공황을 겪으면서 낮 동안은 숨 막힘이, 밤에는 잠들지 못함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잠이 오지 않는다고 책이나 TV를 볼 수 있는 게 전혀 아니었다. 몸은 고단해서 잠보다 더한 피곤 속에 빠져 있는데, 정신은 잠에 들지를 못하는 상태였다.
잠자리에 눕기 전부터 잠들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과 싸워야 했다. 잠들지 못하는 밤이 얼마나 길지, 그렇게 새운 밤이 또 얼마나 몽롱한 낮으로 이어질지 걱정이 앞섰다. 그리고 무엇보다 잠의 달콤함이 너무나 간절했다. 목이 마른데 물을 구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심정이었다.
잠투정이 유독 심했던 아들의 어릴 적이 생각났다. 나는 잠이 쏟아져 내리는데 아이는 몇 시간을 칭얼대며 잠을 자지 않았다. "쉿, 조용해."라고 으름장을 놓으면 더욱 울어재끼는 통에 거의 5살이 될 때까지 내 가슴 위에 아이를 올려놓고 잠을 자야 했다. 잠들지 못하는 자기를 두고 모두 잠들어 버리는 깜깜한 밤이 아이한테도 두려웠을까?
다 큰 성인이 된 아들은 그런 적이 전혀 없다며 자신은 머리만 대면 잠든다고 한다. 나는 이제 잠들지 못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아이를 달래야 했다. 규칙적인 일과를 보내고, 양질의 식사를 하고, 적당한 운동도 매일 했다. 모든 일상이 밤잠을 자기 위한 목표에 맞추어 돌아갔다. 낮에 깨어 있기 위해 밤에 잠을 잔 게 아니라, 밤에 잠을 자기 위해 낮에 깨어 있었다.
그래도 잠 못 드는 내 안의 아이는 계속 칭얼거렸다. 어느 날 그 아이를 달래 보려고 싱잉볼(singing bowl) 소리를 들려주었다. 싱잉볼 사용법을 따로 배운 적은 없다. 그냥 처음에는 책상 위에 두고 마음이 산만할 때 한 번씩 쳐서 소리 진동을 느꼈다. 소리 진동이 아주 작게 가늘어지면서 완전히 사라지는 데 1분이 넘게 걸린다. 그 시간 동안 그 파동을 느끼는 것에 정신이 쏠려서 다른 상심들이 잠시 잊히는 듯했다. 단 1분의 평안이더라도 너무 귀하고 소중했다.
그래서 침대 머리맡에 두는 싱잉볼을 하나 더 장만했다. 손에 막대를 쥐고 싱잉볼을 울려 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치기를 반복했다. 몇 번을 치다 보면 막대를 쥐었던 손에 힘이 빠지면서 느슨하게 풀린다. 그러면 그대로 힘을 풀고 놓아버리면서 잠에 들었다. 다시 금방 깰 때도 많았다. 그러면 또 막대를 쥐고 싱잉볼을 울리며 자장가를 들려줬다.
싱잉볼은 안 잔다고 야단치지도, 잠 못 든 채로 혼자 두지도 않을 거라는 내 안의 아이와의 약속이었다. 아이는 안다. 자기가 지금 못나게 굴고 있다는 걸. 그런데 나도 안다. 그 아이도 그러고 싶지 않다는 걸. 그 아이에게, 못난 아이가 되어버린 나에게, 내가 많이 안쓰러워한다는 걸, 못나게 굴어도 깊이 아낀다는 걸 전하기 위해서 싱잉볼이라도 울려본다. 말을 해도 생각을 해도 전해지지 않는 마음을 싱잉볼 소리로 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