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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연 Jul 17. 2022

프렌치토스트

단편 #2

 

 "또 다른 불쌍한 생명을 낳아서 이 불행을 겪게 하는 것보다는, 이미 태어났지만 돌봐줄 부모 없는 아이를 입양하는 편이 훨씬 더 생산적인 것 같아."

 백화점에 들러 점심을 먹고 이것저것 둘러보고 차를 타고 돌아가는 길, 동호대교를 거의 다 건너왔을 때 엄마가 말했다. 왼편으로는 3호선 지하철이 고가철도를 달리고 있었다. 가까이에서 보게 되는 빠른 전차는 언제나 경이롭다. 전차를 보느라, 이렇게 무거운 쇠덩이가 빠른 속도로 오가는 이 고가는 어떻게 무너지지 않을 수가 있는지, 또 물 위로 다리는 어떻게 짓는 것인지 생각하느라 바쁜 머릿속을 엄마의 그 서슬 퍼런 말이 뾰족하게 파고들었다. 영화 '대부'에서, 갑작스레 가족을 대표하게 된 마이클이 원수 집안의 수장을 살해하던 장면 같았다. 화장실에 숨겨 놓은 총을 찾아 다시 테이블로 돌아가 사람을 죽이고 현장에 총을 떨군 채 부리나케 레스토랑을 나서던 순간 까지, 한 번도 범죄를 저질러 본 적이 없는 마이클의 긴장이 보이던 장면은 무거운 음악이 아닌 시끄럽고 뜨거운 기차 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끓는점의 주전자 소리가 나는 것일지도 모르는 그 순간처럼, 3호선 전차의 요란한 소리가 엄마의 이야기에 극을 더했다.

"그렇잖아. 애는 무슨 죄야.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니?"

 나는 조용히 맞장구를 쳤다.  

 내가 하루 중 가장 싫어하는 시간이었다. 오전의 의욕과 정오의 설렘은 흩어진 지 오래, 저녁의 편안함이 오려면 한참 남은 듯한 이상하고 서글픈 늦오후의 뜨거운 오렌지 빛 노을. 문지방에 서서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못하고 있는 듯 어린아이의 불안한 마음으로.

  백화점 맨 위층에서 점심으로 먹은 식당가의 초밥이 영 시원찮아서 우리는 헛배 부른 마음을 채워야만 한다. 분명 늦기 전에 마음을 먹어야 한다. 엄마가 부릅뜬 눈으로 말했다.

"나 프렌치토스트 먹으러 갈래."

 전에 엄마에게 가장 좋아하는 음식 몇 가지를 말해보라고 했는데 첫 번째는 기억나지 않지만, 두 번째는 프렌치토스트라고 했었던 것이 생각난다. 그때도 프렌치토스트를 먹으면서 그 이야기를 나눴다. 오랜만에 먹으면 좋을 것 같아 그렇게 차를 돌려 다시 반대로 다리를 건넜다. 낮아진 해가 한강 위에 눈부시게 반짝거린다.

  프렌치토스트를 주문하고 나는 커피를 엄마는 밀크티를 주문했다. 엄마는 분명하게, 의심 없이 맛있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확실하다. 애매하거나 난해해서 좀 겪어 봐야 먹을 줄 알게 되는 음식보다는 꾸밈없는 진실된 맛있음에 반응한다. 그만큼 위선이 없는 식성이라는 뜻이다. 그렇지만 싸구려 고기라면 단박에 알아차리고, 군내가 나는 것은 피한다. 재수 없는 것은 싫어하지만 좋은 것은 알아보는, 상당히 쿨한 식성 가지고 있다 해야겠다.

   두껍게 썰은 브리오슈 빵을 바닐라와 크림을 넣은 달걀물에 푹 담가 적신 것을 구운 프렌치토스트. 메이플 시럽이 충분히 얹어져 있고 블루베리와 딸기가 흩뿌려져 있다. 반으로 갈라 두 개로 만든 바나나는 토치로 그을려 놓아 바삭하다. 빵은 관대하리 만큼 두껍게 잘라서, 포크로 누르면 손날로 베개를 누르는 듯 푹신하게 잘라진다. 프렌치토스트를 만들 때는 신선한 빵보다는 최소 하루는 지나 수분이 약간 날아간 빵이 알맞다. 달걀물에 빵이 담가지는 과정에서 꽤 건조한 빵이라야 달걀물을 더 잘 흡수할 수 있기 때문인데, 그렇다고 또 너무 오래 두면 빵이 뭉개져 분해되는 수가 있어서 적절한 타이밍이 중요하다. 달걀물에 잠시 담갔다가 꺼낸 빵은 살살 흔들어 계란물을 덜어낸다. 이 것을 하지 않으면 구울 때 토스트 주변으로 달걀 스크램블이 생겨서 깔끔하지 않다. 빵에 흡수된 달걀물만 남기고 나머지를 쪼르르 털어낸다는 생각으로 하면 된다. 약불로 달궈진 팬에 버터를 두르고, 토스트를 구울 때는 색이 너무 진해 지거나 타지 않도록 불 조절과 적당한 조리 시간이 중요하다. 준비부터 조리까지 마음 편히 만들 수 있는 음식은 아니다. 또 그 사이엔 잘 구워진 베이컨도 만들어지고 있어야 하고, 나머지 빵들을 굽는 동안 다 구워진 프렌치토스트 조각들이 식지 않도록 따뜻한 오븐에 넣어놓아야 한다. 빵의 종류는 알아서 선택하면 되는데, 보통은 브리오슈 계열 식빵이나 할라(challah)를 사용하기도 하고 사워도우 빵도 좋다. 사워도우로 만들면 크러스트가 무척 질길 것 같지만 달걀물로 적셔 굽기 때문에 부드러워진다. 무슨 빵을 이용하더라도 2.5센티 이상 두툼하게 썰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만들기 전 하루 정도는 빵을 실온에 방치하는 것은 구운 후에도 두께와 형태를 유지시켜주는 역할도 한다.

 엄마는 프렌치토스트가 이렇게 번거롭게 만들어져야 하는 것인지 모를 것이다. 그렇기에 더 사랑할 수도 있는 것이겠지. 아무것도 몰라서, 마냥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줄만 알았던 어리고 젊은 엄마의 그때처럼.  

 야외 테라스에 흩날리는 꽃씨들이 그렇게 방해가 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곳의 직원들이 친절했고, 커피도 너무 뜨겁지 않았다. 입을 데이지 않고 마실수 있는 적당한 따뜻한 커피를 주는 곳은 흔치 않다.

 "맨날 이렇게 맛있는 것만 먹다 죽어버리면 좋겠다."

남은 프렌츠 토스트 조각으로 접시의 시럽을 닦아 모으며 엄마가 말했다. 말없이 공감했다.

 "얼마나 좋니 이런 프렌치토스트도 먹을 수 있는 인생이고..."

 프렌치토스트가 담겨 있던 널찍한 타원형 접시엔 남은 시럽과 제철이 아니라서 맛이 없던 딸기 반쪽이 남았다. 평일 늦은 오후의 불안감이 어느새 고즈넉하게 가라앉아있다.

 말없이 그곳에 앉아 있던 우리는, 함께 보고 있던 영화가 끝난 듯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곳을 나왔다. 프렌츠 토스트를 먹으러 가기로 한 그때부터 그곳에 있을 때까지 조금은 흥분된 기분으로 있던 우리는,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선 그렇지 않았다. 프렌치토스트를 먹으러 간 적이 없었던 것처럼.

“아휴 밥하기 싫어. 삼시 세끼 밥을 할 팔자일 줄은 몰랐다 내가.”

“그냥 하지 마 그러면”

“그게 되니.”

“.....”

“으휴! 진짜! 짜증 나!”

약간은 히스테리컬  엄마의 짜증에 웃음이 났다. 엄마도 웃기는지 소리 내어 웃는다. 엄마의 웃음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태어나지 말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반박할 수는 없었다. 이 세상에 엄마 그녀의 '나'로서 존재한다는 것은 너무 어려운 것이니까. 내 눈엔 간단히 해결될 엄마의 삶이, 그녀에게는 벗어나기 불가능한 굴레와도 같나 보다.

 이렇게나 울적한 태도의 삶에서 프렌치토스트를 먹는 그 순간만큼에는 물질, 정신적으로 부족하지 않은 완벽한 인생을 타고난 사람으로 변모한다. 그다지 건강하지 않은 태도임이 분명하다. 짧은 기쁨을 느끼고 위안을 얻지만, 그것이 끝나는 순간 삶은 다시 어둠으로 돌아가 행복했던 그 찰나는 원래 없었던 시간인 듯, 슬프고도 우스꽝스러운 엄마의 인생. 온화한 미소로 해소되지 않아 눈물이 나고 숨이 넘어가게끔 웃어줘야만 견딜만하다. 임시방편의 반창고처럼 연약한 기쁨의 순간들이 연속적으로 엄마를 들어 올려줄 수 있으련만, 매번 그런 순간을 선사해주는 것만이 괜찮을는지, 생각한다. 그러다 때론 그 고민에 빠져 아예 엄마를 외면해버리고 만다.

 두어 시간 안에 기분의 높고 낮은 굴곡을 모두 겪고 났지만 엄마는 다시 무덤덤한 표정으로 내일의 계획을 이야기한다. 무미건조한 계획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사이사이에 어떠한 순간들을 추가할지 빠르게 고민하여 제안한다. 단지 작은 기쁨을 더하기 위한 쓸모없는 활동들이지만,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면 그것이 굉장히 논리적이고 타당한 제안이라는 듯, 저항 없이 받아들인다. 다음날 내가 그 계획을 취소한다고 해도 엄마는 크게 아쉬워하지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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