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일어나 책상 앞에 앉으면, 나는 바로 옆에 있는 창문의 블라인드를 살짝 젖혀 그 틈새로 밖을 내려다본다. 우측에는 집 앞 공원의 푸릇푸릇한 나무들이, 좌측에는 일자로 길게 뻗은 도로가 보인다. 새벽 5시 30분이 채 되지 않은 이른 시간인데도 도로에는 벌써 차들이 몇 대 지나다닌다.
조그맣게 내려다보이는 차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릴 적 갖고 놀던 작은 장난감 자동차 같다는 생각이 들어 슬쩍 미소가 지어진다. 어린 내 손바닥만 했던 색색깔의 차들. 뒤로 살짝 당겼다 놓으면 바퀴가 또르르륵 소리를 내며 앞으로 슝- 달려가는. 어른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도로에 보이는 저 차들을 손으로 당겼다 놓아보고 싶은 장난기 가득한 충동을 느끼곤 한다.
예전부터 새벽에 지나다니는 차를 보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아직 잠이 덜 깬 채로 집에 있는데 저 사람은 새벽부터 서둘러 준비하고 나왔겠구나. 나도 부지런히 살아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좋은 자극이 되기도 하고, 하루를 시작하는 청량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이런 궁금증도 생긴다.
저 사람들의 오늘 하루는 어떨까?
저들은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까.
그렇다면 내 하루는 오늘 어떨까.
나는 지금 어떤 인생을 살고 있는가.
세상에 얼마나 많은 다양한 인생이 존재하는지를 자각하는 순간이 나에겐 이따금씩 필요하다. 내 시야를 넓혀주고 관점을 넓혀주는 그런 순간이.
눈앞의 일에 지나치게 몰두하고, 성과에 집착하고, 내 인생의 모든 것이 너무나 중요해질 때, 나는 점점 무거워지는 것을 느낀다.
그러다 이 세상에 셀 수 없이 다양한 삶이 존재하고 내 삶 역시 그중에 하나임을 깨달을 때, 내가 이 거대한 우주 에너지에 속한 '하나의 작은 파닥거림'과 같은 존재라는 걸 깨달을 때, 나는 한결 가벼워진다. 대자연 앞에 서면 내 고민거리가 먼지처럼 여겨지는 것과 같은 원리랄까.
그래서 새벽 어스름을 뚫고 달리는 차들을 보는 게 좋다. 나를 겸허해지게 만드니까. 동시에 더 가볍게, 더 재밌게 살고 싶어지니까.
내일도, 모레도 나는 새벽에 밖을 내다볼 테다. 내가 하나의 작은 파닥거림이라는 걸 확인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