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난함과 까칠함 사이의 '적정선'은 어디쯤일까?
실제 있었던 대화를 각색하기도, 상상으로 대화를 구성하기도 합니다. 내 안의 타자와 나누는 대화이기도 합니다. 질문이 남기도, 깨달음이 남기도, 감정이 남기도 해서 '남는 대화'입니다.
한 까칠: 넌 그 사람 싫다면서 잘도 맞추더라.
왕 무난: 그니까. 좋으면 안 맞출 텐데, 싫으니까 맞추게 되네.
한 까칠: 좋은 사람한테 맞춰야는 거 아냐?
왕 무난: 좋으면 잘 맞으니까 일부러 맞출 필요가 없지.
한 까칠: 싫으면 안 맞으니까 안 맞추면 될 거 아냐?
왕 무난: 안 마주치면 안 맞추지. 그런데 마주치면 맞춰야지. 안 보고 살 거 아닌 이상은.
한 까칠: 와, 난 너 그 사람한테 그렇게 잘 맞추는 거 진짜 싫어.
왕 무난: 그래, 내가 너한테 이렇게 안 맞췄으면 우린 진즉에 쫑 났어.
싫은 사람을 대할 때 무난함도 까칠함도 아닌 적정선은 어느 지점에 있을까?
사회생활에서 한없이 무난하기만 한 사람도, 극도로 까칠하기만 한 사람도 드물다. 우리는 대부분 그 사이 어디쯤의 태도를 취하게 된다. 매우 적정한 그 어디쯤을 정하는 일은 경험이 쌓이면서 체득되기도 하고, 교육이나 독서를 통해 학습하기도 한다.
자기 자신과 잘 지내는 사람이 타인과도 잘 지낼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측면에선 싫은 사람과 잘 지내는 사람은 일방적으로 상대에게 맞추기만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자기 자신에게 잘 맞추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결국 싫어하는 사람과 잘 지내기 위한 적정선은 자기 자신과 잘 지내는 데 필요한 기준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