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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원 May 08. 2023

유학공부일기 ① 나를 압박해 봐도 나는 지쳐 있었다

2023년 2월 21일, 2월 27일 일기 발췌

나에게 아무리 압박을 가해봐도 나는 무척이나 지쳐 있었다. 날씨의 영향이라고 생각해도 나는 너무 고달프고 힘겨웠다. 나는 거의 침대에서 일어나질 못했다. 일어났다가도 다시 쓰러지듯 침대에 누워 있었다. 완전히 소진되었다. 나에게 자주 던지던 왜냐는 물음에 나온 답이 의미 있게 다가오지 않았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몰랐다. 다시 힘을 내야 하는데 내기가 힘들었다. 다시 정상 궤도로 올라가는 중이다. 그럴 것이다.


언니한테 울면서 한 밤중에 전화를 했다. 언니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느닷 없이 걸려온 나의 전화를 받았다. 내가 이번 학기 때 대학을 못 붙을 것 같다고, 석사 과정을 미국에서 다녔으니, 나는 분명 더 좋은 대학으로 박사 과정을 가야 하는데, 가질 못할 것 같다고 울었다.


언니는 괜찮다고 했다. 어차피 아무도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이 말의 요지였다. 아무도 압박하지 않으니 스스로에게 너무 압박하지 말라고 덧붙였다. 언니는 그냥 언어 배우러 어학연수를 다녀온 것이라고 그런데 어학연수 중에 석사 학위까지 받아올 것이니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속삭였다.


언니는 괜찮다고 거듭 나를 다독였다. 위안이 되었다. 나는 나를 너무 과하게 압박했다. 더 해내야 한다고, 세상에 네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끊임없이 압박했다.


나는 세상에 내가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망설임 없이 성공가도成功街道를 달려야 한다고, 최대한 빠르게 도道를 찾아 박사 학위를 끝내야 한다고, 가능한 한 빨리.


1년을 더 쉬어가는 걸 나쁘지 않게 생각하려고 해도 내 입장에서는 그게 쉽지 않다. 잘해야 해. 가능한 한.


엄마로부터 떨어지는 게, 엄마의 존재 자체가 내 발목을 움켜 잡는 것 마냥, 그래서 엄마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지는 것만이 나의 과업인 마냥 굴었어도 나는 여전히 엄마가 그리웠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 이 통장으로. 이건 네 몫이야. 이 통장으로 쟤 하고 싶은 대로 살게 내비러 둬. 걘 하고 싶은 건 다 하게 해 줘.


엄마가 건넨 세월에 바래 꾸깃거리는 통장과 알록달록한 달팽이 조각상이 나에게 전달되었다. 나는 살아 숨 쉬는 달팽이를 오이도 대부도 바닷가에 놓아주었다. 달팽이는 바다를 향해 꿈틀거렸다. 천천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나머지 달팽이는 잘 키우다가 이탈리아 피렌치 성당에 두고 올 참이다. 나는 엄마가 남긴 통장을 해약한 후 뉴욕주로 떠나왔다. 뉴욕주 정도는 와야 멀다 싶은 거지. 나는 엄마를 인천 바닷가에 두고 여기로 왔다.


너는 서울이 아니라 뉴욕 정도는 갈 수 있어, 뉴욕 말이야.


나는 엄마의 부채감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했다. 한국 사회를 벗어난 뒤어서야 나는 먼발치에 지켜보며 돌아보았다. 나의 고향이여, 안녕.


대체 텍스트: 어느 건물 천장, 가운데엔 유리로 된 둥근 모양의 아름다운 창문이 있고 그 주위론 원형으로 줄무늬 문양이 새겨져 있다.

상황 설명: 학교, 집, 학교, 집 루트가 너무 지겨워서 다운타운에 놀러 갔다가 커피도 마시고 공립 도서관에서 책도 읽었다. 잘 놀다 돌아와서 책상에 앉으니 프로젝트는 너무 하기 싫고 밖은 이미 어둑해졌다. 아, 이제 집에 있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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