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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니 Dec 14. 2020

나를 소외시키는 나


누군가 나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면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당신은 무엇을 좋아하나요?, 당신은 무엇을 할 때 제일 좋은 가요?, 당신에게 시간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당신은 누구입니까?”.

나는 나를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춘기 이후에 나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었나? 그러고 보면 나를 외면하고 소외시키고 있는 사람은 나 자신인 것 같다. 언제부터 나의 욕구를 외면하고 거절하게 되었을까?     

소외를 실존적인 맥락에서 정의할 때 대인관계적 소외, 개인 내적 소외, 실존적 소외로 나눌 수 있다. 우리는 이 중에 대인관계적 소외가 소외의 전부를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어떤 대상으로부터 느끼는 소외도 있지만 자신의 욕구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개인 내적인 소외도 있다. 이것이야말로 이유 없는 분노와 우울감을 불러일으키는 근원일 것이다.      

개인 내적 소외는 인간이 자기 느낌이나 욕구를 억압하는 가운데, ‘의무’ 혹은 ‘해야 하는 것’을 자신의 소망으로 인식함으로써, 자신의 욕구를 밀어낼 때 나타난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고도 화를 내기는커녕 그들의 요구대로 살아가는 자녀가 나름 얻는 것이 있다. 바로 존재감이다.


“착해야만 인정받을 수 있어!, 무조건 순종해야만 해!”

이런 사람은 성인이 된 후에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의견에 대해 너무도 의존적이 된다. 왜냐하면 자신이 무엇을 느끼는지 더 이상 판단할 수조차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개인 내적인 소외를 방치하고 계속 알아주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많은 경우 신체화 증상이나 감정 조절의 어려움을 경험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은 자신을 알아주지 않아 분노로 가득한 무의식이 만들어낸 결과일 것이다. 결국 가장 위험한 것은 나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현재 내가 부모라면 그리고 앞으로 부모가 된다면 이런 상태의 내가 부모가 된다는 것은 큰 함정에 빠지기 좋은 상태라는 점을 명심하길 바란다. 부모로 사는 동안에는 어쩔 수 없이 나를 소외시켜야 하는 상황에도 나를 단단히 챙기며 살았던 사람은 중심을 잘 찾아가며 육아기를 보낼 수 있다.      


⌜우울을 호소하는 한 여성이 나를 찾아왔다. 이 여성은 한 사람의 아내이고, 엄마인데 모든 것이 엉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름대로 애쓰며 결혼생활을 하고 있지만 결과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고 오히려 남편과의 관계도 자녀들과의 관계도 문제가 있다고 느낀다. 오히려 자녀들에게 과도하게 학습을 시킨다고 남편으로부터 공격받고 있다. 모든 에너지가 가족에게 향해있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인정받기는커녕 뜻대로 되지 않으니 우울한 것은 당연하다.⌟     

 이 여성의 우울은 어디서 왔을까? 이 여성이 가치 있다고 선택한 다양한 가면들을 들여다보았다. 엄마로서의 가면, 아내로서의 가면, 주변 사람들을 대하는 가면..  실제로 이보다 더 많은 가면을 쓰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나의 존재감을 찾으려는 애씀이 느껴졌다. 실제로 이 여성은 나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고 있었다.

때론 이 여성은 소외감을 채우기 위해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타인을 통해 나의 유능감을 느끼고 다른 사람을 통해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도 확인한다. 하지만 그런 만남에도 내가 없다. 나의 욕구가 무엇인지도 모르니 내가 원하는 바를 찾아가는 것도 어렵다.

이 여성이 자신을 소외시킬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나의 감정과 생각을 인식하고 드러내는 것이 오히려 더 큰 상처로 돌아오는 불행한 기억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이 여성은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이다.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 이해가 높아야 한다. “나는 어떤 욕구로 아이를 대하는지? 자녀를 통해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은 무엇인지?”. 만약 아이를 키우면서 뜻대로 되지 않아 지속적으로 분쟁이 있고 마음이 불편하다면 방향을 아이에서 나로 바꾸어야 한다.

자녀에게 요구하는 것들을 보면 그것이 나의 욕구일 수 있다. 따라서 아이를 통해 자신의 욕구를 채우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그것을 통해 나의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나의 욕구를 살피지 않고 자신을 소외시킨다면 좋은 부모도 좋은 배우자도 될 수 없다. 그보다 행복한 내가 되기 힘들 것이다. 그러니 내 욕구부터 돌보는 것이 나와 가족을 위해 더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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