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연 Aug 02. 2021

마라시노 체리에 대한 단상

 




  투명한 유리병 속 시럽에 줄기까지 빨갛게 물들게 절여진 체리 조림, 마라시노 체리. 마라시노 체리는  내 노스탤지어의 가장 빛나는 기억이다. 어린 나의 마음을 훔치던 반짝이는 병 속 가득한 달콤한 체리의 모습.

  뉴욕 버팔로에 있는 우리 가족의 단골 중국 음식점. 변함 없이 우리를 반겨주던 웨이트리스는 어김없이 바쁘지 않은 틈을 타 나를 찾아왔다. 나를 번쩍 들어 안고 다른 손님 몰래 바 카운터 뒤로 데려가, 한 팔로는 나를 들고 다른 손으로는 스텐 보관 용기를 열어 그 안을 채우고 있는 눈부신 핑크 빛의 체리 하나를 꺼내 내 입에 쏙 넣어주곤 했었다. 내가 묻지도, 누가 제안하지도 않는 무언의 약속이었다. 테이블로 돌아오는 나의 작은 손엔 칵테일 장식용 종이우산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바 뒤에서 무슨 일이 났었는지는 엄마 아빠에게 말하지 않았고, 그것은 나와 그녀만의 비밀이었다.  

  어두운 바 뒤편의 작고 아늑한 공간의 조명과 적막 속에서 맛보던 체리는 내 어린 시절의 하이라이트로 남아있다. 자연스레 이 마라시노 체리는, 나의 가장 오래된 기억과 지금의 나 사이를 잇는 비밀스러운 지름길이 되었다.

 지금도 케이크나 아이스크림에 얹어진 빨간 마라시노 체리를 볼 때면, 생각하지 않아도 몸으로 느껴지는 아련함이 있다.





작가의 이전글 초콜릿 칩 쿠키 다시 만들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