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저너리 Dec 28. 2020

[에세이 130] 2020년이 끝나갈 때 내가 나에게?

[미셸의 크루 에세이 15] 한 해를 무사히 보낸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

  작년이 저물 때 쯤이었나. 나는 친구들이 초대해주는 파티와 집들이와 약속들을 연속으로 잡아 돌아 다니느라 집에 제 때 들어오는 일이 없었다. 거절은 거절한다는 모드로 회사에 나가면 어제는 또 어떤 모임에 다녀왔는지 친했던 분들께 조잘조잘 이야기를 하기도 했고, 도전적인 업무는 즐거웠고, 새로운 환경이 썩 마음에 든다며 집에 오는 길은 뿌듯했다. 연말부터 계획했던 바디 프로필을 완성해서 찍었고, 어떻게 흘러간지 모르는 봄, 여름, 가을이 지나갔다.


  그리고 벌써 올해가 저물 때다. 코로나라는 예상치도 못한 거대한 물결이 우리 삶을 덮친지도 벌써 열 달은 된 것 같다. 바깥 출입을 잘 못하는 대신, 새로운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한다고, 페이스북 이 그룹 저 그룹에 열정 뿜어 내며 설문 조사를 올린지도 벌써 다섯 달 전이다. 프로젝트는 잠시 휴식기를 가진 채, 개인적으로는 더 도전해보고 싶었던 글쓰기를 매일 하고 있다. 업무는 도전적임보다 루틴해지는 정도가 더 많아지는데다 조용히 분석하고 간간히 클라이언트 컨설팅을 하다 보니 말 수는 전보다 많이 없어졌다. 오랜만에 시작해 설렘으로 가득했던 새로운 인연과의 연애는 업무 번아웃과 함께 뭉근한 슬럼프도 주었었지만, 이제는 과거형으로 마음에서 많이 정리가 되었고, 사랑과 소음 모두(?)가 많았던 집에서는 나와 경제적인 부분부터 생활적인 부분 모두 홀로 서는 독립을 선포한지 2주차에 접어들고 있다. (나도 정말 여러 의미로 화이팅이다.. 한 달 반 만에 집 구하고, 이사와 대출-2건까지 처리하다니,, 얘야,,)


  작년은 반짝임이 많아 블링블링하게 마무리 되었던 한 해였다면, 올 해는 그보다는 차분한 짙은 분홍색의 한 해였던 것 같다. 그리고 아직도 부족함이 많지만, 인간 한 명으로서의 나는 최근 한 달, 지난 3년 치 성장을 압축적으로 해냈다고 생각 되기에, 앞으로도 어떻게든 해나갈 것 같다고 응원 받으며 나도 내 스스로를 응원해주고 있다. 그리고 이런 나만 알아줄 수 있는 나를 향한 뿌듯함이 그 어느 감정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오랜만에 만끽하고 있다. 이렇게 내 개인의 목숨과 행동과 태도와 생각과 말들을 책임지며 펼쳐 나가는 삶을 선택한 내 자신이 (내면은 그 어느 때보다 더욱 단단해졌다고 믿기에) 올 해는 좀 자랑스럽다고 해주며 대견하게 여기고 싶다. (왜냐면 그 어느 때보다 나는 나 자신에게 솔직하고 객관적이며 단호하지만 친절해졌으니까.)


요즘 내 심정. 책을 잔잔히 읽으면 마음에 따뜻한 크리스마스 전구가 켜지는 기분이다.


  돌이켜 보면 코로나라서 집 밖에 못 나간다는 것을 기회로 삼아 평소 읽고 싶었던 책들을 틈틈이 읽으며 마음의 양식을 쌓았고, 다른 친구들 회사의 재택 근무가 부러워 '우리 회사도 재택 근무우우'하면서 부르짖다가 듀얼 모니터가 없으면 반반 근무가 낫구나하며 순환 근무도 꽤나 즐겼다. 그냥 외부의 자극들에 쉽게 동요하거나 괴로워하는 내 자신이 되기 싫었고, '삶의 서퍼!'가 모토였 듯이, 웬만큼은 평소처럼 밝고 감사하며 지내려고 노력했다. (물론 전문가의 도움도 받고, 친구들의 도움도 받고, 글쓰기의 도움도 받고, 글쓰기를 함께하는 지원군들의 도움도 받고 여러 의미로 감사한 시간과 인연들도 많았다.)


  지나간 연애를 통해서는 나도 몰랐던 나의 내면과, 사랑에 대한 새로운 시각, 그 때는 몰랐지만 받은 게 많았기에 감사함 등등을 배우고 느끼며 내 시야가 확장되는 경험을 했고. 세일즈 직무에 도전한다고 링크드인으로 외국계 IT 대기업에 작년도에 입사한 다른 나라 친구들에게 팁 하나만 달라고 연락을 돌리다가는 한 달에 한 번 링크드인으로 펜팔로 이어지게 된 독일 친구를 만났다. 4년 전, 인터뷰 여행으로 LA 갔다가 만난 미국 영화 감독 친구가 한국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는 그 친구의 작품에 도움이 될 만한 소재들을 찾아봐주며 창경궁 소개도 시켜주었고, 그 친구에게 오히려 맛있는 밥도 얻어 먹었으며, 을미사변을 포함한 우리나라 역사를 더 많이 배웠다. 다만 사람들이 아프니 내 마음도 같이 아프고, 어쩌다가 '건강하게 있다 또 보자'가 안부 인사가 되었는지 모르겠을 정도로, 아쉽다면 2020년은 그 어떤 해보다 빨리 지나가 버렸고 아직도 연말인 기분은 잘 나지 않아 신기해 하며, 감사했던 인연들에게 개인적인 안부를 전하는 것만으로도 작은 감사를 다시금 환기하고 있다. 



올 해는 눈도 잘 안 오니 눈배달!


  그렇다면 올 해 결산이 만족스럽냐고? 올 해가 3일 남은 이 시점에 묻자면?

  


  글쎄..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할 만한 화려한 성과? 솔직히 고백해야 겠다. 2020년에는 사실 많이 없다. 이직도 아직 ING이고, 사이드 프로젝트도 여러 고민에 겹쳐 다시 ING이고, 인생 1순위라는 사랑을 찾아 유지하는 것(어떻게 찾긴 찾았으나 유지가 어려웠으므로)도 ING고, 취미인 글쓰기로 아기 걸음마를 하며 솔직한 내면을 털어내는 것도 ING이다.


  하지만 그 많은 ING들 중에서 깨달은 아주아주 소중한 점이 있다면, 절대로 절대로 인생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파도치는 바다를 서핑하는 서퍼도 서퍼지만, 나는 내 인생의 마라톤 선수였다. 쉽게 번아웃에 흔들리지도 말고, 너무 밝게 바짝 타오르느라 고생하지도 말고, 나라는 모습이 가진 장점은 최대한 유지하면서 우아하게 마음의 여유와 유머도 챙길 줄 아는.. 쓰다 보니 이게 마라톤 선수야? 싶지만, 어쨌거나 줄기차게 뛰면서 삶의 어려움과 달달함 모두를 음미하는 우아한.. ㅋㅋㅋ 장거리 지구력 대왕을 더 목표로 삼아야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러니 올 한 해는 엄청나게 거창한 것을 하지 못 했더라도, 이 만큼이라도 애쓰며 나아온 나를 내가 알아주며, 나에게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 주고 싶다. 지구를 덮는 전염병으로 모든 게 느려졌던 이 시점에서조차 대내외적으로 호기심을 내뿜으며 뛰어다니느라 나는 다소 고생과 고민이 많았다. 사서 고생이든 뭐든 수고 많았다. 그리고 그 고생과 고민은 마음 깊숙이는 나만 알고 있다는 게 고독이야 하겠지만, 은근히 스스로에게 뿌듯함 같기도 하다. 모든 면들을 나의 부모님도, 남자 친구도, 지구상의 어느 누구도 100프로 이해해주기는 어렵겠지만, 나는 올해 인생에서 나에게 가장 든든한 지원군을 얻었다. 그러니 나를 가장 잘 알아줄 수 있는 내 자신에게 참 고맙고, 대견하고, 앞으로도 응원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실컷 다독여 주면서. (어느 유투브에서는 버터 플라이 허그라고 하던데, 양 손을 겹쳐 어깨 양 위에 올려 놓고 스스로를 껴안아 주는(?ㅋㅋㅋ변태 아니다) 행동이 버터 플라이 허그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그대로 양 팔로 스스로를 감싸며, 때로는 지긋지긋하기도 하고 우여곡절 많았던 지난 한 해마저 따스히 품어주었으면 좋겠다. 어떤 상태의 당신 자신이든, 그대가 있어 주어 고맙고, 대견하고, 그 어떤 모습이라도 언제까지라도 있는 그대로 응원할 테니, 올 한 해도 수고 많았던 자기 자신을 누구보다 잘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의도치 않게 단절되기 쉬운 이 겨울 밤에 모니터로나마 따스함을 건네며 응원의 허그를 보내니, 그대의 예측 불가한 2021년에 대한 응원을 받아주시길.



올해도 참 많이 수고하셨슴다링! :)








•  2020년,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과 그 이유는? 

[에세이 129] 2020년은 어땠나요?


•  엔지니어로의 여정

[에세이 128] S/W 엔지니어로의 여정 Part.1


• 2020년 마지막 날의 bgm을 고를 수 있다면, 어떤 선곡을 하시겠어요?  

[에세이 127] Cheap Sunglasses


•  어떤 사람들을 나의 친구라고 부르나요?

[에세이 126] 내 일상에 집요하게 발을 담그는 사람들








Epilogue.

2018년 1월부터, 3년 가까운 시간을 크루 에세이로 달려온 비저너리네요. :)


초반 2년은 정말 열심히 뜀박질을 했었고, 

최근 1년은 숨을 고르며 점 조직으로 비저너리 멤버들도 각자의 삶을 응원했었는데요,

돌이켜보면 130개나 쌓인 한 편 한 편의 글들이 참 소중하기도 해서,

저 이외의 나머지 9명이 없었더라면 '우주에 가자'는 말도 안 되어 보일 수 있는 목표를 계속 마음에 품고 

현실적이기도 하고 비현실적이기도 한 하루하루를 살아낼 수 있었을지 싶어 참 고맙습니다.


코로나 시기라 짙고 깊은 마음들을 가까이에서 전하지는 못하지만,

크루 에세이는 오늘 이 글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리더라도,

스스로의 삶을 응원하며 각자의 삶을 응원하는 평범한 비범함은 계속 될 거라고 믿습니다.


힘든 시기도 있겠고, 그에 맞게 오르락 내리락도 있겠지만,

비저너리 멤버분들은 때로 쌓인 지난 130여 개의 글들을 읽으며,

각자를 응원하는 든든한 하나하나들이 이 지구상에 있음을 기억해주길 바라고,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지금까지 저희의 작은 날갯짓들을 지켜보며 응원해주는 분들이셨다면,

랜선 너머로 감사의 마음을 듬뿍 전합니다.


팟 캐스트를 넘어, 크루 에세이로 찾아 뵙는 비저너리는 여기까지겠지만,

언제 어떤 형태로 다시 찾아올지는 모른다고 생각해 마지막 인사는 않겠습니다.


당신의 우주를 찾을 때까지 마음으로 함께 할게요. 

비저너리. :)

매거진의 이전글 [에세이129] 2020년은 어땠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