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수집 일지 31
좋은 벗이 나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책을 한 권 선물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생애와 작품에 관한 것이었다. 긴 옥고를 치러야 했던 도스토예프스키에게 감옥생활 동안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인간혐오, ‘증오’였다고 한다. 그는 감옥의 죄수들에게서 상상할 수 없는 거대한 악을 봤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내면의 격동과 혼돈을 겪었다. 그로 인해 그는 증오심으로 가득 찬, 인간 혐오자가 되어 갔다.
‘증오’는 감옥 그 자체보다 더 끔찍한 구속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에 대한 증오감을 떨치지 못한다면 감옥에서 나간다 해도 영원히 마음의 감옥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분명하게 지각했다. 그런 그에게서 증오의 족쇄를 벗겨낸 두 가지는 사람에 대한 새로운 시선과 신을 향한 사랑이었다.
그중 나의 관심이 쏠린 곳은 ‘사람에 대한 새로운 시선’이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사람에 대한 시선을 새롭게 했을까? 도스토예프스키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불러내어 그 기억의 눈으로 현재를 바라봄으로써 증오심을 치유했다고 한다. 나에게도 과거의 기억들은 현재 겪고 있는 고통을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게 해 준 치유의 도구였다.
과거는 ‘기억’이라는 모습으로 언제든지 현재와 함께 할 수 있는 영원불멸의 시간인 것 같다. 사라진 시간이 아니라 잠자는 시간인 것이다. 현재가 일어나라고 흔들어 깨우면 언제든지 생생한 모습으로 되살아난다. 그런데 어떤 과거는 현재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되고, 어떤 과거는 현재의 족쇄를 풀어주는 열쇠가 될까?
우리는 과거를 있는 그대로 기억하지 않는다. ‘기억은 재생되는 게 아니라 재구성된다.’ 이것은 심리학에서 실험을 통해 이미 증명된 바다. 그렇다면 치유가 될 만한 과거의 기억은 실제로 존재했을 수도 있지만, 때로는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 과거의 기억을 재구성했을 수도 있다. 즉, 현재 떠올린 기억은 과거를 족쇄로 만들 수도, 족쇄를 푸는 열쇠로 만들 수도 있다.
과거로 나를 묶어 구속할지, 나를 풀어 치유할지는 현재 나의 선택에 달려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후자를 선택했다. 나도 그러고자 한다. 다행히 기억을 재구성하기 위해 많은 수고를 들이지 않아도, 현재의 고통을 달래주는 과거의 기억들은 새록새록 떠오른다. 다정한 위로가 되어주는 과거의 기억들에게, 그 기억 속에 함께 하는 소중한 이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