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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연 Jun 07. 2022

산 자를 위한 쿠키

단편 #1




 앞으로 연재하게 될 초단편~단편소설 중 첫 번째 이야기를 공개합니다. 디저트 소재가 주인공으로, 또 조연으로 담긴 이야기들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는 할 만큼 한 것 같아 새롭게 도전하는 분야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얼굴이 미어지게 날카로운 겨울의 밤공기를 가르며 장례식장을 찾아가는 길은 어둡고 불편했다. 지하철을 탔지만 이미 출발부터 늦었던 우리는 마지막 몇 킬로를 남겨두고 마지못해 택시를 잡아탔다. 그랬다가 목적지에서 너무 멀리 내린 탓에 남은 십 분은 걸어서 가야 했다. 간신히 장례식장에 도착했지만 가야 할 곳이 몇 호실인지 몰라 각 빈소 앞에 걸린 모니터 속 고인들의 사진들 중 할머니의 얼굴을 찾아다녔다. 거의 20년은 더 된 듯 건강했던 시절의 할머니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미소였다.  

  빈소에는 사람이 없었고 제단 가득한 국화와 영정 사진이 있었다. 이 많은 국화는 누가 이렇게 빨리 준비해주는 것일까? 이렇게 많이 필요한 걸까. 망자의 미소에 웃음기는 없었다. 상주며 가족들도 없는 빈소에 대고 예를 갖추는 게 맞는지 고민하는데 막내 삼촌이 말없이 나타났다. 10년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장례식장은 처음이라, 어색하게 두 번의 절을 올리고 헌화를 한 뒤 접객실로 향했다. 언니네 식구는 진작에 왔다가 이제 자리를 뜨려던 차였다. 원래는 같이 오려고 했던 것인데 우리가 이렇게 늦은 것이다. 접객실에서 고모와 수군거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엄마를 찾았다. 엄마는 우리를 친척 삼촌들에게 데리고 가 사위를 소개했다. 사실 이들이 나와 어느 정도 가까운 삼촌들 인지도 잘 모르겠다. 누가 누구의 사촌이고 형제인지도 사실 그게 중요하지도 않지만.

 "어이, 영석이랬지?"  

 비슷하지도 않은 이름을 대며 남편과 통성명을 시도하는 친척 큰 아버지에 미소와 고통스러운 찡그림의 중간 정도 되는 표정을 지어 보이고 도망치듯 자리를 떴다. 20년 전에는 그들이 술에 취해하는 이야기들도 꽤 재밌었는데 이제는 조카사위 이름은 고사하고 30년을 넘게 보아온 내 이름도 정확히 모르는 노인들이 되었다. 상주 역할을 하고 있는 사촌 오빠는 3일 연속 온 모양이다. 자기 손님, 남의 손님 할 것 없이 맞이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마치 팔과 머리가 20개 달린 어떤 신이나 초능력자 같았다. 반복적인 인사를 한 뒤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근황 이야기나 잡담을 나누고 한참 자라고 있는 어린 자식에 대한 이야기까지 하고 나면 그들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그 침묵의 시간마저 그들에게 필수적이다. 달리 할 말이 없어져 술이나 반찬 더 필요하시냐 묻는 순간 새로운 손님이 찾아와 인사한다. 그는 이 과정을 3일 내내 해왔다. 대단하다. 하지만 그것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나 그 능력이 부럽지는 않다.

  언니네가 곧 간다기에 서둘러 우리도 떠날 채비를 했다. 차를 얻어 타고 간다는 핑계로 장례식장을 떠나고픈 마음이 더 컸다. 엄마와 아빠도 그게 서운한 기색은 아니었다. 오히려 우리가 못 올 곳에라도 온 듯, 빨리 내보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빈소에 도착했다가 떠날 때까지 곡소리는 단 한 소절도 나지 않았다.


 발인 전 날,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저녁 늦게 쿠키를 만들기 시작했다. 가족상을 치르기 위해 회사에서 나오는 연차는 빠짐없이 다 얻어서 쉬고 있지만, 빈소에서 눈물을 흘리거나, 손님에게 술이나 종이 접시에 담긴 전을 대접하거나, 또 3일간 초췌하게 부르튼 입술로 장례식장에 있었던 것도 아니다. 자주 경험하지는 못할 이 행사에 나 자신을 엮을 것이 필요했다. 하지만 쿠키를 만드는 것이 할머니를 떠나보내는 슬픔을 달래기 위함은 아니었다. 살아생전 나에게 아무리 듣기 싫은 소리를 해도 면전에 대고 할머니에게 버릇없게 굴었던 적은 없었다. 그의 삶을 축복하거나 이해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삶에서 죽음으로의 새로운 단계를 밟는 이에게 이 정도는 예우는 차려 보여야 하지 않겠나. 슬픈 마음이 전혀 없는 것이 아무래도 신경 쓰여 쿠키라도 만들어야겠다 싶었다.

 저녁 늦게 쿠키를 만드는 내 몸짓이 굼뜨고, 마음엔 신경질이 났다. 작은 오븐으로 한 번에 구울 수 있는 수는 정해져 있는데, 괜히 반죽은 두배합도 더 만들어 힘은 힘 대로 들고 시간도 더 걸렸다. 잔잔하게 끓이는 브라운 버터를 만드는 과정에서 에너지가 곱절로 들었다. 굳이 브라운 버터를 만들 필요는 없었지만 머리에 깃든 생각을 무시하기도 어려웠다. 쿠키를 만들까, 아주 스치듯 한 생각에 내가 붙잡혔듯, 버터도 그냥 버터를 쓰는 것이 오늘만큼은 안 되는 것이었다.

"50원짜리 비닐봉지 드릴까요 아니면 손잡이 없는 종이봉투 괜찮으실까요?"

다 만든 쿠키를 담을 갈색 종이봉투를 서랍에서 꺼내며 혼잣말을 했다.

"뭐라고?"  

 방안에 있던 남편이 물었다. 알아들었으면서도 확인차 묻는다. 내 말이 나도 어이가 없어 웃었다.  

"몰라 나도."

 나와 할머니의 유대는 올리브영 계산대 직원과 손님 사이의 그것 보다도 못했다.


 할머니는 전형적인 우리 시대의 노인이었다. 자신의 안위가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고 그것을 위해 거짓말과 이간질을 서슴지 않았다. 손자는 무조건 귀했고 손녀들은 대학을 가거나 뭘 잘해서도 안 되는 불 필요한 존재였다. 딸만 둘을 낳은 셋째 며느리 우리 엄마는 평생 뒷전으로 살았다. 손녀딸들의 인생에 좋은 일이라도 생기면 악담을 퍼부으며 그 순간들을 망치기 위해 했던 갖은 노력만이, 할머니와 나의 사이를 연결하는 유일한 감정이었다.

 내가 고등학교 때, 해가 뜨고서도 바깥이 무척 어둡고 을씨년스러운 날이었다. 하늘빛도 붉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엄마와 나만 할아버지네 집에 간 날이었는데, 현관으로 들어서는 우리를 보자마자 할머니는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이제 니들은 아주 못 보는 줄 알았다."  

 하늘빛이 마치 성경 속 묘사된 심판의 날 같았던 날이었고, 우리는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는 소리다.  

 "누가 왔니?"  

 방에 계시던 할아버지 물음에,

"네, 아버님 저희-"

엄마가 미처 다 말하기도 전에 할머니가 방에 있던 할아버지에게로 단숨에 달려가 말한다.

"우야꼬 여보~ 아아들이 와서 너무 고마워가... 내가 오지 말라켔는데 ~"  

 과장 하나 보태지 않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의 목소리로 우리의 도착을 알렸다.  

"아버님 좋아하시는 토란국 해왔어요~"

그 말에 할아버지가 따뜻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인사하고, 그런 할아버지를 등지고 있는 할머니는 표독스럽게 엄마를 째려보았다. 엄마가 점수를 따는 것은 견딜 수가 없는 일이다.

"악담도 창의적으로 한다 정말."  

집에 돌아오는 차에서 엄마가 말했다. 몇 번이고 할머니 흉내를 내며 웃었지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엄마의 얼굴엔 차가운 정적이 깃들었다. 칭찬의 종류엔 한계가 있지만 혐오와 모욕의 어휘는 참으로 무한하다. 그래서 재미있기도 하지만.


 발인 날 아침, 언니와 나는 각자의 가족을 집에 두고 함께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보통 손주들은 입관을 안 본다며?"

 "어 그렇다며."  

 나와 언니는 염을 한 할머니의 모습을 봐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죽은 사람의 몸을, 특히 얼굴은 보고 싶지가 않다.     

 대학병원 정문을 들어 서기 전 인도를 따라 수많은 화환이 세워져 있었다. 현수막도 수십 개가 걸렸다. 특별 사면된 박근혜의 출소를 축하하는 내용들이었다. 박근혜는 할머니의 장례식장이 있는 대학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화려한 화환의 끝없는 행렬이 장관이었다. 한 손에는 스피커 라디오를 들고 거기에 연결된 유선 마이크에 대고 감격에 찬 목소리로 그녀의 출소를 축하하는 연설을 하는 노인도 있었다. 양쪽으로 늘어선 화환 사이로 차를 타고 병원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장례식장에 하나둘 사람들이 도착했다. 대체적으로 모두가 늦었다. 큰 아버지가 장례절차에 대해 이런저런 설명을 하고 처음엔 뭘 하고 그다음엔 어디로 가는지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누구도 그걸 귀담아듣고 있지는 않았다. 둘째 삼촌이 또 그게 아니라며 다시 설명한다. 아빠는 설명하는 삼촌들을 등지고 돌아앉아 "에이씨, 순서가 아무려면 어때 그냥 조용히 따라나 다닐 것이지 뭘..." 들릴 듯 말 듯 몇 마디 툴툴거리더니 종이컵에 조금 남은 식어버린 믹스커피를 입에 털어 넣는다. 모두가 도착하니 장례 지도사가 절차를 설명하기 시작한다. 좀 전에 들은 두 삼촌의 설명은 모두 틀렸다. 지도사는 우왕좌왕하는 우리를 입관실로 이끌었다. '입관을 봐야 한다고?' 램수면 상태의 사람처럼 흔들리는 눈동자와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 언니를 찾았다. 도통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언니는 조용히 지도사의 발을 보며 따라가고 있었다. 보통 키인 그 남자는 발이 엄청 작았다. 유난히 작은 발이 신기해서 보고 있다가 그의 작은 발목을 따라 흐르는 양말이 눈에 들어왔다. 거의 스타킹에 가까운, 망사라고 해도 과하지 않을 그런 소재였다. 앙상한 복숭아 뼈가 훤히 드러나는 그 양말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호두를 담아 놓은 망사 주머니 같은 그의 발목이 향하는 곳으로 이끌려 어느새 입관실에 다다랐다. 두 개의 방이 이어져 있었는데 첫 번째 방인 대기실과 고인을 안치해놓는 방으로 큰 창이 나있었다. 취조실과 갤러리 형태다. 영화에서 보듯이 전체가 타일로 마감된 방위 스테인리스 재질의 테이블 위에 시체가 놓여있고 그것을 비추는 수술실 조명의 하얗고 푸른빛의 방은 아니었다. 따뜻하고 깨끗하며 새것 같은 나무무늬 가구와 실내 장식을 포근한 색의 조명이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새로 지은 스키장 콘도 객실에 들어온 느낌. 어떠한 고인이라도 모시기에 탁월한 곳 같았다. 대기실에서 보이는 창문 너머 방에 삼베 수의를 입은 할머니가 누워있었다.  

 "가족 여러분들 마지막으로 고인과 인사 나누시길 바랍니다."  

 지도사가 두 번째 문을 열며 들어가라는 손짓을 했고 나는 보이지 않는 힘에 떠밀려 걸음을 옮겼다.  사람이 늙어 죽기 전에 몸집도 굉장히 작아진다고 들었는데 염을 하여 좋은 수의를 입혀 놓은 할머니는 내 예상과 다르게 왜소하지 않았다. 요양원에서의 마지막 몇 달은 몸이 엄청나게 마르고 작아졌다고 엄마가 말해줬었다.

  "야 그래도 성질은 그대로야. 골골거려도 머리는 쌩쌩 돌아가서 할 말 다해."

 입관실에서도 다섯 남매는  누구도 울지 않아다. 대부분 그냥 전방 아래를 주시하거나 할머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고모는 물끄러미 할머니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표정을 봐서는 오늘  많은 인원을 데리고 어디서 점심을 먹어야 할지 고민하는  분명했다. 보통 이럴   버지가 나서서  마디 하는데 이번엔 조용했다. 10  할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내내 슬프게 울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그렇게 10 정도가 흘렀을까, 입관을 본다는 충격이 시니 피로가 몰려왔다. 누워 있는 할머니를 관찰 하기 시작했다. 편안한 잠을 자고 있는 표정을 하고 있었는데,  편안함이 분명  사람의 것은 아니었다. 살아가고 있는 이상 그런 평온한 미소를 지을 수가 없다. 얼굴에도 온기가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게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뭐든 5분 이상 가만히 보거나 느끼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아빠는, 어느새 대기실을 향해 슬금슬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모두가 인사를 마치고 할머니가 있는 방에서 나와 대기실로 이동하는데,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했다. 한마디 할까 아니면 그냥 이대로 나가야 하나. 충동적으로, 누워있는 할머니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염을 한 사람은 엄청 단단하구나.'  

 흠칫했다.  

 신이나 천국과 지옥을 믿지는 않는다만 영가를 잘못 건드리면 악귀가 되어 사람을 괴롭힐 수 있다는 것은 믿는다. 당신을 미워했지만 제발 나를 괴롭히러 오지는 않길.

"할머니, 잘 가세요."  

 대기실로 돌아와 흰 가운을 입은 남성 두 명이 고인을 관으로 옮기는 모습을 유리 너머로 지켜봤다. 할머니가 입고 있는 옷과 같은 삼베로 만든 얼굴 싸개와 모자를 씌우고 목 주변에서 끈으로 단단히 묶어 고정한다. 숨이 막힐 것 같다. 할머니 말고 내가. 발에도 신을 신고 있다. 온몸을 새로 지은 옷으로 감싼 할머니의 모습을 보니, 무척 마음이 편안해졌다. 죽음은 생각보다 화려하고 따뜻하군. 남자 둘이 힘을 합쳐 굉장히 좁아 보이는 나무 관에 할머니를 옮겨 담고 관 뚜껑을 덮었다. 하얀색의 긴 천으로 군데군데 매듭을 지었다. 그렇게 입관이 끝났고 할머니의 두 눈은 세상의 빛으로부터 영원히 차단되었다.

 전용 리무진에 관을 싣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화장터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 안에 듬성듬성 떨어져 앉았다. 나는 언니 옆에 앉았다. 버스가 출발하자 조금 전 까지 아무렇지 않게 있던 언니가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야, 입관을 보다니 충격적이다. 할매 얼굴 봤어?"

"어. 좋아 보이더라?"

"그치? 얼굴에 화장도 해주나 봐"

"저렇게 입혀서 보내주면 죽는 게 너무 외롭지 않겠어. 혹시 나 먼저 죽으면 꼭 저렇게 입혀줘."

"알았어."  

언니가 키득거렸다.

  20분 거리의 화장터에 도착했다. 큰 건물로 들어가자 화장터 직원이 로비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시끄럽고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안내를 주고 있었다. 삶에서 몇 번 찾아오지 않는 가족의 죽음에 여러 무리의 유가족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댔다. 화장터의 직원들은 매일 마주하는 죽음의 절차에 이골이 나있다. 장례 지도사가 할머니의 사망진단서를 가져왔는지 물었다.  

 "아차! 안 가져왔다."  

 아빠가 탄식했다.  

 "아휴 저럴 줄 알았지."  

 엄마가 한숨을 쉬었다. 장례지도사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잠시 우리를 바라보더니, 그 서류를 가져와야 접수할 수 있다며, 일단 누가 서류를 가져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아빠가 급히 집으로 갔다. 접수를 기다리며 대기실이 있는 곳으로 올라가 그곳의 구내 카페에서 커피나 차를 사서 대기실로 갔다. 곧이어 아빠가 서류를 챙겨 왔지만 그 사이 화장 순서가 많이 밀려서 예정보다 오래 대기를 해야 했다. 고모는 점심 예약을 미루기 위해 식당에 전화를 한다며 자리를 떴다. 죽음을 위한 웨이팅이 시작되었다.

 가만히 앉아있기 답답해, 아직 아무도 없는 가족 대기실로 혼자 찾아갔다. 15 남짓한 방에는 30 정도의 의자가 있고  의자들은  텔레비전 화면을 향해있다. 화장 중인 가마의 외부를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화면  가마 입구  전광판엔  박종순, 화장 대기 중이라는 글씨가 보였다.  모니터 아래의 고풍스러운 원형 나무 테이블 위에는 할머니의 영정사진과 문패가 있었다. 유명 관광지에  외지 사람처럼 이것저것을 사진으로 남겼다. 의자는 대기업 회의실 의자처럼 푹신하고 양옆으로는 팔걸이가 있는 묵직한 형태로 무척 편안했다. 이런 의자는 어떻게 찾아서 가져다 놨을까? 정말 편해서 모양만  달랐으면 집에도 하나 두고 싶다 생각했다. 얼마  가족과 친지들이 들어와 앉았다. '화장 대기 '이라는 글자가 '화장 '으로 바뀌어 있었다. 할머니의 몸이  안에 있는 것이다. 화장이 시작되잠시 조용해졌던 사람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웅성 거리며 잡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화면을 응시하고 있다가 문득 가마 안에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면 어떨까 생각했다. 분명 그것을 보고 싶은 사람이 있을 텐데. 돈을  주면 가마 내부에 카메라가 있어 관이 타는 모습을   있는 화장 초근접 생중계 패키지가 있다면 나쁘지 않겠다.

 편안한 의자에 앉아 멍하니 화면을 보고 있으니 졸음이 쏟아졌다. 이럴  쿠키가 있다면 좋았을 것을. 버스에 두고 내린 것이 아쉽다.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잠을  보려다 다리를 꼬고 앉아 있던 엄마의 발이 눈에 들어왔다. 부드러운 가죽 소재의  낮은 신발을 신었는데, 다리를 꼬느라 치켜 올라간 바짓단 아래로 드러난 양말이 보였다. 검은색 양말에 발목  부분에는 활짝 웃는 노란 스마일 그림이 있었다. 눈을 비벼 다시 보니 웃는 얼굴이 하나도 아니고  개였다.  광경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뒤에 앉아있던 언니에게도 내가  것을 알려줬다.  어깨너머로 엄마의 양말을 힐끗  언니도 피식하고 웃었다. 양말엔 꼬질한 보풀도  있었다.    웃었다. 망자에게 올리는  번의 웃음,  번의 스마일,  번의 . 할머니가 완전히 떠나는  아침, 엄마가 신은 양말은 웃는 얼굴이  개나 그려진 양말이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집을 나서기  서랍을 열면 보이는 여러 개의 양말  활짝 웃고 있던 양말을 집어 들던 찰나의 엄마는,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 인지하고 있었을까? 그건 모를 일이지만 엄마라면 화장 초근접 생중계 패키지를 구매했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 양말을 한참 동안 바라보며 히죽대고 있는데 화장이 끝났다.

 가마를 관리하는 직원이 화장하고 남은 것을 가루로 만들어 유족들에게 보여준다. ‘ 줌의 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재는 유골함에 담겨 가족들에게 전달이 되는데 그러기가 무섭게 누군가가 나타나 유골함을 빼앗듯 가져간다.  사람은 유골함을 열어  안의 공기를 빼내는 작업을 하는데, 굉장히 소란스럽고 정신없는 화장장 건물  어중간한  복도 중간에 대충 쭈그리고 앉아서 한다. 빠르고 신속하게, 죽음의 절차  하나가 끝났다.  

 다시 버스에 올라 장지로 향한다. 집을 나왔을 때는 없었던 해가 이제는 중천이다. 버스 뒤편엔 이런저런 조언을 하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상대방은 그냥 듣고만 있는 것 같다. 다들 벌써부터 지친 분위기인지라 쿠키는 언제 어떻게 나눠줘야 할지 마음이 불안했다. 이른 시간에 누가 먹으려 할까. 지금 아니면 안 될 것 같고 무엇보다 내가 먹고 싶어서 가방 깊이 넣어뒀던 쿠키 봉투를 전부 꺼냈다. 서너 개의 봉투에 나누어 담은 쿠키를 여러 방향으로 하나씩 전달했다.

"이야 하하, 이걸 또 언제 만들었어?" 60년 넘게 함께 했던 모친을 떠나보낸 아빠가 가장 먼저 반색한다. 가까이에 있던 고모, 친척들, 다들 하나씩 집어간다. 잠시 시끌 시끌 해졌던 버스 안이 다시 조용해진다.

"세상에 이런 걸 다 만들 줄 알아?"  

고모가 내 자리 쪽으로 몸을 뻗어 말한다.

 "쿠키는 보통 집에서 만들면 푸석푸석하던데 이건 어떻게 이렇게 쫀득하고 맛있니?"

 녹이거나 끓여서 태운 버터를 써야 하며 흰 설탕과 황설탕을 적절히 섞어야 좋고 초콜릿은 칩 말고 청크로 하거나 페브를 잘라 쓰는 것이 좋고, 반죽은 냉장고에서 두 시간 이상 휴지 시키고 굽는 시간은 12분 이내로 하면 된다는 대답 대신,  

"글쎄요~ 레시피가 이런 스타일인가 봐요."

 하고 웃어넘겼다. 자세히 설명할 기운은 없었다. 우리 친척들 성향에 이런 쿠키를 나눠 주면 여지 없이 누군가가 너무 달아  먹겠다며 듣기 싫은 불평을  것이다. 버스 뒤편에서 누군가가 그러려니 하고 꽁하게 기다렸지만 그런 코멘트는 돌아오지 않았다. 다들 조용히 쿠키를 먹었다.  

 "맛있구먼."

 아빠가 말했다. 조용히 쿠키를 다 먹고 가만히 창밖을 내다보고 있던 언니가 뭔가 단단히 마음을 먹은 듯 고개를 돌려 말한다.

 "나 하나 더 먹을래."

다들 쿠키를 하나씩 가져가고 남은 갈색 종이봉투가 나에게 돌아왔다. 쿠키에서 나온 기름기가 스며있었다. 남은 쿠키는 하나였다. 봉지채로 코트 주머니에 욱여넣었다.


 공원묘지에 도착해 찾아간 할아버지의 묘는 봉분 위부터 땅까지 반으로 뚝 잘려 나가 있었다. 거기서 조금 더 깊게 판 곳에 할머니의 유골함을 묻고 주변을 흙으로 채운 뒤 발로 꾹꾹 밟는다. 작업자 둘이 이 방향 저 방향 보면서 박자에 맞춰 밟고 흙은 한 겹 더 덮어 또 좌우로 움직이며 단단히 밟는다. 겨울 흙은 건조하고 차가웠다. 딱히 할 일이 없는 유족들은 둘러서서 그들을 지켜본다. 박자에 맞춰 흐르는 그들의 움직임은 마치 죽은 이를 위한 의식 같았다. 떠나는 할머니의 넋을 마지막으로 기리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오늘 처음 만난 묘지기들이었다. 시킨 대로 작업을 하고 있는 낯선 사람들이지만 지금 여기 가족을 떠나보낸 후 모여 있는 감정 없는 사람들보다 몇 배는 더 영적이었다. 매장 작업이 끝났다. 봉 분은 여전히 반쪽이 나 있지만 나중에 완성된다고 한다. 사람들이 자리를 떠나 버스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아무도 보고 있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주머니 속에 남겨 두었던 쿠키 하나를 꺼냈다. 손으로 쿠키를 뜯었다. 푸석하지 않고 쫀뜩한 쿠키는 부수기보단 찢듯이 조각내어야 했다. 발로 잘 다져진 묘 자리 주변에 흩뿌렸다. 한 조각은 내가 먹었다. 쿠키는 여전히 촉촉하고 달고 맛있었다. 드디어 모든 절차는 끝났고 그 사이 누구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각자 가져온 차를 세워 놓은 대학병원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은 극적으로 조용했다. 새벽같이 일어나 부산하게 움직인 우리는 무척 피곤했다. 다 같이 점심으로 먹은 설렁탕도 졸음에 한몫했으려나. 언니 차를 얻어 타고 집으로 돌아가며 우리는 요즘 어느 브랜드의 어떤 떡볶이가 맛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나눴다. A 브랜드의 경우 떡볶이 자체는 맛있는데 주변 먹거리가 없고, B 브랜드는 떡볶이는 그저 그렇지만 튀김과 순대가 뛰어나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집에 돌아오니 남편이 장례식은 어땠는지, 다들 괜찮은지 물었다. 대충 얼버무리며 대답을 하니  캐묻는 남편의 태도가 무척 불편했다.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았다. 슬프거나 감정적이어서가 아니라 내가 아무렇지 않다는 , 실은 가족 모두가 그랬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다들 쿠키를 좋아했어."

 편한 옷으로 대충 갈아입고 소파에 드러누웠다. 배달앱으로 떡볶이 집을 검색해 후기들을 읽었다. 그러다 문득 묘 주변에 쿠키를 뿌려 놓고 온 것이 신경 쓰였다. '쥐가 꼬이려나?'

"순대와 튀김이 맛있어요!"라는 칭찬 일색인 업체의 후기를 12개째쯤 읽다가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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