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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원 May 21. 2023

애도일기 ④ 애도의 순간에 젊음 만끽하기

2021년 9월 8일, 9월 27일 일기 발췌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검은 정장을 입은 나는 너무 어색해 보였다. 그렇지만 나의 아버지를 단 한 번도 같이 살아본 적 없는 사촌 오빠한테 대신 보내달라고 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물러날 곳이 없었다. 그래서 어색한 역할 놀이를 이어 나갔다. 가장 친밀한 관계가 가장 친밀한 혈연에게 해줄 수 있는 걸 해주려고 했다. 복장의 부적절성, 다시 말해 어른의 세계에서 통용되지 않는 부적절함이 나에게서 풍겨 나왔닼 어색하게 차려입은 정장이 나를 작게 만들었다.


어머니의 발인날, 이모가 나의 머리를 집을 나가기 직전에 빗겨주면서 물어봤다.

입고 갈 옷이 이것뿐이니?

그랬다. 나는 장례식장이 마땅히 입고 갈 옷이 없었고 언니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엄마가 교생 실습 나갈 때 첫날에 입고 가라고 사준 원피스를 입을까 아니면 대학 총장 앞에서 대표로 상 받으러 단상에 나갈 때 입으라고 사준 원피스 입을까 고민하다가 남색 원피스를 입었고 우리 언니가 더 부적절해 보이는 빈티지샵에서 산 짙은 색 원피스를 입었다.


이후로는 '장례식'이라는 공간이 나의 뇌리에 박히기도 했고 누군가를 공식적으로 만나야 할 상황이 많아지기도 했고 이런저런 연유로 나의 옷장은 점점 검은색으로 물들어 갔다. 검은 옷을 입은 나는 꽤 어른스러워 보였다. 나는 어른스러워 보이는 나 자신을 사랑했다. 아니, 솔직히 말해 부모를 잃어버린 아이가 유일하게 입을 수 있는 옷 색깔이라고 생각했다.


부모가 사라졌다. 내가 입을 수 있는 옷이란 검은색뿐이었다. 옷 전체가 검게 물들어져서 무슨 색이 첫 색깔이었는지 알 수 없어야 했다. 나는 대체로 강렬한 색깔이 잘 어울린다. 빨간 립스틱도 자주 샀다, 노란색, 그것도 샛노란색을 무척 좋아했으며 초록색과 보라색 옷도 간간이 사모았다. 이제 남은 색은 검은색이었다.


친구들과 Music 플러스 Art 페스티벌에 가기 위해 다시 옷장 문을 열어젖혔다. 오렌지색으로 눈과 입술을 잔뜩 물들이고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는 곳에서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흥얼거렸으며 술을 잔뜩 마시고 나서는 내가 너무 어리고 젊고 표현하고 싶은 나이란 걸 깨달았다. 어린 나이, 아직은 치렁치렁한 옷과 형형 색깔의 옷을 입고 다닐 나이라는 것이 실감 났다. 세상 모든 색깔의 못을 입고 다녀도 무방한 나이였다.


또 한 번의 추석이 다가왔고 나는 부모님의 애도상을 차렸다. 차례상이 아니라 애도상이었다. 옛 조상에게 바치는 예가 아니라 죽고 죽어버린 그들의 넋을 위로하는 상차림이었다. 굶지 말라고, 많이 먹고 가라고, 이승에서의 모든 집착, 서운함, 아쉬움, 그리움, 그리고 나에 대한 미안함도 다 두고 훨훨 날아가라는 뜻이었다. 날아가라고, 나는 당신들이 필요 없다고. 아니, 그보다는 없이도 이렇게 우뚝 설 수 있다고, 나에게 되뇌는 것이다. 당신을 사실 중오했다고, 나를 버리고 간 당신에게 무척이나 화가 난다고, 그렇지만 당신에게 얽매여서 나를 좀 먹고 싶지 않았다고.


내가 그를 여기 고이고이 묻어 두고 떠난다. 나의 떠남을 애처롭게 바라본다 하더라도 굳게 그를 버리고 나의 삶을 찾아 떠나가 볼 작정이다. 텅 빈 그의 눈동자가 우리의 종말을 알려왔다. 산속에 깊이 숨겨놓은 나의 아버지의 장례식장엔 많은 이들이 오고 갔다. 누군가 그들을 찾아도 이제 나는 모릅니다.


자신의 죽음이 알려지기 원치 않았던 그녀를 위해서는 나는 장례식도 제대로 치르지 않았다. 그녀의 유언에 따라 나는 아주 간소한 장례를 치르고 나의 승픔을 아주 작게 속삭였으며 당신의 가족이 원하는 대로 침묵도 곧잘 지켰습니다. 나는 착한 딸이고 싶었습니다. 당신의 마지막을 당신이 원하는 대로 마무리 지었습니다. 당연합니다.


나에게 무엇이 남았냐고 묻지 마세요. 그저 이 생을 견디는 중입니다. 생명은 너무나 깊은 늪이라서 빠져나가긴에 영 그렀습니다. 종종 불연히 찾아오는 슬픔을 입술 꽉 깨물고 참습니다. 죽음을 맛본 자는 쉽게 허기집니다. 무엇을 먹어도 즐겁지 않습니다. 눈앞에서 죽음이 자꾸 보입니다. 나는 좀 더 살고 싶습니다.


대체 텍스트: 20세기 때 쓰였을만한 경찰서를 재현한 사무실이 보인다. 빼곡히 꽂힌 책장 옆으로 검은색으로 칠해진 낡은 기계가 보인다.

상황 설명: 미국에서 처음 맞이하는 추석이었다. 언니는 가주로서 전통적인 차례상을 준비했다. 그녀의 차례상은 아주 훌륭했다. 나는 어설프게 내가 먹을 만한 음식을 차려냈다. 우리는 서로 컴퓨터를 앞에 두고 마주 앉아 차례를 지냈고 밥을 같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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