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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 DISPLAY Aug 31. 2018

길지도 짧지도 않은 한 달

퇴사 일기 D+30

퇴사 후 한 달이 지났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매끄럽게 진행되진 않았던 것 같다.

집 청소는 절반 정도까지만 성공했고

읽던 책은 끝까지 보지 못했고

아직 마음에 드는 수영장을 못 찾았고

인물 사진 작업에 쫓겨 지난 개인 작업은 손도 못 댔다.


그중 성공적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은

에어컨을 수리한 것과

20편의 영화를 본 것과

부산과 서울에서 12팀과 촬영한 것

평균 수면 시간을 계속 지켰던 것 정도.


기대도 안 했는데 좋았던 것들과 예상보다 별로인 것들도 있었는데

친구의 친구들을 만나 어색하지 않은 하루들을 보냈고

새로운 사진 작업에 관한 인터뷰를 서둘러서 진행했고

시간이 맞아서 봤던 영화가 완전히 내 취향이었고

일주일 내내 집에 틀어박혀 사진 작업을 하고 밤마다 근처 친구 집에서 맥주를 마신 것이 좋았다.


싫었던 것은 굳이 다시 나열하고 싶진 않다.


퇴사 후 정확히 한 달이 지났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이었다.





2018년 8월 17일 금요일, D+17

양산 배내골에서 가족 여행 2일 차. 어제랑 다르게 해가 떴다. 그래서인지 펜션 아래에 있는 계곡에서 아침부터 사람들 소리가 들린다. 아침으로 두부김치찌개를 다 같이 먹고 10시쯤 나온다. 계곡에 한번 더 발을 담그고 싶은데 조금 아쉽다. 이대로 집으로 가긴 너무 일러서 우리는 통도사에 가기로 방금 결정을 했다. 산길을 타다 멋진 공간이 나와 잠시 차에서 내려 사진을 찍었다. 아빠는 차문을 열고 바람을 쐬는 게 더 좋다고 했다. 



통도사에 도착할 때쯤에 가로수들이 이뻤다. 입장료를 내고 더 들어가야 주차장이 있을 만큼 통도사의 규모는 컸다. 길가에 소나무들이 하나 같이 볼품 있는 자태를 갖고 있었다. 당장 차에서 내리고 싶었다. 다행히 구름이 많아져서 걷기 좋은 날씨가 되었다. 평일이지만 여름휴가시즌이라 그런지 절에는 관람객들이 많았다. 나는 자연스럽게 색이 바랜 건물들에 집중했고, 엄마와 아빠는 보이는 건물마다 들어가 삼배를 올렸다. 



점심때가 되어서 한식당에 들어가 산채비빔밥과 도토리묵을 먹었다. 밖에서 커피도 마셨다. 매미소리가 '맴-맴-' 거리니까 아빠가 이건 시골에서 듣던 토종 매미라며 반가워하는 듯했다. 사실 하루 종일 아빠 컨디션이 별로인 듯했는데 매미 소리가 들리면서부터 조금씩 풀어지는 듯해서 좋았다. 차를 타고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아빠가 예전에 공사했던 현장이 보이자 반가워했다. 엄마, 아빠가 차에서 과일을 먹고 있는 동안 나는 산을 반 정도 올라가서 소나무 사진을 찍었다. 



부산으로 내려가는 길은 길진 않았지만 다들 졸려 보였다. 가는 길에 남산동에 있는 고모집에 잠깐 들르기로 했다. 고모와 고모부가 우리 가족을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 주연이와 소연이가 내려왔다. 소연이는 요즘 네일 학원을 다닌다고 엄마에게 귀여운 네일을 추천해주었다. 네일 아트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었고 엄마는 예상보다 훨씬 만족했다. 50대 우리 엄마도 여전히 여자다. 소확행이 이런 거구나. 나도 기뻤다. 



집으로 돌아와서 무거운 짐을 옮기니까 다시 땀이 났다. 엄마는 손톱이 망가질까 봐 흰색 장갑을 끼고 짐을 정리했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앙리(친구)가 술 약속을 해왔다. 조금 피곤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평범한 금요일 밤일뿐이다. 10시에 하단역에서 앙리와 수진이, 정민이를 만나 이자카야로 들어갔다. 우리는 밤에서 새벽까지, 새벽에서 아침까지 신나게 마셨다. 수진이가 가장 먼저 들어갔고 정민이는 몇 시간 뒤에 출근을 해야 한대서 그다음으로 헤어졌다. 앙리와 나는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고 집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운동하는 할머니들과 소독차가 보였다. 오랜만에 아침. 피곤하고 상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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