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프로 Jul 13. 2024

미루기 대마왕

마지막 글을 쓴 이후로 10일이 지났다. 무려 10일이라니. 아무리 못해도 일주일은 넘기지 않으리라 결심했건만 구렁이 담 넘어가듯 결심을 어겨버렸다. 지지난주에는 글이 잘 써져서 며칠을 연달아 썼었는데.


요새 좀 게을러졌나?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자꾸 해야 되는 일들을 미루고 있다. 이것만큼이나 스리슬쩍 에너지를 갉아먹는 것도 없다. 그 일을 하지 않는다고 마음이 편한 건 아니니까. 마치 옷에 묻은 얼룩처럼, 그게 거기 있는 걸 안다. 그래서 신경 쓰인다.


나는 멀티가 어려운 사람이라 사소하게 신경 쓸 것들이 많으면 집중력이 흐트러진다. 그래서 지금 당장 중요한 일이 아니면 자꾸 미루게 된다. '잠깐만, 이것만 하고 봐줄게' 하는 마음이랄까. 최근에도 계속 미루고 미룬 일들이 있다.


-식탁 의자 사기

-침대에 깔 여름 패드 사기

-행거 덮개 사기

-사용 안 하는 물건 당근에 올리기

-싱크대 청소하기

-브리타 정수기통 세척하고 필터 갈기

-공기청정기 필터 새로 사기


이중에 몇 개는 드디어 해결했다. 오늘 싱크대 청소를 했고, 식탁 의자, 여름 패드, 행거 덮개를 샀다. 식탁 의자와 여름 패드 사는 건 거의 두 달을 넘게 미룬 일이다. 물건을 사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나는 또 대충 사는 성격은 아니어서 이것저것 비교하고 고르는 시간이 꽤 걸린다. 생필품도 매번 떨어지기 직전에 미리 사놔야 한다. 은근히 귀찮다.


미루던 일 하나를 해결하면 기다렸다는 듯 다른 일이 또 등장한다. 며칠 전에 내 반바지 단추가 달랑달랑해서 일주일을 미루다 꿰매었는데, 오늘은 남편이 덜렁덜렁한 단추가 달려있는 바지를 냅다 내밀고 출근했다. 그 바지는 지금 책상 옆 행거에 걸려있다. 주말을 넘기지 않겠다 다짐해 본다.


하지만 이 모든 자잘 자잘한 일들을 다 압도하는, 내 미루기력(力)이 최대로 발휘되고 있는 영역은 아마도 '유튜브 영상 찍기'가 아닐까. 잠든 카메라를 언제쯤 깨울는지. 지난주부터 글쓰기 영역까지 침범한 걸 보면 내 미루기력은 역시 보통이 아니다.


사실 요즘 내 미루기력이 활개를 치는 이유가 있다. 내 열정이 한 군데에 쏠려있기 때문이다. 투자 공부. 몇 년 전부터 내 열정이 향하는 곳이다. 이건 별다른 노력이 필요 없다. 그냥 하게 된다. 살면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냥 내가 재밌어서 지속적으로 하게 되는 건 딱 두 가지다. 마음공부와 투자 공부.


마음공부는 이미 나에게 익숙한 분야다. 하지만 투자 공부는 여전히 목마르다. 아직도 배워야 하는 게 많다. 그래서 집중하게 된다.


앞서 말했듯 멀티가 어려운 사람이다 보니 여러 가지를 신경 쓰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중간중간 살림도 해야 하고, 체력이 떨어지지 않게 운동도 해야 하니까. 매일 하는 명상과 독서도 빼놓을 수 없고! 그래서 자꾸 미루는 일이 생긴다.


모든 일을 다 잘할 수는 없다. 하루를 충실히 살아가다 보면, 마음이 가는 대로 하다 보면 나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삶이 펼쳐질 것이라 믿는다. 가장 관심이 가는 분야에 마음을 쏟겠지만, 삶의 다른 영역들에 대한 관심과 노력도 필요할 테니 줄다리기를 잘해봐야겠다. 글도 더 자주 쓰고.


미루기력(力)은 미루던 일을 하나씩 끝낼 때마다 약해진다. 글을 썼으니 오늘 좀 약해졌으려나? 주말에 남편 바지 단추 꿰매는 것과 공기 청정기 필터 사는 것도 해결해야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