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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연 Nov 29. 2020

베이킹과 내 감정의 스펙트럼

웨딩케이크

내 마음이 피로하고, 작은 감정의 변화도 버겁게 느껴질 때, 휘황찬란한 아이디어가 가득한 새로운 케이크를 만드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체력이나 창의력의 문제만은 아니다. 시달려온 정신에게 새로운 도전과 시도를 요구하는 것은 눈을 감고 열 바퀴를 뺑글 뺑글 돌다가 땅에 그어진 일직선 위를 휘청거림 없이 곧게 걸어보라 하는 것과 비슷하다. 정말 똑바로 걷고 싶고 머릿속에선 그게 되는데, 또 그 의지가 없는 게 아닌데, 이상하게 내 몸과 마음이 뜻대로 다루어지지 않으면서 그 한 걸음 한 걸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반드시 내디뎌야 하는 게 아니라면 굳이 내디뎌야 하나?'. 그냥 좀 있다가 걸어볼까?

 요즘 나는, 예전처럼 그 일직선 위를 똑바로 걷기 위해 힘들었던 정신을 다시 차리는데 힘을 쓰고 있다. 우선순위에서 밀렸던 베이킹이 그립지만, 바로 돌아가기엔 좀 부담스럽고 어색하기도 해서 아주 적당한 것을 찾아 만들려고 애쓰고 있다. 쉽고 간단하고 모양새가 중요하지 않은 것들, 오래전에 해봤지만 또 해보고 싶은 것들. 조금씩 만들어 보며 마음을 다잡아야 가야 하겠다고 생각하며 지내던 어느 날, 친하진 않아도 마주치면 인사는 나누는 회사 동료로부터 연락이 왔다. 2주 후쯤 하게 될 결혼식에 위해, 다름 아닌 웨딩 케이크를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꼭 케이크를 만들어주고 싶다는 너무 기쁜 마음과, 중요한 결혼식날의 케이크를 나에게 부탁하다니, 감격스러운 마음만 느낀 게 아니다. 그렇게 물어봐주니 기쁘기도 했지만, 최근 몇 달 불안장애를 겪을 때 느낀 빠른 심장 박동이나 압박감 같은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기쁜 마음으로 해주겠다고는 했지만 막상 하려니 시간도 부족하고 아이디어도 없고, 그 커플이 전달한 주제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모든 게 난감하고 어려웠다.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더더욱 걱정이 되었다.

 토요일 저녁 결혼식, 나는 당일 오전부터 케이크를 만들었다. 일단은 대략적 계획을 짜 놓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생각을 적용할 줄 아는 내 능력을 믿고 케이크를 만들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장식을 시작하자마자 불안해졌다. 갈수록 점점 맘에 안 들고 화가 나고 속이 갑갑해졌다. 이리저리 빠르게 손을 움직여 봤지만 나에 대한 믿음은 없었다. 과감하게 시도할수록  점입가경의 상태. 재미 삼아 집에서 만들어 보는 케이크 대하듯, 마음에 안 든다고 포기하거나 미룰 수도 없는 타이밍이 되고 그대로 그냥 눈을 감고 숨어버리고 싶었다. 그렇지만 누군가의 결혼식을 케이크 때문에 망칠 수는 없지. 방향을 바꿔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고, 마음을 다잡아가며 이리저리 애를 쓰고 마음을 담아보았다. 망나니 같은 동물 한 마리를 어르고 달래는 기분으로.

 보통 뭘 해도, 계획대로 나오지 않는다 해도 나온 것에  잘 만족해 버리는 성격인데 이상하게 이 케이크는 그게 되질 않았다. 평소대로라면 불만족스러운 마음을 가지는 게 더 불편해 그냥 좋아해 버리고 그대로 덮어 버리면 그만인데, 어떻게든 더 잘해보고 싶은 것은 당연했다. 보울 안에 버터크림은 점점 줄어들고, 시간은 계속해서 쏟아져 엎질러지고 있다. 세탁기에 세제를 너무 많이 넣어서 온 집안에 거품산이 생겼는데 수습하면 할수록 거품은 점점 커져 결국 온 세상을 거품으로 덮어 버리게 되는 어린이 책 속의 주인공의 마음이 이랬을까.

 오래전에 커다란 캔버스에 그림을 그렸던 적이 있다. 해도 해도 마음에 안 드는 그림이 갈수록 수습하기 힘든 방향으로 이리저리 헤매고 있었다. 미리 생각 속에 계획해 놓은 그림이 있었고 신기루처럼 멀어지며 안 보이는 그 그림을 따라 그리려니 안 되는 것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그 순간순간을 해 나가면 될 것을 내 능력밖에 있거나, 또는 어디서 본 것 같은 잔상을 계획이랍시고 세우고는 그대로 되질 않아 답답해했다. 추상적 브러시를 구체적 손짓으로 휘두르려고 하니 뭐가 될 리가 없었다. 며칠간 그림에 끝을 보지 못하고 있다가, 다시 시작하고 싶어 그려놓은 그림 위를 모조리 한 색깔로 덮어 버렸다. 내가 머릿속에 그려놓은 나도 모르는 그 이상을 버리기로 하니 그 순간부터는 뭘 해도 상관이 없었다. 복잡하고 기괴했던 그림에 눈이 쌓이고 이불이 덮인 듯 아무것도 아닌 모습이 되었지만, 가장 개인적이고 미묘한 감정이 담긴 그림이 되었다. 그림을 보는 다른 이 에게는 보이지 않을, 내가 보낸 시간과 움직임들이 그림의 겹 아래서 살아있고 그것을 내가 알고 있었다. 우연에 맡기는 게 무책임해 보일까, 괜히 켕겨서 펼쳐 놓는 그럴듯한 청사진과 예시는 애초에 필요 없었다.  

 섬세하게 장식해 나가던 버터크림은 내 능력과도, 내가 원하는 것과도 거리가 멀었다. 진땀 흘리며 헤매던 길에서 돌아와 손이 자연스러운 다른 방법으로 케이크를 장식하며, 그 과정에서 그때그때 마음에 드는, 또는 좋은 방법을 고르고 그걸 반복하고 고쳐가며 케이크를 다듬어갔다. 조금씩 마음이 괜찮은 케이크가 되어갔다. 지금의 상태가 마음에 들기도 했지만, 혹여나 나중에라도 정신을 차렸을 때 정말 마음에 안 든다 해도 이 케이크를 장식하는 동안 지나쳐간 시간이 이 케이크를 더 멋져 보이게 해 줬달까. 내가 또 상황을 모면하고자 좋게 좋게 보려고 하는 건 아닌지 의심도 여러 차례 하고, 여러 복잡한 길을 돌고 돌아 식은땀이 나는 시간을 보낸 후 결국은 마음에 드는 케이크를 가지고 결혼식장으로 향했다.

 이 짧은 위기는 아무래도 약해진 내 마음에 좀 더 어려운 순간이었나 보다. 보통 어려움이 닥치면 당황하지 않고 최대한 상황에 적응하는 편이다. 그렇게 항상 뭐든 해결과 타협을 잘 해왔는데 아직은 고개를 들고 똑바로 걷기엔 이른 것인지. 내 발이 어디를 딛고 있는지 꼭 눈으로 확인해야 넘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아직까지도 내 마음에는 파도가 일고 천둥 번개도 친다. 때론 걷잡을 수 없이 폭력적인 소나기가 쏟아지기도 하고... 새로운 기분이라고 말할 순 없다. 언제나 나에게 있던 감정이었지만 매 순간 내가 얼마나 강인 한 지에 따라 자신감 있게 그 흐름을 잔잔하게 만들기도 하고 바람에 완전히 굴복하기도 한다. 외부의 요인이 아닌 내 정신력의 의해 내 삶의 질이 달라진다고 보면 되겠다.

 

 무사히 케이크 커팅을 마쳤다. 두 사람의 중요한 순간에 작은 일부가 되었다는 생각에 모든 괴로움을 잊었다. 아무리 자주 결혼식을 가도 나는 언제나 가슴이 벅차오르고 마음이 뜨거워진다. 너무 많은 이들이 하는 결혼이지만, 그걸 지켜보는 것이 지겨워질 수가 없는 이유는, 이 결혼은 두 사람에게만큼은 정말이지 이상하고 신기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내 편이 생겼다는 자신감도 생기고, '와, 내가 결혼을 하다니.' 너무 큰 결정에 이래도 되나 하는 불안감이 들기도 하고, 이제 앞으로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나, 하는 혼란스러움까지. 난 결혼식을 생략했기에 그건 어디까지나 내 상상이지만, 그야말로 사람이 살면서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을 결혼식 때 느끼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넘치는 감정의 중심에 내가 이들의 기억에 남을 조각들 중 하나가 되었다는 것은 굉장히 벅찬 일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고 서서, 숨겨지지 않는 행복한 표정을 하고,  그 와중에 이 사람들이 내가 만든 케이크로 축하를 하고 있다니, 나는 분명 엄청나게 운이 좋은 사람이구나. 마치 내가 결혼하는 둘 사이에 서서 함께 사진을 찍은 쑥스러운 기분도 물론이고.

 케이크를 전달하고 잠깐 얼굴만 비추고 와야지 했던 결혼식에서 조금 더 시간을 보내고 나왔다. 결국 많은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것이 조금은 어려워 나올 때도 도망치듯 나왔지만 집에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결혼식장의 커플, 그 앞에 놓여있던 케이크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나의 일부를 떼어 놓고 그것을 멀리서 바라보는 기분이 들었다. 어딘가에, 누군가에게 케이크를 주고 오는 것은 나를 한 조각 나눠 주고 오는 것처럼 느껴진다. 케이크를 만들며 나는 내가 느낄 수 있는 정말 다양한 기분을 느낀다. 단 하나의 케이크도 쉽게 노래 흥얼거리듯 만들지는 못한다. 그래서 케이크를 전달하고 나면, 무거운 외투를 벗은 듯, 개운하기도 허전하기도, 또 마음이 춥기도 하다. 그 복잡한 기분들이 가장 귀중하다고 느낀다. 오래전 힘들게 케이크를 만들었던 생각을 하며 그때 얼마나 어려웠는지 다시 한번 기억한다.

 내 감성적이고 심각한 성격이 때론 정말 번거롭고 지긋지긋하다. 어느 것도 허투루 대충 느끼고 넘기거나 조절하지 못하고 있는 그대로 모든 감각을 다해 세상을 느끼며 사는 것은 굉장히 피곤하다. 익숙하지만 쉽지 않다. 지나치게 좋지도 너무 슬프지도 않은, 언제나 평온한 정신을 유지하며 사는 것이 내 인생의 장기적 목표이자 오랜 바람이기는 하다. 하지만 음식점 옆 테이블에서 싸움이 나오면 심장이 뛰고, 누군가의 갑작스러운 친절한 말에는 눈물에 나고, 지하철에서 내가 내리기 전 먼저 타려는 사람들을 마치 오랜 원수라고 느끼는 순간적 충동을 조절하기엔 내 타고난 감정이 고성능 리트머스지 처럼 너무 빠르게 반응한다. 지치기도 하지만, 만들 수 있는 케이크와 쿠키가 있고, 그걸 받아주고 좋아해 줄 사람이 있는 한 나는 더 깊고 유난스러운 행복을 느끼며 살 수 있지 않을까. 어쨌든 잘 넘어갔으면 잊어버려도 될 힘든 시간들을 굳이 곱씹어 가며 한번 더 복습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뭐든 조금 쉽게 생각하라는, 덜 진지하게, 정도껏 비판적으로 생각하라는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일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즐거우려고 만드는 케이크에 이렇게까지 마음 상할 필요가 있는지, 부담을 느끼며 발품 팔아가며 굳이 해야 하는 일인지, 그 질문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어려움은 더 어렵게 느끼고 기쁨은 더 기쁘게 느끼며 나는 더 넓은 감정의 스펙트럼 속에 살아가고 그것이 내게 주어진 행운이다.

 하루에 수십 개 케이크를 만들어 공급하거나, 개인적 감정이 없는 불특정 한 누군가에게 내가 만든 케이크가 무작위로 팔려나간다면 이런 불안감, 부담, 기쁜 마음들이 생겨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내가 홈베이커라는 것이 기쁘다. 손잡이가 떨어져 나가기 직전의 나의 구질구질한 오븐에서, 제한된 시간 안에서 어렵게 만들어지는 케이크 하나, 쿠키 한 조각은 내 어둡고 뜨거운 감정이 세상에 튀어나오며 만들어지는 작고 귀한 결정체와도 같다.

내가 더 좋은 오븐을 장만하고, 더 훌륭한 부엌 시설을 차리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에게 집에서 하는 베이킹이 멋진 이유는 '누가 누가 잘하나'에 동참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나의 집에선 모든 케이크가 미션이고 하나하나의 쿠키가 에피소드이기 때문이다. 부탁을 받은 그날로부터 고민을 하고 위기를 맞으고 나와 타협하고 해결을 하며 전달하고 함께 기뻐하며 만드는 케이크는 마치 결혼하는 사람들의 하루처럼 셀 수 없이 많은 감정을 맛보게 한다. 이렇게 나는, 좀 유난스럽게 베이킹 하는 삶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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