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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런마음황구 Apr 08. 2021

나의 그리운 남의 고향 답사기
#6 깨구리와 뱀

“반찬은 뭘로 먹었어요?”


외할머니와 친구 먹었다!


 솔직히 친구까지는 너무 설레발 치는 걸 수도 있는데 어쨌든 우리는 예전에 비해 엄청 친해졌다. 예전에 얼마나 안 친했냐면, 외할머니야 외손주가 나름 예뻤을지 몰라도 내게 외할머니는 단지 집안 어르신 중 한 분일 뿐이었다. 좋은 분인 거 잘 알고 뵐 때 반갑긴 하지만 문안드리고 나면 할 말 떨어지는 사이. 부모님이 열 번 채근하면 마지못해 겨우 한 번 안부 전화를 거는데 그나마 인사말 다음에는 어색한 침묵이 맴도는 사이. 


 그 애매한 사이가 2010년 한 해를 거치며 180도 뒤집어졌다. 우리 외할머니에게 내가 꼼짝없이 함락되고 말았다.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손주 해 먹일 온갖 식재료를 냉동실에서 꺼내다 녹이고, 손주가 늦잠 자며 뒹굴 동안 아침 장에서 회를 떠 와서 배랑 양파까지 척척 썰어 회 비빔밥을 하고, 따뜻하게 자라며 밤마다 보일러로 바닥을 절절 끓이고 계절 따라 다른 이불을 꺼내려 드는 분에게 어느 누가 감히 벽을 허물지 않을 수 있을까. 이전에도 참 살가운 분이라 생각은 했었지만 이 정도로 이야기책에나 나올 법한 이상적인 할머니 상(무한한 내리사랑에 늘 퍼주시는 어쩌고저쩌고)에 부합하다 못해 차고 넘치는 분이라는 건 미처 몰랐다. 처음에는 그저 황송하고 송구해서 몸 둘 바를 몰랐는데(‘아니 어르신 뭐 이런 걸 다…!’) 시간이 지날수록 정이 되더니(‘헤헤, 할머니 최고!’) 그렇게 나는 우리 어르신께 단단히 길이 들어버렸다. 


까꿍!


 내가 울진을 일 년 간 무사히 여행할 수 있었던 비결도 오로지 우리 외할머니다. 아침마다 외할머니가 챙겨주는 물에 탄 매실엑기스 한 병은 마치 게임 속 포션 아이템 같아서 길 가다 기운 딸릴 때 마시면 에너지가 용솟음쳤다. 모르는 동네 모르는 어르신들께 말을 붙일 때도 읍내 향교 옆에 외가가 있다고 하면 단숨에 친근감이 형성됐다. 젊은 친구가 와 줘서 반갑다며 어르신들이 용돈 주듯 챙겨 준 각종 사탕과 젤리를 집에 와 외할머니 앞에서 한 아름 꺼내 들면 “아이고 야가 울진 할매할배 간식 다 털어오네!”하며 타박하듯 껄껄 웃으시는 모습이, 힘겨워도 다음 날 다시 길을 나설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함께 산 나날이 길어질수록 우리는 서로의 일상에 당연한 듯 자리 잡았다. 같이 아침밥을 먹고, 나는 그날 치 모험을 떠나고, 외할머니는 그동안 밭을 돌보고, 해 질 녘 집으로 돌아와 저녁밥을 함께 맛나게 해 먹고 같이 곯아떨어지는 하루하루였다. 때론 당연한 일상 속에서 당연하지 않은 순간을 만드는 외할머니에게 기습을 당하기도 했다. 평소보다 조금 귀가가 늦어진 날에 얼른 현관 발코니를 쳐다보면 이제나 저제나 서서 기다리는 외할머니가 있었다. 다 큰 처자가 어련히 알아서 집에 올 텐데 다리 아프게 뭣 하러 나와 있냐고 장난스럽게 넘기지만 가슴은 매번 찡 울렸다. 평소 장신구라고는 좀체 하지 않는 분이 내가 성류굴 기념품 가게에서 사다 준 싸구려 염주 팔찌는 꼭꼭 끼고 다니는 모습을 볼 적엔 괜히 외할머니를 자꾸 끌어안고 싶어졌다. 



 함께 한 시간은 서로에게, 특히 내가 외할머니에게 물들어가는 시간이기도 했다. 아침에는 텃밭에서 상추를 한 사발 뜯어다 샐러드를 만드는데 드레싱은 매실엑기스에 견과를 갈아넣어 새콤고소하게 만든다. 가끔 귀찮을 때 점심 식사는 짜파게티로 때운다. 볕 좋은 오후에는 마당 수돗가에 앉아서 색색의 화초와 꽃나무들을 구경하며 세월아 네월아 한다. ‘너무 많네’ 대신 ‘개락 났네’라는 표현을 쓰고, ‘올해’는 ‘올개’, ‘~했니?’나 ‘~했어?’ 대신 ‘~했는가?’, ‘응’ 대신 ‘어이’ 한다. 같은 경상도라도 대구 사투리와 울진 사투리는 억양도 조금 달라서, 외할머니와 대화할 때는 나도 모르게 강세를 좀 더 앞에다가 두면서 어설프게 따라 한다. “할머니, 오늘은 뭐↗ 해 먹을까요?” 


 여행 안 가고 집에서 뭉개면서 게으름 피우는 날은 둘이서 방에 나란히 누워 소소하게 수다를 떠는 날이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두서없이 오가는 와중에 이따금 당신의 소녀 시절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 어째서인지 자주 꺼내려 들지는 않는 화제였지만. 나지막한 목소리로 친언니와 동무들과 재미있게 놀았던 추억을 조곤조곤 풀어놓는 걸 듣고 있자면 어쩐지 슬퍼졌다. 당연히 외할머니도 어릴 적이 있고, 어린아이처럼 놀던 적이 있고, 같이 놀던 친구들이 있는 건데. 그 시절은 다 어디로 가 버렸을까. 그때 그 소녀는 지금 행복할까. 


 여행이 끝나고 외가에서 짐을 빼면서 서로 몸은 멀어진 지 벌써 10년. 하지만 녹록지 않은 한 해 분량의 추억이 묵직하게 자리한 우리 사이는 여전하다. 적어도 내게는 여전해서, 나는 지금도 외할머니에게 아무 때나 전화해서 이러쿵저러쿵 떠든다. 할머니 뭐↗해요? 울진은 날씨 괜↗찮아요? 올개는 밭에 뭐↗ 심어요? 병원은 갔↗다 왔어요? 어제는 왜 전↗화 안↗ 받았어요? 할머니 보고 싶다! 할머니 된장찌지개 먹고 싶다! 울진 가고 싶다! 통화할 적마다 빼놓지 않고 꼭꼭 나누는 우리만의 암호 같은 농담도 있다. “할머니 밥 먹었어요?” “먹었지.” “반찬은 뭘로 먹었어요?” “깨구리와 뱀!” 그래놓곤 우리끼리 한참 깔깔깔 웃는 거다.


 할머니, 오늘은 뭐해요? 할머니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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