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테이블에서 음식을 먹는 아이들. 테이블은 삼각 김밥 봉지, 라면과 라면 비닐, 음료수 따위로 복잡하다. 아이들은 더없이 맑은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다. 나는 방금 산 담배 비닐을 뜯으러 쓰레기통 쪽으로 갔다가 그들을 본다. 저들은 내가 하곤 하는 행위들과 아직 별 상관이 없어 보인다.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 초반이 되면, 아이들은 술 담배와 섹스에 눈을 뜨게 될 것이다. 누가 그런 명령을 내렸는지는 아이들은 모른다. 다만 공허한 자신을 가장 눈에 잘 보이는 무언가로 채우고 치장하려 할 것이다. 그 나이 때에는 그 행동들이 들뜨고 재미있어 보이기까지 한다. 편의점에서 저렇게 순수한 눈빛을 하고 라면을 먹는 일 따윈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누가 가르쳐 주었는지는 몰라도, 다 자란 아이들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치킨 집에서 맥주에 치킨을 먹을 것이다. 아직 맑지만 인생에 어느 정도 심드렁해진 눈빛으로. 그리고 술에 취하면, 밤거리를 쏘다니며 많은 말을 뱉을 것이다. 어쩌면 소변을 누거나 고성방가를 할지도 모른다.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리고 길가에 서서 담배를 피울 것이다. 담배를 피운 후에는 모텔로 들어갈 것이다. 모텔로 들어가기 전에 콘돔을 살 것이다. 아이들은, 더 이상 아이들이 아니다. 누군가는 이게 뭐? 이게 뭐 어때서? 이게 뭐가 잘못된 거야?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 아무튼 아이들은 서로의 몸을 만지며 성관계를 갖는다. 부스스해진 몰골로 다음날 일어난다. 뜬 해를 보고 다시 공허함을 느끼며. 아이들은 그 행동을 결혼할 때까지 반복한다. 삼십 대가 되어도 결혼을 하지 않는 경우라면, 이제 일은 더 쉽다. 누가 먼저 하자고 말하지 않아도, 그들은 값싼 술을 마시고 모텔로 향한다. 이제는 누가 먼저 옷을 벗기는지도 모른다. 타성에 젖은 행동은 몸에 굳어졌고, 이제는 관계가 끝난 후에 느끼는 공허함도 친구 같다. 이쯤 되면, 더 이상 더 이상은, 아이 때 느끼던 순수한 감정과 수수함을 느낄 수 없다. 침대에 쪼그려 담배를 태운다.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라 모텔 방안을 허옇게 만든다. 뒤를 돌아 누워 있는 상대의 모습이 보인다. 허허롭고 애처로워 보인다. 이제 인간은 그냥 저러려니 한다. 이렇게 하는 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 혹은 그녀는 밤에 잠들지 못하고 밤새 스마트폰을 본다. 어디로 벗어나야 할지 몰라 그들은 화면 속에서 구원을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