펼치는 말: 그리운 남의 고향
펼치는 말: 그리운 남의 고향
‘미지의 세계’. 공감한다. 나 역시 연고지가 아니었더라면 아마 울진이 어디쯤 있는지조차 헷갈렸겠지. 퍼뜩 떠오르는 관광지나 특산물, 사건∙사고도 딱히 없어 외지인으로선 알게 될 계기 자체가 드문 곳. 그래서 여기를 일 년간 여행했다는 이야기를 꺼낼 적엔 항상 노파심에 자문자답한다. “경북 울진이라고 혹시… 모르시겠죠? 동해안에 있는 농촌이자 어촌이자 산촌인데 대충 강릉이랑 포항 사이이고요, 대게도 있고 원자력 발전소도 있어요. 껄껄.”
울진은 내 아버지, 어머니의 고향이다. 매해 설과 추석에는 읍내에 있는 외가를 경유해 화성리의 친가에 갔다. 귀성길 차량 정체는 괴로웠고 재래식 화장실은 몸서리쳐졌으며 명절 상차림을 돕는 건 귀찮았다. 그래도 밤하늘 곧 쏟아질 듯한 별구경이나 맑고 차가운 공기, 아궁이에 불을 때며 나무 타는 냄새를 맡는 건 좋았다. 내게 딱 그 정도의 추억과 의미였던 울진. 그러다 2009년 대학 코스모스 졸업을 하고 늦깎이 취준생이 되면서 울진과 나 사이에 전혀 새로운 국면이 도래했다.
반복되는 서류전형 탈락으로 좌절하면서도 그린란드 여행기를 엮은 첫 책을 막 출판하며 고무돼 있던 묘한 시기였다. 그래서 어차피 잘 안 될 취업 대신 또 다른 여행책을 쓰는 게 낫겠다는 순진한 발상을 하고 말았다. 새로운 여행지 후보는 대구와 울진이었는데, 저 이역만리 북극을 다녀왔으니 이제는 나와 가장 가까운 지역 즉 나의 고향 대구 혹은 내 부모님의 고향인 울진에 대해 적어야 수미쌍관이 맞을 것 같아서였다. 그중에서도 내게도 친가·외가를 제외하면 미지의 세계나 다름없었던 울진에 마음이 더 기울었다.
2010년, 그렇게 막무가내로 울진 여행을 시작했다. 울진 읍내 외가에 진을 치고 일 년에 걸쳐 이 고장의 모든 읍과 면을 훑었다. 동네 사람들을 만나고 마을 행사에 참여하고 사계절을 목격했다. 서툴지만 열심히 사진을 찍고 기록도 남겼다. 그러나 결국 책을 쓰지 못했다. 뒤늦게 이리 써 내려가고는 있지만 현장감이 생생할 때만 쓸 수 있는 글은 분명 따로 있었을 거란 생각에 여태 약간의 후회와 자책을 한다.
그럼에도, 혹여 또다시 책 쓰기에 실패한다 해도, 1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난 재차 울진으로 떠날 것이다.
울진 구석구석을 쫓아다닌 그 일 년 동안 ‘향수’라는, 전에 몰랐던 감정을 배웠다. 정작 내 진짜 고향인 대구에 대해서조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이 그립고 애틋한 마음. 구체적인 계기가 무어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냥 어느 순간부터 서서히, 물드는 낌새도 없이 여기 슥 물들었나 보다. 내 것인 양 되었나 보다. 삶이 지칠 때 나는 이제 울진을 떠올린다. 울진 바다를, 계곡을, 5일장을, 논밭을, 골목길을, 오가며 마주친 이들을, 그리고 외갓집과 외할머니의 얼굴을 떠올린다. 돌아가고 싶은 곳, 보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내게 10년 전 그 한 해의 의미는 차고 넘친다.
미지의 세계에서 그리운 남의 고향으로. 강산이 한번 변할 세월이 지나고도 여전히 내 안에 또렷한 울진의 흔적을 그러모은 이 책을 통해 여러분들에게도 울진이 그렇게, 낯은 설지만 어쩐지 푸근한 곳으로 다가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잠시 숨통이 트이는 이 기분이 조금이나마 전해진다면, 더 바랄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