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개발 분야를 예로 살펴 보는 현장과 연구 간 연계의 필요성
지난 글에서 시스템 사고와 국제개발이라는 주제를 다루며, 인간의 삶과 사회가 얼마나 복잡한 구조 속에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느 국가의 작은 시골마을을 가더라도, 그곳에서는 다양한 주체들이 다이나믹한 정치·사회·경제 구조 안에서 서로 상호작용하며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국제개발 프로젝트를 기획하기 위해서 우리는 여러 문헌자료를 통해 여러 상황과 배경들을 파악하고, 직접 지역을 방문하여 지역주민을 비롯한 이해관계자 몇몇과 몇시간 대화를 나누고 지역사회의 몇몇 사이트들을 눈으로 직접 관찰하기도 한 후, 그 지역의 문제와 원인을 정리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솔루션들을 구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한 것만큼 그들의 삶과 사회는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대상이 되는 지역사회의 다이나믹과 복잡성을 쉽게 무시하고, 우리의 상식과 논리라는 틀 안에 갇혀 너무도 단순한 시선으로 대상 지역사회를 바라보는 오류를 범하곤 합니다. 예를 들어, 경제적 빈곤에 처한 농민의 빈곤 탈출을 위해 농업활동에 필요한 종자, 비료, 기술 및 비즈니스 교육 등을 제공하고 농업 생산성을 높여 농민들의 소득을 증대시킨다는 논리의 흐름처럼 말입니다.
이러한 논리는 너무나 상식적인 흐름인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농민들의 소득을 증대시키기 위해 종자, 비료와 같은 영농투입물을 지원하고 농업 기술 및 비즈니스 교육을 제공하는 것은 여느 농업개발 프로젝트에서 쉽사리 찾아볼 수 있는 활동들입니다. 어쩌면 가장 기본이 되는 활동들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몇몇 활동들을 통해 농민들이 빈곤에서 쉽게 탈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기후위기, 분쟁, 시장 불안정 등의 불가항력적인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이상) 적어도 농민들의 소득 증대에는 즉각적으로 도움이 되고 이는 농민들의 빈곤 탈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리라 예상을 합니다. 농업생산성 향상에 분명하게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종자, 비료 지원과 농업 기술교육을 통해 더 많은 양의 농산물을 생산하고, 이를 시장에 적정 가격에 판매할 수 있게 지원한다면 당연히 농민들의 소득은 증가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자연스럽게 농민들의 경제적 빈곤 탈출에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 소득(income)의 정의는 분야에 따라, 분석 단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농업개발 프로젝트에 사용되는 소득의 개념은 일반적으로 농가가 경제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돈을 의미합니다.
위 질문에 대한 답의 예시로 간단하게 살펴볼 논문은 Beaman, L. et al. (2013) “Profitability of fertilizer: Experimental evidence from female rice farmers in Mali,” American Economic Review, 103(3), pp. 381–386. 입니다(링크: https://www.jstor.org/stable/23469761).
연구진은 말리의 23개 마을에서 383명의 쌀 재배 농민들을 대상으로 비료를 지원하는 연구를 진행합니다. 연구지역에서 쌀 재배는 대부분 여성 농민들에 의해 이루어 지므로, 여성농민들이 연구 대상으로 설정되었습니다. 연구그룹은 랜덤하게 3개 그룹으로 나누고 첫번째 그룹 135명에게는 권장 비료사용량의 전부(308kg/ha)를, 두번째 그룹 123명에게는 권장량의 절반(156kg/ha)을 지원했습니다. 세번째 그룹 125명에게는 비료 지원을 하지 않았습니다.
연구진들은 비료 보급 시 농민들에게 30분 간 비료사용법에 대한 짧은 설명을 제공했고, 추가적인 교육이나 모니터링은 없었습니다. 대신 재배 기간 중 영농투입물 사용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고, 수확 직후에는 데이터 수집을 위한 팔로우업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연구진은 비료 사용량과 쌀 수확량 뿐만 아니라 노동투입량, 고용노동비, 제초제 구매비 등 다른 영농투입(inputs)에 대한 데이터들도 함께 수집했습니다. 그리고 쌀 생산(output)과 영농투입(inputs)을 비교하여 농민들의 수익(profits)을 분석하였습니다. 수익은 '생산된 쌀의 경제적 가치-영농투입으로 인한 지출'로 계산되었습니다.
그 결과, 비료를 무상 지원받은 두 그룹의 쌀 생산량은 모두 증가하였습니다. 비료를 지원받지 못한 그룹 대비 각각 17%, 31% 증가하며 비료 사용을 통한 생산성 증가 효과는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비료 지원을 받은 두 그룹 모두 제초제 구입비과 고용 노동비를 매우 증가시켜, 농민들의 실질적인 수익은 감소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비료 지원을 통해 농민들의 쌀 생산량을 분명히 증가하였으나 비료를 지원받은 농민들은 제초제를 더 구매하고 더 많은 인력들을 고용하여 농사를 지어, 소득 증가분보다 더 많은 비용을 추가 지출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농민들이 실질적으로 경제적 빈곤을 벗어나는 데에는 비료 지원을 통한 생산성 증가가 긍정적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결과입니다. 되려 지원을 받은 농민들의 수익이 지원받지 못한 농민들보다 낮아지는 결과를 초래하기 까지 합니다.
단순한 연구인 것 같지만 이 연구의 결과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매우 기본적이면서도 우리가 자주 범하고 있는 실수에 대한 것입니다. 농업 생산성이 향상되면 자연스럽게 농민들의 경제적 빈곤 탈출에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하던 우리의 상식이,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보면서 우리가 놓치지 말고 생각해 보아야 할 점들이 있습니다.
첫째로, 국제개발 외부행위자들이 프로젝트 기획 초기부터 대상 지역과 주민들의 상황, 문제와 원인들을 잘못 (지나치게 제한적이고 단순하게) 파악하고 있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어떤 농촌 지역사회에 경제적 빈곤의 문제가 있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원인은 낮은 농업 생산성 입니다. 하지만 연구 결과에서 보듯이 농업 생산성이 증가된다고 해서 경제적 빈곤이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농산물을 모두 잘 판매하여 더 많은 돈을 벌었다 하더라도 그 농가의 경제적 상황이 더 나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생산성과 소득 증대는 경제적 빈곤 탈출을 위해 필요한 조건이지만, 지출과 소비 등 다른 요소들도 고려가 되어야 합니다.
국제개발의 외부 행위자들이 프로젝트를 기획하기 전 단계에서부터 해당 지역사회의 상황과 주민들의 삶을 너무 단순하게 바라보고 있진 않은가 생각해 보게 됩니다. 프로젝트를 만들고 수행하는 행위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다양한 구조 속에서 지역사회와 주민들은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PDM의 틀에서 벗어나 계속해서 사고를 확장해 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둘째로, 프로젝트 종료 후 그 효과성을 평가하는 기준도 단순화됩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프로젝트의 최종목표 자체가 생산성과 소득, 두가지 큰 축으로 이루어져 그 정도 수준에서의 결과만 분석하게 됩니다.
물론 현실에서의 프로젝트들은 이 연구보다 더 세밀한 활동들을 진행합니다. 비료사용법 교육, 비즈니스 교육 등 여러 교육프로그램들을 함께 제공하는 등 농민들이 보다 효과적으로 농사를 짓고 경영을 할 수 있도록 부가적인 활동들을 함께 진행합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결국 대부분의 프로젝트들이 종료 후 사업의 성과를 판단하기 위해 측정하는 것들은 생산성과 소득 중심입니다. 생산성이 증가하고 생산한 농산물을 시장에 잘 판매하여 소득이 증가하였다는 것 보다 더 디테일하게, 실질적으로 이 농가의 경제적 상황이 어떻게 변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관심을 많이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프로젝트 PDM 상의 지표 달성이 프로젝트가 대상으로 한 지역사회와 주민들의 삶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했는지를 보증해 주는 것은 아닌데도 말입니다.
이처럼, 대상 지역사회의 상황과 주민들의 삶을 가능한 정확하게 이해하고 분석하기 위해서는 보다 명확하게 상황과 문제를 분석하고 그 인과관계를 찾을 수 있는 연구들이 진행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당연한 상식으로 여기고 있던 부분들을 내려놓고, 프로젝트 대상 지역사회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보다 종합적이면서도 세밀한 연구와 분석이 필요합니다. 적어도 선행 연구들에 대해 충분히 검토하고 도출된 레슨런들을 고려하려는 노력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강화되어야 합니다.
근래 들어서 국내에서도 평가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진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연구는 평가를 넘어선 더 넓은 범위의 개념입니다. 연구는 프로젝트의 효과성을 분석하기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외부의 개입(프로젝트 등) 여부와 무관하게 사회 환경과 인간의 삶이 어떠한 상황에 있는지, 어떠한 사회정치경제의 구조 속에서 어떠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리고 여러 요소들 간의 관계는 무엇인지 등 현재의 상황과 현상들을 파악하고 분석하는 일 그 자체도 매우 중요한 연구의 대상입니다. 국내 사회를 보더라도 사회복지·경제 분야에서 정책이나 프로그램의 효과성을 평가하는 연구 뿐만 아니라 빈곤과 같은 여러 사회문제 자체를 분석하는 연구들도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이러한 연구들이 바탕이 되어야 정책이나 프로그램이 기획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국내의 국제개발계는 연구의 중요성을 얼마나 인지하고 있는지, 아니면 선행된 연구들을 얼마나 참고하고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앞서서는 경제학적 분석이 담긴 연구물을 참고했습니다만, 더욱 다양한 학문적 관점의 접근도 필요합니다. 제가 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농촌개발의 영역에서도 경제학 뿐만 아니라 인류학, 지질학, 환경, 사회학 등 다양한 학제간 연계가 필요합니다. 반복해서 이야기하지만, 지역사회와 주민들은 다양한 환경 속의 다양한 주체들이 복잡한 사회정치경제 구조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와 삶은 숫자로만 표현할 수 없으며, 다양한 학문적 관점에서의 관찰과 분석이 필요합니다.
나의 삶의 요소들이 쉽게 설명될 수 없는 것처럼, 국제개발 프로젝트가 대상으로 하는 사회와 주민들의 삶 역시도 그러합니다. 사회와 환경, 그리고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것들 뿐만 아니라 그 내막의 다양하고 복잡한 다이나믹들을 이해해야 합니다. 온전히 모든 것들을 이해하고 파악할 수는 없겠지만, 가능한 세밀하게 분석하여 개입의 실패 확률을 줄여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국제개발 현장과 연구가 보다 활발히 연계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연구를 통해 사회와 인간 삶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조금 더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면, 보다 다양한 농업농촌개발 프로젝트들이 기획될 수 있습니다. 현재까지는 농업 생산성이나 소득 증대 부분에 초점을 맞춘 프로젝트들이 대부분이라면, 다양한 연구 주제를 통한 여러 연구 결과를 기반으로는 저축, 대출, 투자 등 보다 다양한 경제영역에서의 개입을 계획할 수 있습니다. 또한, 경제적 빈곤 뿐만 아니라 성평등·자연자원 관리·사회적 자본 등 보다 다양한 사회·환경의 영역들에서의 문제들도 발견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복합적인 개입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더욱 통합적인 시선으로 다양한 영역에서의 활동이 이루어져, 경제적 빈곤을 넘어선 다차원적인 빈곤을 줄여가는 데에 기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의 짧은 경험으로는 국내의 국제개발계에서는 아직 프로젝트 수행 중심으로 많은 자원과 관심이 쏠려 있는 것 같습니다. 평가 연구가 점점 강조되고 있지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프로젝트의 효과성과 임팩트를 분석하는 평가 연구 뿐만 아니라 대상 지역의 이슈들과 주민들의 삶을 보다 정확히 이해하기 위한 연구들도 함께 필요합니다. 이러한 연구들은 조금은 더 명확하고 정확한 이해로 대상 지역과 주민들이 맞이하고 있는 여러 이슈들을 분석하여 효과적인 개입 전략을 수립하고 세부 프로젝트들을 기획하는 것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 국제개발 분야의 여러 주제를 대상으로 다양한 학문적 관점이 융합된 세밀하고 심도있는 여러 연구들이 수행될 수 있는 환경이 점차 마련되어 지길 바래봅니다. 그리고 그 연구들이 현장에서 진행되는 여러 국제개발 프로젝트들과 잘 연계되어, 보다 나은 방향으로 우리의 사회가 발전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