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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런마음황구 Apr 21. 2021

나의 그리운 남의 고향 답사기
#9 울진 청년 전진수

평범한 인생 곳곳에 스민 격동의 한국 현대사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다. 


 훤칠한 키에 뽀글뽀글 자연산 곱슬머리, 풀 먹인 하얀 모시옷을 척 걸치고 흥얼흥얼 시조를 읊거나 담배를 태우던 멋쟁이 어르신. 우리 외할아버지다. 과묵한 성격으로 표현을 많이 하지 않는데도 어째서인지 손주들을 아끼는 그 마음이 늘 느껴지는 분이었다. 성함은 전진수인데, 내가 어릴 적에 식사하시라고 여쭙는다는 게 “전진수 할아버지 진수성찬 드세요”라고 해서 온 친척 어른들이 뒤집어지게 웃었던 기억이 난다. 



 외할아버지에겐 약국을 하면서 뒤로는 몰래 독립운동을 돕던 누님 부부와 형님이 있었다. 그 분들의 비밀스러운 심부름을 하러 만주부터 부산까지 전국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견문을 넓힌 외할아버지는 ‘앞으로 먹고살려면 기술이 필요하다’는 걸 일찌감치 깨닫고 부산에서 철공소 일을 배웠다. 몇 년 뒤 고향으로 돌아와 매화에 차린 철공소에는 아니나 다를까 주문이 쇄도했고 곧 살림도 번듯하게 폈다. 

 

 하지만 6.25가 터지면서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철공소는 폭격에 완전히 부서졌고, 이념 전쟁에 독립운동했던 사람들이 빨갱이로 몰리면서 외할아버지네 집안도 풍비박산 났다. 가까운 가족과 친지들이 영문도 모르고 끌려 가 구덩이에서 죽임 당하거나 북으로 쫓겨 가다 붙들려 목숨을 잃었다. 이미 첫째 딸인 우리 어머니가 있는 데다 아내가 또 임신하고 있던 상황에서 외할아버지는 잡혀가지 않기 위해 형님네 뒷산 동굴에 숨어 꼬박 일 년을 살았다. 외할아버지의 큰 조카가 밤마다 몰래 먹을거리를 날랐는데 겨울에는 혹시 눈길에 발자국이 남아 추적당할까 봐 무거운 포대 자루를 끌어 발자취를 지워가며 오갔다고 한다. 아내가 둘째를 출산한 것도, 어느 날 집안 어르신 한 분이 산길을 지나는 척 동굴 앞으로 와 “아들이다” 한마디 해주고 돌아가 알았다고. 


 해가 바뀌고 상황이 웬만큼 잠잠해지자 동굴을 나온 외할아버지는 남은 살림을 그러모아 울진 읍내에 다시 철공소를 차렸다. 하지만 밤사이 동네 어린아이의 불장난으로 철공소가 전소하고, 화마에 아이가 숨진 데 대한 책임으로 한 달간 옥살이마저 하게 된다. 하루아침에 사업이 또 한 번 엎어져 막막하기 그지없었지만 이웃들이 십시일반 모아 준 돈에 힘입어 외할아버지는 다시금 세 번째 철공소를 차린다. 운영은 무난히 되었으나 빚을 갚아야 하는 처지에다 다섯 자식들 뒷바라지를 하느라 가세는 이전 같지 않았고, 한 푼이라도 가계에 보태야 한다는 생각에 외할머니도 맞벌이로 돼지를 치고 뻥튀기 장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외할아버지의 인생이 요동치는 대로 자식들의 인생 방향도 조금씩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잘 산다는 집에서도 딸은 중학교나 겨우 보내고 말던 그 시절에 매번 전교 일 등과 전교회장을 도맡던 첫째 딸을 고등학교까지 졸업시켰지만, 형편이 형편인 지라 원하던 국문학과에는 진학시키지 못하고 뒤늦게 교육대학에 보내 선생님이 되도록 했다. 한편 빨갱이 집안이라는 낙인 때문에 국가고시를 통과하고도 마음 졸이던 둘째는 천만다행으로 연좌제가 풀리는 시기와 잘 맞물려 무사히 공직 발령을 받기도 했다. 


 시대가 서서히 안정을 찾고, 부부가 모두 부지런히 일해 빚을 다 갚고, 자식들도 하나둘 독립해 자기 가정을 꾸리면서부터는 삶에도 조금 여유가 생겼다. 철공소를 접고 은퇴해 손주들을 챙겼으며 시조에 재미를 붙여 시조 대회에도 나갔다. 일본 경찰에 고초를 겪다 돌아가신 누님 부부와 형님의 독립운동 행적을 인정 받기 위해 백방 애쓴 끝에 겨우 형님을 독립운동가로 추서하기도 했다. 그러다 1997년 7월, 노환으로 소천하셨다. 


 격동의 한국 현대사가 한 평범한 청년의 인생 여정 곳곳에 깊숙이 스며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다.  




* 전진수 씨의 진 자는 보배 진(珍) 자로, 울진의 진 자와 같다. 


* 새롭게 깨달은 사실인데, 언니들과 비교하면 엄마도 아빠도 별로 닮지 않았다고 생각해 온 내 얼굴은 외할아버지를 똑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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