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제롬과 빈센트가 있다. 제롬은 우수한 유전자를 타고 난 사람이고, 빈센트는 그렇지 못한 사람이다. 하지만 빈센트는 우수한 유전자를 가진 자만이 할 수 있는 우주 비행사를 꿈꾸며 자신을 우수한 유전자 사람인 것처럼 위장해 '가타카'에 들어간다.
과연 그는 불평등한 사회의 상황을 딛고 우주로 향할 수 있을까?
우리가 자연을 함부로 바꾸려 하지만 자연도 우릴 바꾸려 할 것이다. - 윌리암 게리린
*무한한 우주를 바라보며
로마 철학자 Lucretius는 “유일하게 불변하는 것은 변화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이 시사하는 바는, 영화처럼 유전자로 결정되는 결정론적인 세계, 그곳에서 우리가 간과해선 안 되는 건 환경이자 가능성이라는 것이 아닐까.
어찌 한 사람에게 유전자만으로 속성을 부여할 수 있겠는가. 우리에겐 우리가 알 수 없는 영역들이 너무도 많다.
영화를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특히 한국의 교육 상황과 엮어 생각하니, 단편적으로 ‘우수한 성적’만 강조하는 우리의 사회가 ‘가타카’의 세상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황 때문에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의 학생들은 사회에 의해 포기를 강요당하고 미래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 ‘공부’라는 선택지 하나만을 눈앞에 둔다.
하지만 우성인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다들 우주 비행사를 꿈꾸기만 해야 하는가, 열성인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우주 비행사가 될 만한 인재가 아니라고 단정 지을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참 웃긴 일인 것 같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공부를 시키는 게 잘못되었다가 아니라 공부만 선택지로 두는 게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빈센트'는 열성 유전자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불가능하게 볼 꿈을 꾼다.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무수한 노력을 쏟는다. 만일 그가 열성 유전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꿈을 포기했더라면 그의 가능성은 영원히 그 안에서 싹 틔우지 못하고, 그렇게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지구가 돌고 계절이 순환한다. 그리고 낮과 밤이 우리의 하루를 이룬다. 그렇게 세상은 알게 모르게 변화한다. 그리고 그렇게 그 세상의 일부인 인간 역시 변화할 것이다. 타고 나든 타고나지 않았든, 우리는 끊임없는 변화를 맞으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고 그 사이에서 다양한 기회와 마주친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서 진화 역시 미래를 보지 못한다고 했으니, 우리가 단정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거다. 그러니, 무한한 우주를 바라보며 무던히 움직일 수밖에, 내가 하고 싶은 걸 떠올리며 움직일 수밖에 없다.
*“돌아갈 힘을 남기지 않아서 이기는 거야”
새끼 때부터 발이 묶여있던 코끼리는 나중에 크게 되어 묶인 끈을 풀더라도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다고 한다. 이렇게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에게 부여된 틀은 발이 묶인 코끼리처럼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 어쩌면 우리는 생각보다 더 강할지도 모른다. “되돌아갈 힘을 남겨놓지 않아서 널 이기는 거야.”라는 대사를 뱉어낸 빈센트처럼.
몸속의 모든 원소도 행성의 일부라고 한다. 어쩌면 떠나는 것이 아니라, 고향에 가는 건지도 모른다.
*세상을 발견하다(유전과 환경)
유전과 환경에 대한 논쟁은 심리학을 배우면 참 많이 볼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 인간들은 유전과 환경을 따로 볼 수 없는 운명에 처해있다. 즉 유전과 환경은 상보적이라는 거다.
그러므로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상황적으로 맞지 않을 수 있고, 내 선천적인 능력 때문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또 어쩌면 상황과 선천성 모두의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그런 것들을 판단할 수 있는 좋은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를 거기에 맞출 건지, 상황을 바꿀 건지, 아니면 다른 가능성을 찾아볼 건지, 가능성을 스스로 만들 것인지는 우리의 몫이다.
그러니 내가 생각하기에 삶을 살아가는 데 가장 최우선은 ‘나를 아는 것’이고 그다음으론 ‘세상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며 무시할 수 없는 건 ‘타인의 응원(가타카에서 빈센트가 받는 도움처럼)’이다.
(요즘 드는 생각은 저 셋 중에 하나라도 잘 되면 참 좋을 것 같다는 것...)
1997년도 영화인지 모르고 봤는데, 지금 봐도 손색없는... 정말 재밌게 봤던 영화. 공상과학 요소가 가미되었음에도 '과학'에 치중되어 있는 게 아니라 '인간' 자체의 주제가 강해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