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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원 May 10. 2023

연애이별일기 ③ 내가 원하는 건 기적 같다.

2023년 4월 2일 일기 발췌

내가 원하는 건 기적 같다. 기적적으로 누군가 나에게 찾아와 크리스마스 이브밤에 머리맡에 놓인 선물처럼 받고 싶다. 그것은 기적이다, 기적.


나는 다른 누군가를 잘 지지해 주는 편이지만 나 스스로에게는 혹독한 잣대를 들이대는 편이다. 강인해지기, 나에게 남겨진 무언가에게서부터 기적적으로 나의 삶을 되찾아 오길, 동시에 나는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다.


누군가를 있는 힘껏 사랑하고 애정을 나누고 서로의 배려에 감사하며 나를 위하는 누군가를 향해 나도 힘껏 도약하고 싶다. 나는 누군가와 의미 있는 관계를 맺고 싶다.


그렇지만 내게 남겨진 마음의 부채, 고통 속에서 무너진 가족 관계, 불확실한 거주 환경, 늙어버린 영혼을 생각하면 그 열렬한 사랑을 고백하는 관계에 곧장 뛰어들기란 쉽지 않다. 나는 살얼음판을 조심스럽게 걸어가는 중이다. 숨 막힐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 순간에도 나를 사랑했다.


나는 나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나에게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최근에 만난 남자에게 애도의 슬픔을 단 둘이 비밀스럽게 나누는 경험을 처음으로 선사했다. 그건 나에게도 그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나의 인류애적 움직임은 애도를 함께 하는 그룹에 소속되어 있을 땐 아주 경이로운 감정 이입을 이끌어 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나는 친밀한 관계에서 섹슈얼리티한 감정을 느끼는 걸 무척 어려워한다. 가끔 느껴지지만 그것이 내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을 만큼 강렬하지 않다. 피곤하다. 나는 차라리 나에게 집중하는 편을 택한다.


내 애정은 원이, 우리 집 고양이에게 주기에 안성맞춤이다. 그리 강렬하지 않아도 약간의 걱정과 함께 담담하게 주어지는 애정만으로 우리 집 원이는 건강하게 살고 나는 그 모습에 퍽 만족한다. 어렵지 않다.


나는 애정을 쏟아낼 수 있는 사람이다. 단지 사람의 경우에는 귀찮을 뿐이다.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는 건 어려워. 나는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간다. 애정을 쏟아낼 의미 있는 대상은 필요하지만 동시에 나에게 엄청난 부담감을 준다.


나는 부담스럽다. 애정을 갈구하는 나 자신도, 타인도, 그리고 우리가 만들어낼 관계도 말이다. 두려움에 가깝다. 아버지를 닮은 그와의 관계에서 지례 겁먹고 도망간 쪽은 그가 아니라 나였다. 나는 그 이상이 무서웠다.


나는 친구 같은 관계에서 약간의 온기를 주고받는 걸 원하지만 그는 더 많은 온기를 원했다. 애석하게도 나는 그 이상은 원치 않았다. 나에게 나눠줄 온기를 가진 사람인 건 감사한 일이나 나는 원치 않았다.


나는 건강하지 않은 관계에서 오는 그 느낌이 싫었다. 건강한 사랑을 찾아야지, 건강하게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을 찾아 나서야지. 나는 건강한 사람이 좋다. 건강한 신체에서 풍겨 나오는 그 밝음을 사랑한다. 나는 좀 덜 떨어지고 애정을 갈구하고 회피하고 거짓말하는 사람들과 비슷므로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중이다. 아직은 아니야. 그렇지만 곧 만날 거야, 그 인연이.


그때까지 기다리는 편을 택했다, 나는 내가 더 건강해지도록 스스를 잘 가꾸고 사랑하고 싶다. 엄마, 나 어때? 머리 빗겨줘.


대체 텍스트: 어느 공연장에 놓인 드럼, 턱시도를 입은 붉은색 여우 그림과 함께 "joe p"라고 적혀 있다.

상황 설명: 아쉬움이 유난히 많이 남는 3월이었다. 내가 더 많은 에너지를 가졌다면 나는 남들에게 더 단단한 울타리를 만들어 줄 수 있지 않았을까? 나는 궁금한 게 많다. 나의 민감함이 재앙인지 천국에 도달할 수 있는 골든 티켓인지 잘 모르겠다. 이것이 입장권이라면 표값을 아주 비싸게 치르고 온 셈이다. 여기 지금 이 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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