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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저너리 Aug 27. 2020

[에세이 115] 밥 짓는 이방인

[제이영의 크루 에세이11] 무엇을 할 때 가장 잘 쉬었다고 느끼나요?


Three meals a day :: 삼시세끼 

차줌마는 음식을 진짜 금방 맛있게 만들어낸다 (출처 : 삼시세끼 프로그램)

몇 년 전 유명한 방송 프로그램 제작자인 나영석 사단이 ‘사단’을 낸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삼시 세 끼이다. 이 프로에서는 배우 차승원과 유해진이 나와서 제목 그대로 삼시 세 끼를 직접 만든다. 그냥 밥해먹는 것인데 뭐가 그렇게 특별할까? 헀는데 보는 것 자체가 힐링이었다. 산촌 편에서는 직접 재료를 밭에서 공수해서, 어촌 편에서는 직접 바다에서 생선을 낚시해서 요리하고, 먹고 설거지하는 방송 그러면 하루가 저물었다.



밥해먹는 건데 뭐가 그렇게 특별해?

왜 사람들은 밥 짓는 프로를 보면서 힐링된다고 헀을까?



노르웨이의 살인적인 물가 :: ‘강제’ 삼시세끼

 스위스로 여행을 갔을 때 겪었던 물가 충격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로컬 햄버거 가게에서 햄버거 세트에 대략 4만 5천 원을 지불했다. 그 뒤로 다시는 비싼 나라로 여행을 가지 않겠다 다짐했건만, 멋 모르고 온 노르웨이는 나에게 더 큰 충격을 주었다. 돈을 버는 입장(최저시급:28000원)에서 물가는 그렇게 비싸게 느껴지지 않겠지만, 나는 연구보조로 간간히 돈을 버는 입장이라 외식하는 게 마냥 편하지는 않다.

*물가 예시* 

오이 1개=3000원

우유 1통 = 3200원

바에서 마시는 맥주 한잔 = 20000원

밖에서 사 먹는 피자 1판 = 26000원

레스토랑에서 먹은 저녁 = 35000원

*물가 간단 정리*

마트에서 재료 사다가 직접 요리 = 한국 외식비

노르웨이 외식비 = 한국 외식비 X 3 


비싼 물가 덕분에 삼시 세 끼를 직접 해 먹으며 살아가고 있다. 한국에서 살아오는 동안 요리한 것보다 노르웨이 와서 요리한 횟수가 더 많은 것 같다. 한국에 있었다면 배달해서 먹었을 음식들을 유튜브를 보고 대강 만들어 먹고 있다. 양념치킨은 시켜만 먹는 건 줄 알았는데, 너무 먹고 싶어서 백 선생님 따라 만들어보았다. 짜장면, 순두부찌개, 김밥, 제육볶음, 가지볶음, 피자, 브라우니, 당근케이크, 티라미수 케이크, 연어 사케동, 오코노모야끼, 불고기, 라자냐, 우동, 달고나 커피. 저번 주말에는 비가 와서 닭볶음탕을 만들었는데, 1) 너무 맛있어서 감동 2) 내가 만들었다는 게 나 스스로도 너무 기특해 엄마에게 ‘나 이제 시집가도 되겠어’라는 문자를 보냈다. 요즘은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레스토랑에서 먹는 거보다 싸겠지 뭐, 재료 사서 해 먹어야지’라는 마인드로 살아가고 있다.

닭볶음탕, 짜장면, 그리고 나를 시집보내기 싫은 엄마의 그래?


무엇을 했을 때 가장 잘 쉬었다고 느끼나요 :: 내가 요리해서 내가 먹었을 때

 

 오늘 저녁은 닭가슴살과 야채들을 올리브 오일을 뿌리고 오븐에 구워서 잘 먹었다. 나는 왜 무엇을 했을 때 가장 잘 쉬었다는 질문에 밥 해 먹었을 때를 떠올렸을까? 나는 왜 요리하고 먹는 것에 이렇게 행복해할까? 


올해 초 나 홀로 아픈 적이 있었다. 열이 높이 오르고, 근육통에 그저 감기몸살이 왔나 했는데 며칠을 심하게 앓았다. 한국이었다면 쌍화탕에 감기약 먹고 자고 일어나면 개운 할 텐데, 살기 위해 홀로 마트에 가서 오렌지와 귤을 잔뜩 사와 며칠 내내 계속 먹었다. 엄마는 잘 못 챙겨 먹으니까 아픈 거라고 하셨다. 혹시나 돈이 부족하면 돈을 부쳐줄 테니 아끼지 말고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사 먹으라고. 엄마의 마지막 말은 “아프면 안 된다.”였다.


아파서 골골대는 동안 계속 생각했다. 잘 먹고 잘 살아야지. 아프지 말아야지. 나는 아프면 안 된다. 그때부터 식사를 단순하게 배고픔을 가시는 것 이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몸에 좋은 것, 먹고 싶은 것을 생각해서 밥을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오늘도 잘 먹었습니다.

아침, 점심, 저녁을 ‘나 스스로’ 무사히 오늘도 챙겨 먹었다는 안도감. 엄마한테 자신 있게 오늘도 잘 먹고 잘 지낼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어서 좋다. 백종원, 아하 부장, 하다 앳홈 등의 유튜브를 보고 내가 고른 먹거리로, 먹을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 먹는다는 게 얼마나 뿌듯한지 모른다.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한 뒤 편안하다. 오늘도 이렇게 잘 먹었구나.


논문이 생각한 대로 잘 진행이 되지 않아도, 내 몸 하나 건사할 정도의 생존 능력은 갖추고 있구나. 나는 혼자서도 음식을 차려먹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으니 쓸모없지 않다고 나 스스로에게 토닥토닥하는 느낌이다. 아마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주인공인 혜원이 임용고시에서 낙방해 시골로 귀향해서 음식들을 만들어 먹는 과정 속에서 쉬고 위안받는 모습과 내가 비슷하다고 느꼈다. 

영화 속 주인공 혜원이 봄꽃 파스타를 먹는 장면. 제철 음식들은 어쩌면 혜원 마음속의 허기를 달래준 것은 아닐지 (출처 : 리틀 포레스트)


 대중들이 삼시 세 끼에 열망했던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내 손으로 집에서 삼시 세 끼를 해 먹었다는 것이 힘들어짐의 반증은 아닐까? 늦게 퇴근한 날에 대충 먹은 편의점에서 사 먹은 음식들, 가족과 함께 밥 먹는 것이 줄어든 시간, 어쩌면 이러한 삶 속에서 ‘먹는다는 것’은 그저 시간에 맞추어 먹는 것, 일하기 위해서 충전해야 하는 연료같이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 있었을 때는 오히려 풍족했다. 소문난 맛집이 있으면 친구랑 날을 잡고 직접 찾아가서 사 먹거나, 배달음식을 시켜먹곤 했다(차오르는 국뽕, 우리는 배달의 민족). 삼시 세 끼는 기본이고, 오히려 세끼보다 더 많이 먹은 적도 있지만, 무언가 허한 느낌이 가시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때의 나는 나 스스로가 쓸모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하루하루를 전쟁같이 산 것 같다. 시간을 돈으로 환산하고, 효율성을 추구하면서 말이다. 생산적이지 않으면 도태될 것 같은 두려움, 무언가 거창한 것을 성취해서 나 스스로를 증명해야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생산적이지 않다고 해서 그게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닌데 말이다. 


나 스스로를 채찍질해 무언가를 성취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 기본적인 것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 단순한 식사 한 끼를 요리하는 시간이 나에게는 논문으로부터의 걱정, 취업시장에 대한 걱정으로부터 벗어나 나 자신을 격려하는 시간인 것 같다. 별거 아닌 오트밀이라도 밥 한 끼 내가 챙겨 먹는다는 것 나는 작은 성취감을 매일매일 느낀다.


나는 엄마가 자주 해주시던 음식 맛을 생각하며, 즐겁게 소꿉놀이 중이다.




다음 에세이 크루에게 보내는 질문

휴식기간 동안 읽고 싶은 혹은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 있다면?



• 요즘의 나에게 휴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에세이 114] 하루의 끝을 마무리하는 공간


• 일주일의 유급 휴가가 생긴다면?

[에세이 113] 집 나간 생각을 찾습니다


• 나에게 돈의 의미는?

[에세이 112] 돈, 그릇


•돈에 대한 나의 태도

[에세이 111] 천천히 알아왔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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