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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연 Nov 14. 2020

낯선 세상에서 힘이 되는 익숙한 맛에 대하여.

애플 케이크

실연 당해 울고 있는 영화 속 여주인공의 손에는 종종 아이스크림 파인트, 또는 휘핑크림 캔이 들려있다. 내 본능이 원하는 것을 먹을 작정이고, 내 기분을 좋게 해 줄 음식을 먹겠다는 의지다. 다른 의미로, 우리는 평소  어느 정도는 적당히 영양과 건강, 맛을 고려한 식사를 하고 상당히 자주 먹고 싶은 것을 참고 넘어가기도 한다. 자제하며 산다. 하루 정도쯤, 자기도 모르게 잠깐이라도 생각하고 넘어가게 되는 음식들이 뭔지 관찰하고 기록해보면, 나처럼 하루에 15가지 음식과 디저트에 대해 총 50회 이상 생각한다는 것을 알게 될 수도 있다. 그중에서 나를 어느 정도 만족시키면서도 건강한 하루를 보내게 할 수 있는 음식을 골라 식사하고 간식을 챙겨 먹으며 살아간다.  혀가 느끼는 본능 그대로만 식사를 한다면, 음식 때문에 책임져야 할 질병과 신체적 영향이 아무것도 없을 수 있다면 우리는 뭘 먹으며 살아가게 될까? 행복하면서도 무서워지는 상상이다. 종종 생각하는 것은, 왜 세상은 해로운 건 맛있게 만들고 우리에게 필요하고 유익한 것은 맛없게 만들었을까 하는 질문인데, 오래전 내린 결론으로는, 그래야 그나마 사람들이 알아서 당근도 먹고 코를 틀어막고 케일 주스도 마시지 않겠나. 다 조화로운 세상과 균형을 위한 자연의 큰 그림이로구나.   

 항상 그리워하는 맛, 우울할 때 나를 위로해 주는 맛, 나에게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는 맛, 나에게 자연스러운 맛. 이런 맛을 가진 음식을 영어로는 'Comfort food'라고 표현할 때가 있다. 엄마가 항상 해주던 화려하지 않지만 익숙하고 편안한 음식들, 정확히 건강하다고 할 순 없지만 내 미각이 기억하고 낯선 곳에서 만나 예상할 수 없는 맛으로 나를 긴장하게 하지 않는 맛의 음식들이다. 미국에서는 피자, 초콜릿, 아이스크림, 맥 앤 치즈, 수프 같은 것들을 컴포트 푸드라고 한다. 해로운 군것질에 가까운 음식들이지만 먹기 전부터 설레고 먹으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맛임은 분명하다. 한국에선 엄마가 끓여준 찌개, 국. 밖에선 찾을 순 없지만 항상 우리 집에서 먹었던 이름 모를 별미들. 때로는 집에 있는 큰 바가지에 아무렇게 때려놓고 비벼먹던 정체불명 비빔밥이기도 하다. 명절 때나 먹을 수 있던 음식들은 내가 복작거리고 사람 냄새나는 삶을 살고 있다고 느끼게 해 준다. 많은 한국인들에게 컴포트 푸드는 다름 아닌 집밥이 아닐까? 어른이 되어 세상을 혼자 살아가기 시작하기 전, 고난을 대면하지 않아도 되는 집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큰 걱정 없이 살아가던 시절에 기록된 맛의 기억들이 그런 것들이다. 가장 힘든 시절에 먹던 음식을 다시 먹기 힘들어지는 마음과 비슷한 모양새다.

 나는 종종 엄마가 끓여주던 것과 비슷한 김치찌개와 미역국을 밖에서 먹었을 때 약간은 흥분된 마음으로 여기 음식 정말 맛있다고 느끼고 표현한다. 내 기준에는 그게 김치찌개이고 미역국이다 보니 '이 집 잘하네'라고 하는데 그 보다는 아 내가 익숙하고 그리워하는 그 맛이구나 하는 반가움의 마음이 더 큰 것이겠지. 우리 엄마,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여기에 또 있네.


  요즘은 나에게 부담 주지 않으려 나에게 익숙한 맛을 것 같은 것들을 만들어 보고자 애쓰고 있다. 종종 기이하거나 유머가 넘치거나 눈이 가는 케이크나 쿠키를 만들려고 했다면, 요즘은 나에게 먹이려고 만들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곤 한다. 몇 주전 인스타그램에서 본 케이크가 있었다. 소박한 사과케이크였는데, 언뜻 보기에 레시피도 정말 간단해서 베이킹을 처음 하는 사람도 쉽게 할 수 있어 보였다. 주말이 되면 만들어야지 하다 3주가 지나서야 겨우 만들어 보게 된 이 케이크는 소박하지만 놀랄 만치 마음이 편안하고, 익숙하면서도 좋은 맛이었다. 동등한 비율로 밀가루, 설탕, 버터를 섞고 달걀도 넣은 뒤 반죽을 담나 마음대로 썰은 사과는 에쁘게 담아 구우면 끝. 나는 거기에 마법의 향신료, 시나몬을 추가했다. 가을이기도 하고.

 한참을 쉬다가 만든 것이라 그랬을까, 쉬운 레시피임에도 재료를 믹스하고 뒷정리를 하는데 필요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안무를 잊은 댄서처럼 동선이 꼬이고 이리저리 허둥댔다. 사과를 썰던 날카로운 칼에 손도 베이고 말았다. 정말 오랜만에 손가락을 베여봤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나도 모르게 가로막고 있던 내 감정들이 올라오고 죽어있던 영혼이 불편한 잠에서 깨어나는 그런 기분. 아침에 일어나기 어렵지만 막상 씻고 출근하면 괜찮아질걸 알기에 이불을 털고 일어나는 그때의 조용한 매일의 의지처럼, 마주하기 힘들었던 예전의 일상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

 시나몬을 추가하고 두배합으로 만든 케이크는 집에서 먹기 좋은 작은 크기로 구워진다. 많이 익어 쫀득한 진갈색의 표면, 얇게 썬 사과 조각들 사이로 윤기 나는 반죽이 미어져 나온다. 반죽 이불을 덮은 사과들. 케이크 한 조각을 썰면, 가운데로 조심스럽게 폭 꺼진 사과층 아래로 촉촉한 중간이 나온다. 덜 익은 것인지 더 촉촉하게 구워진 것인지는 원하는 대로 판단하면 된다. 먹어보지 않아도 아는 맛의 조합이라고, 맛이 없을 수가 없는 조합이네-라고  종종 말들은 하지만 정말로 먹어보기 전까진 진짜로 알 수 없듯, 단순하기 짝이 없는 재료의 이 케이크도 그렇다. 덜 식은 케이크를 접시에 담아 꿀을 얹어 먹었다. 시나몬을 더한 건 기가 막힌 전략이었다. 버터, 설탕, 밀가루로 된 케이크 베이스는 묵직하고 밀도 높은 케이크의 감촉을 가지고 있고 표면은 갈색으로 충분히 익어 조금은 찔깃하면서 코너 부분에서 때로는 바삭거린다. 케이크의 중심으로 갈수록 점점 더 촉촉해지는데 이게 사과인지 케이크 반죽인지 모를 정도가 된다. 물론 사과는 얇게 썰어놓은 탓에 아삭하기보단 조금은 연약하면서도 포크로 잘 끊어지지 않는다. 나는 항상 재료들이 일정한 비율로 된 한입 한입을 먹고자 하는데 이 케이크에서는 아무려면 어때, 사과가 딱 맞게 잘라지지 않아도 괜찮다. 애플과 시나몬의 조화는 정말 멋진 발견이다. 상큼하고 달달한 과일에 따뜻한 향미를 더 할 생각은 누가 했을까? 신맛에 더해진 따듯한 시나몬은 반드시 지켜질 약속처럼 편안하다. 정말로 기본적인 케이크 바탕에 사과와 시나몬이 더하는 계절의 향기가 화려하게 장식된 케이크에 대한 미련을 잊게 한다.


 내가 여러 번을 만들고 또 만들 컴포트 베이킹 아이템들엔 뭐가 있을까? 이 애플 케이크도 있을 테고, 브라우니와 파운드케이크, 초콜릿 칩 쿠키, 피넛버터 쿠키, 바나나 브레드, 머핀 같이 내가 너무 잘 아는 맛 들. 만들면서 고생스럽고 번거롭지 않은 착한 레시피들을 더 찾아보려고 한다. 이미 맛을 알고 있는 케이크도 디저트도 다시 만들고 싶고 또 먹고 싶은 것은 미련함이라기 보단 내가 알고 있는 그 행복감의 재현이고 반복이라고 해야 할까? 아는 맛도 다시 맛보고 싶고 열 번 봤던 영화도 또 보듯. 아무리 살아도 낯선 세상과, 생각이 커지고 경험이 쌓여도 대하기 어려운 내 감정들에 치여 살아가다 엄마의 집밥을 먹거나 어린 시절 기억에 남아있던 향기를 마주 할 때가 있다. 그것은 순간적이지만 중요한 것을 상기시켜준다. 나를 편안하게 하는 익숙한 것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고 내가 그것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언제든 우리는 그곳으로 돌아가 볼 수도 있고, 그리움의 기분을 슬픔과 절망이라는 우울감으로 전락시킬 필요가 없다. 어려움은 어려움 자체로도 고난이지만, 기분 좋은 순간들을 겪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잊어버리게 한다는 점에서도 괴롭다. 앞으로의 내 삶도 그저 이렇게 슬프고 어두울 것이라는 막막함이 가장 무서운 부분이다. 희망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포기를 하는 것 이상으로 어렵고 공포스럽기 때문에. 우리에게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맛을 경험하며, 그리움을 인지해가며 행복과 안정과 평화는 없어진 것이 아님을 우리 마음에 상기시키는 것은 생각보다 중요하고 더 낯선 삶에 대처하는 힘을 길러 준다고 믿는다.

 



  일부러 어렵게 하지 않아도, 조금만 의욕을 내도 나는 훌륭한 사과 케이크를 만들어 나를 기쁘게 할 수 있다. 내가 만든 케이크를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은 너무 좋은 일이다. 내가 왜 베이킹을 하려고 했었는지 잊지 않아야겠다. 어딜 가도 내 맘에 드는 파운드케이크를 찾을 수가 없어 시작된 이 기행에서 굳이 남을 홀리기 위한 디저트를 만들며 칭찬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느려지고 정체된 나에 대해 괴로워하지 않기로 했다. 더 화려하고 기발한 케이크를 만들려고 이도 저도 하지 못하는 시간을 보내지는 않아야겠다. 나의 베이킹은 나를 위한 명상이지 남을 위한 오케스트라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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