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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런마음황구 Apr 13. 2021

나의 그리운 남의 고향 답사기
#7 추억은 조각조각

우리 함께 이어 붙인 시간의 조각들

 


‘삼베길쌈’, 그러니까 삼 혹은 대마라고 하는(마약사범 검거될 때 거론되는 그 대마 맞다) 풀에서 ‘삼베’라는 직물을 만드는 일을 난생처음 목격했다. 우리 외할머니가 이런 인간문화재(?)나 할 법한 일을 하는 사람인 줄도 몰랐다. 외할머니는 당신 또래라면 다들 어릴 적부터 진력나게 해 온 일이라고 일축하지만. 


 

 삼베길쌈 과정은 지난하고도 지난하다. 몇 번씩 설명도 듣고 길쌈하시는 모습을 드문드문 봐 놓고서도 또 가물가물할 정도로. 그래서 이참에 아예 자료를 찾아봤는데 새삼 기함했다. 


 ‘삼을 베어다가 쪄서 햇빛에 바짝 말린다. 물에 담가서 불린다. 여러 번 반복한다. 겉껍질을 한 겹씩 벗긴다. 군더더기를 모두 훑어 내고 속껍질만 남긴다. 속껍질을 다시 널어 말린다. 다시 물에 불린 후 손톱을 써서 실처럼 잘게 찢는다. 찢은 줄기 한 올 한 올을 서로 겹쳐다가 일일이 손으로 비벼서 긴 실로 만든다. 이 실을 다시 물레를 이용해 가락으로 만든다. 가락을 다시 풀어 긴 실타래를 만든다. 여기에 치자물로 노랗게 물을 들인 후 도투마리에 감아 베틀에서 삼베를 짠다.’ …듣기만 해도 질리는 노동 강도다. 


 외할머니에게 이 힘든 걸 왜 하냐고, 하지 말라고 하니 이번 해까지만 한단다. 말만 그래 놓고 또 하시겠지만. 수제 삼베는 값이 많이 나간다. 시골 어르신들께는 고생한 만큼은 아니더라도 그래도 보람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 외할머니의 경우 당신께서 뽑은 실로 짠 삼베로 손주들 부부네 이불을 한 채씩, 그리고 당신과 당신 자식들의 수의를 벌써 다 지어 두셨다. 아, 할머니... 그 마음을 생각하니 가슴이 새삼 먹먹해지는데 거기다 당신께서 한 마디 보태시며 산통이 깨진다. “니도 이불 한 채 받고 싶거든 얼른 시집가라”. 아 할머니 진짜!


  

삼을 볕에 말린다
껍질을 벗긴다
물에 씻는다
물레를 돌린다
실 완성

 

 어느 여름날에는 외할머니가 낡은 재봉틀 앞에서 삼베 조각보 만드는 걸 지켜봤다. 옷감 가게에서 얻어 온 자투리 삼베를 모아 이리 한 조각 저리 한 조각 붙인다. “할머니 재미있어요?” 물으니 “재미가 있지, 재미가 있어. 한 조각 붙이고 이래 들따 보면 또 얼마나 예쁜지” 한다. 내가 자꾸 말을 걸어 집중력이 흐트러졌나, 아이쿠, 다섯 조각씩 붙여야 하는 걸 한쪽에 여섯 조각을 붙여버린 통에 나머지 면에도 한 조각씩 덧붙이느라 몇 시간을 꼬박 재봉틀 앞에 숙이고 앉아 바늘귀에 실을 꿰신다. 나는 몇 시간 째 곁에서 소처럼 누워 뒹굴면서 외할머니에게 자꾸 시답잖은 질문을 하고 농담을 던지고 낄낄거린다. 우리 추억을 한 조각, 한 조각 이어 붙인다. 


 원래 우리 외할머니는 쑥스러워서 내 앞에서 좀처럼 노래를 안 하시는데. 이 날은 흥이 올랐는지 내 두 눈을 똑바로 마주보면서 “내가 노래도 할 줄 알거드은,” 하더니 흥얼흥얼 한 곡조 뽑아 주셨다.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할머니, 할머니, 꽃이 지면 봄은 가도 우리 같이 만든 조각은 오래오래 남을 거에요. 우리 또 만들어요. 오래오래, 계속 만들어요. 조각조각 조각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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