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는 낱알 씨 하나 없는 상황 속에서 황량한 밭에서 새싹을 움 틔워내려고 애쓰는 사람 같다. 예술가는 고독하고 오직 고독한 환경에서만 예술가는 나타난다. 예술가는 채집의 기쁨을 남몰래 누리는 사람이다. 예술가는 날개가 없이 날다가도 날개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 계속 달을 향해 비행하는 사람이다. 예술가의 집은 구름이고 별들은, - 비록 이 세상에서 관찰할 수 없을지라도 – 그의 유일한 친구이다. 사람들은 예술가의 존재를 알아주지 않지만,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예술가는 보이는 존재이지만, 쉽게 보이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루의 절반 이상을 예술에 관한 생각에 쏟더라도 야속한 시간은 그를 도와주지 않는다. 집안 무슨 일, 무슨 일로 사람들은 그를 성가시게 한다. 온전히 예술 활동에만 전념한다고 예술가가 될 수 있느냐 하면 그것은 또 아니다. 그가 외부의 것을 그리거나 쓰기로 작정한다면야. 예술가는 외부의 상황에 ‘지배’까지는 아닐지라도 영향받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예술가는 생계의 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생계의 짐을 지면서도 하루의 절반에 가까운 시간을 예술 활동에 쏟아 부울 수 있을까? 문자적인 시간이라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시간의 줄 위에 매달린 남자를 가만히 두지 않고 제멋대로 갖고 논다. 이른바 변수라는 상황이다. 시간 계획을 아무리 촘촘하게 세워놓는다 하더라도, 조급과 강박, 또 외부세계의 영향이라는 변수가 그를 힘겹게 한다. 시간이 널널하면 이번에는 다른 변수가 그에게 밀어닥친다. 게으름과 역시 시간에 있어서 망각이라는 변수이다. 예술가의 정신을 모호하게 하고 중요한 무언가를 망각하게 하는 변수가 그를 뒤흔든다. 결국 예술가는, 늘 정신을 바짝 차리고 시간의 줄타기를 유연하게 할 수밖에 없다.
이래나 저래나 예술은 어렵다. 인생은 길지만, 예술은 정말 짧다. 예술이 짧은 데에 신경을 집중하고 있으면, 인생도 짧은 것처럼 느껴진다. 또 어떻게 보면 인생이란 짧아 보이기도 한다. 외부의 모든 영향을 다뤄 적절한 위치를 선점하고 하루에 예술을 이룰 수 있더라도, 예술가는 평안하지 못하다. 그들은 안식을 예술에서 찾지만, 누군가 찾아주지 않는 밤은 외롭고 적적하다. 고독 속에서 그들은 음악을 찾고 책을 찾는다. 적당한 술은 안주가 되어준다. -나는 술을 마시지 않지만. – 좌우간 그들은 그런 방법으로 안식을 찾는다. 깨어나면, 또 하루가 밝아있다. 달은 없다. 별들도 없다. 구름인 줄 알았던 침대는 딱딱하기 그지없다. 예술가는 하루의 사투를 시작하기 위해 무겁고 어지러운 몸을 일으켜야 한다.
그 누가 이들의 예술을 알아준단 말인가. 이들이 써내는 글을, 그려내는 그림을 누가 향유한단 말인가. 사람들은 저마다 할 것이 많다. 예술이란 그들에게 가끔씩 향유하는 ‘문화’에 불과하다. 지하철 속의 사람들은 끝없이 일시적인 소비를 추구한다. 미술관이나 공연에 가는 사람들은 주말에야 시간을 낼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노곤한 몸을 이끌고 직장에서 나오면 그들은 술집으로 향하지 책 곰팡이 내가 진동하는 서재로 향하지 않는다. 이 현상에 초연할 수 있다면, 사람들의 반응에 무심하다면, 이른바 해야 할 것인 매일의 예술 활동에만 집중한다면, 그 사람이야 말로 진정한 예술가일까? 아니면, 그렇지 못하더라도 예술을 위해 시간과 공을 들이는 사람들 모두가 예술가일까? 전자는 후자의 시간을 겪어 왔고, 후자는 전자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