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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런마음황구 Apr 27. 2021

나의 그리운 남의 고향 답사기
#10 뿌리 깊은 당신

광합성 하듯 홀로 있어도 늘 충만한 당신


외할머니는 나들이를 안 다닌다. 이따금 장이나 보러 갈 뿐 좀체 바깥 구경 다닐 줄 모른다. 마을 회관에도 안 나간다. 외부와의 교류는 시장의 친분 있는 가게에 잠깐 들르거나 간간히 집으로 찾아오는 손님을 맞는 정도다. 멀미가 심한 체질이라 택시 타고 바람 쐬러 나가기도 영 쉽지 않다. 그래서 내가 자전거로 울진 온 동네를 활개치며 쏘다닐 동안 외할머니는 내내 집에만 머물렀다. 



“할머니는 왜 놀러 안 다녀요?” 여쭈면 “나는 원래 안 다녀”라는 도돌이표 대답만 듣길 몇 번. 어머니에게 슬쩍 물어보니 아마 나이 차 많이 나는 남편을 만난 탓 같단다. 제 나이보다는 남편 나이에 맞추어 ‘점잖게’ 살아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행동거지 하나하나, 집밖을 나서고 사람 만나는 것 하나하나 조심하던 게 어느덧 몸에 익어버린 것 아니겠냐고. 


그러고 보면 외할머니는 옷도 온통 ‘점잖은’ 색 일색이다. 조금만 화사한 걸 권하면 “다 늙어 빠진 게 알록달록한 거 입으면 뭐하노!” 하면서 물린다. 결혼식 같은 집안 잔칫날 신경 써서 차려 입는 위아래 짙은 회색 한복은, 둘째언니 표현을 빌자면 “꼭 독립투사 같다”. 요새는 웬만해서는 집안 행사에도 참석 안 한다. 허리 다 꼬부라진 노인네가 좋은 날 좋은 자리에 얼굴 내밀면 남들이 흉 본단다. 그런 말씀이 어딨냐고 항의해봐도 눈 하나 꿈쩍 안 하신다. 



평생 바깥에서 사람들과 떠들썩하게 어울리는 재미를 못 누리고 살아 온 당신의 노년의 낙은 식물 키우기다. 소일거리로 마당에 조그맣게 밭을 일구는데 콩, 팥, 파, 감자, 무, 배추, 고추, 상추, 깨, 호박… 온갖 걸 심어다 쏠쏠하게 수확해가지고 다섯 자식들에게 똑같이 나눠 보낸다. 밭 주변으로는 둘레에 돌멩이까지 가지런히 둘러서 정원을 아주 살뜰히 가꾸어 놓았다. 계절마다 장미가, 수국이, 백합이, 백일홍이, 달리아가, 영산홍이, 국화가 핀다. 집안의 화분들은 또 어떤가. 다들 천장을 뚫고 나갈 기세로 자라는 통에 거실은 과장 조금 보태 작은 정글이다. 그래서 외할머니는 아주 가끔 외지의 자식들 집에 하루라도 묵게 되면 이튿날 아침부터 안절부절 못한다. 두고 온 밭과 정원과 화분이 자꾸만 눈에 밟혀 서둘러 울진 향교 옆 언덕 위 제일 높은 집, ‘내 집’으로 돌아온다.


당신이 요즘 세상에 태어났더라면. 나만큼이나 여기저기로 훌쩍 떠나 아는 이 모르는 이 다 만나며 살 수 있었더라면. 여전히 식물 돌보기를 기꺼워했을까 혹은 식물 키우는 취미 따위 손사래 치며 멀리했을까. 알 수 없다. 이제 와 그런 가정은 헛될 뿐, 중요한 것은 여러 제약에도 불구하고 삶 속 작은 기쁨들을 발굴해내며 나만의 영역을 넓혀 나간 묵묵한 발자취일 테다. 그 발자취는 어쩌면 식물의 생과도 닮아있다. 바람에 속절없이 날려간 씨앗이 우연히 뿌리 내린 곳에서 최선을 다해 줄기를 뻗고 잎을 틔우며 꽃을 피우듯.



“니 우리 정원에 꽃이 얼마나 이쁘게 핐는지 아나. 와서 보고 가라.” 자랑하는 외할머니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낭랑하다. 모두들 붙들린 발목에 마음이 뒤엉켜버린 전염병 시국에도 외할머니는 당신의 테두리 안에서 하루하루 밭과 정원과 화분을 돌보며 평정을 잃지 않는다. 광합성 하듯 홀로 있어도 늘 충만한 당신. 나는 당신의 그 단단한 기운을 그리며 이 시국 속 하루하루를 버틴다. 얼른 울진으로, 외갓집으로 달려 가야지. 마당 구경, 정원 구경 시켜달라 졸라야지. 집으로 찾아오는 사이비 전도사들에게 마저도 “보소, 나는 못 배워 먹어 가지고 당신들 하는 소리는 내 잘 모르니더. 그래도 커피나 한 잔 먹고 가소.” 하는 당신을 보며 아이고 우리 어르신은 정말 오는 손님 거르는 법이 없다며 허허 웃는 나날로 어서 돌아가길,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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