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보다 절 아랫마을이 좋아서
울진 금강송면 불영계곡에는 ‘불영사’라는 절이 있다. ‘불영(佛影)’ 그러니까 ‘부처님의 그림자’라는 뜻으로, 인근 산에 있는 부처 형상의 바위 그림자가 절의 연못 위로 비춘다며 붙은 이름이다. 하지만 내 눈은 영 삐었는지 절에 드나든 내내 한 번도 그 ‘불영’이라는 걸 보지 못했다. 아마 보고도 못 알아챈 거겠지만.
뭐, 못 본 게 딱히 아쉽지 않다. 이 절에 별 애착이 없어서다. 분명 멋들어진 곳이긴 하나 언제나 바쁜 스님들께 말 한마디 붙이기도 쉽지 않아 그리 정감이 가는 곳은 아니었다. 이 한량 같은 객을 반겨주는 건 그나마 자비로운 절 고양이들 정도? 워낙 많은 이들이 오가는 관광 명소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 스스로 납득시켜보지만 조금 섭섭한 여운은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계속 불영사를 찾은 건 절 바로 아랫마을 ‘하원리’ 때문이다. 불영계곡을 따라 흐르는 광천이 크게 곡선을 그리는 지점 그러니까 계곡 경사가 다소 완만해지는 지대 위로 오밀조밀 자리 잡은 이 마을은 산촌답지 않게 너르고 평평해서 보기만 해도 어쩐지 마음이 넉넉해진다. 주변보다 산도 딱 반 발짝 정도 더 뒤로 물러서 있어 인근 산촌마을들에 비해 볕도 훨씬 잘 든다. 덕분에 풍광이 훨씬 따뜻하고, 길에서 마주치는 어르신들의 미소 마저 어쩐지 더 따뜻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관광지 기준으로 따지자면 별거 없다고도 할 수 있는 이 동네에 자꾸 발길이 간다. 나중에 혹시 내가 울진에 살 일이 생긴다면 여기로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이 붙는다.
‘불영사 갔다가 절 아랫마을 하원리 간다’는 게 어느 시점부터는 주객이 전도되어 ‘하원리 가는 김에 불영사도 한두 번 들르는 식’이 됐다. 가능하면 불영사에 먼저 간다. 대체로 즐겁게 구경하고 나오지마는 아주 가끔 깍쟁이 같은 인상을 받을 때는 덩달아 다소 깍쟁이가 된 기분으로 절 문을 나선다. 하지만 그 뾰족한 마음마저도 여기 이 포근한 마을을 거닐다 보면 절로 다시 맨들맨들해진다. 별 볼 일 없는 하원리가 별 볼 일 많은 불영사보다 훨씬 특별하다.
불영. 불경에 이르기를 온 세상이 다 부처라고 했는데 어디 부처님 그림자라는 게 따로 있나. 하원리 논물에 비친 아무개 산 그림자가 훨씬 더 부처님 그림자답다고, 혼자 중얼거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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