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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YOND DEVELOPMENT Jun 25. 2023

비영리 스타트업과 국제개발

비영리 스타트업을 통한 사회 변화와 혁신

이전에 국제개발 CSO/NGO의 역할과 책임, 그리고 중요성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2022년 개최된 정부-시민사회 ODA 합동포럼을 보고 국제개발계에서 시민사회조직과 비영리조직의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내용들을 정리했었고,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읽어 주셨습니다.


이전 글에서도 적었다시피 저는 국제개발계에서의 CSO/NGO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며, 그 영향력과 존재감이 더욱 더 커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국내 국제개발계는 정부의 주도로 수많은 주체들이 이끌려 가는 분위기입니다. 규모를 떠나 대다수의 CSO/NGO들이 정부와 동일한 선상에서 목소리를 내거나 담론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고, 심지어 한정된 정부보조금 사업을 유치하기 위해 서로 견제하는 경쟁적 분위기가 있기도 합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국내의 국제개발 CSO/NGO들이 서로 파트너십을 강화하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지, 여러모로 쉽지 않은 환경입니다.


국제개발 CSO/NGO들의 균형있는 성장이 어려운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재원을 확보할 수 있는 루트가 매우 한정적이라는 점입니다. 국제개발 CSO/NGO들의 수입은 대부분 개인 혹은 기업들의 정기·일시 후원과 정부보조금에서 마련이 됩니다. 


정부보조금 중 가장 큰 규모의 지원사업은 KOICA의 시민사회협력사업 공모전입니다. 많은 기관들이 해당 공모전을 통해 사업을 운영하고 있지만, 선정이 되어야 하는 공모전의 특성 상 기관과 사업의 장점 뿐만 아닌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평가를 고려해 사업을 만들어야 한다는 제약이 있습니다. 회계 증빙 등 기관에게 요구되는 행정 부담도 매우 큽니다.


반면, 개인 후원자들을 통한 모금은 행정 부담의 측면에서는 정부보조금보다 부담이 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업 내용이나 사업 운영을 위한 인건비, 행정비 등에 대한 인식은 매우 낮아, 후원자의 눈높이에 맞춰 후원금을 운영하고 보고해야 한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기업 후원의 경우, 여전히 기업의 입맛에 맞춰 후원금을 사용하려는 기업들이 많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대상 지역과 주민들을 가장 잘 아는 국제개발 CSO/NGO과 협의를 하며 사업을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원하는 지역 기업이 원하는 콘텐츠를 정해 놓고 국제개발 기관에 요구하는 경우들이 아직도 너무 많습니다(개인 후원자들의 인식도 그렇지만, 국내기업들의 사회공헌에 대한 태도와 방식은 분명 큰 변화가 필요합니다). 


이렇듯 국제개발 CSO/NGO들은 항상 후원금 유치에 대한 압박이 항상 있는 동시에, 후원자들의 니즈에 맞게 후원금을 사용해야 한다는 여러 부담들을 안고 있습니다. 하지만 CSO/NGO들이 보다 자유롭게 각 기관들의 장점을 살리며 성장하기 위해서는, 여러 제약과 조건을 설정하기보다 이들이 생산하는 사회적 가치와 임팩트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여러 자원들을 과감히 투자할 수 있는 후원·지원자들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 앞선 글에서는 국제개발 CSO(시민사회조직)/NGO(비정부기구)라는 표현을 썼지만, 이어지는 글에서는 비영리 조직이라는 표현과 혼용합니다. 다른 의미의 개념이지만 대부분의 국제개발 CSO/NGO들이 비영리조직의 특성을 지닌 기관들인 점을 고려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들리는 반가운 이야기는 소셜섹터의 몇몇 중간지원조직들이 비영리 기관들을 지원하는 기금을 조성하는 사업들을 몇해 전부터 진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루트임팩트는 '벤처 필란트로피'라는 컨셉을 기반으로 비영리기관 지원사업을 시작했는데요. 벤처 필란트로피는 '기부나 후원 등을 포괄하는 필란트로피 활동에 벤처 투자의 방법론을 도입한 것' 입니다. 비영리기관의 성장을 도와 이 기관이 만드는 사회적 영향(임팩트)를 극대화하는 것에 목표를 두고, 제약없는 후원금·다년간 지원·비금전적인 성장 지원을 제공해 주는 사업입니다. 


영리 조직의 경우, 조직의 아이디어나 성장 가능성을 두고 자금을 지원해 주는 경우(벤처 캐피탈 등)가 많고, 특히 소셜벤치나 사회적기업의 경우도 임팩트 투자 등의 개념이 등장하면서 기업의 영리성 뿐만 아니라 사회적 가치 생산과 확산이라는 기준을 토대로 기금을 확보할 수 있는 여러 기회들이 있습니다(물론 이 분야도 여전히 투자 규모가 크지 않습니다). 반면, 비영리 기관들은 사회적 가치 생산과 확산을 가장 첫번째 목표로 활동을 하고 있음에도 임팩트 투자와 같은 기금과는 연결되지 못했었습니다. 사회적 경제처럼 사회적 가치 생산을 경제모델과 결합할 수도 있지만 경제모델과 결합될 수 없는 사회적 가치 생산활동들도 다수 존재한다는 점에서, 소셜 벤처나 사회적기업에게 투자되는 임팩트 투자기금과 같은 투자가 비영리 조직들에게도 필요합니다.


루트임팩트와 같은 소셜섹터 중간지원조직들이 비영리 기관들을 대상으로 사회적 임팩트 창출과 확산을 위한 임팩트 기금 조성을 더욱 확대해 간다면, 국내 비영리 기관들을 지원하는 방법들도 점차 다양해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러한 흐름이 지속된다면 국제개발 분야의 비영리 기관들도 행정 부담을 줄이고 인건비나 운영비 등에 대한 제약도 줄어들면서 보다 자유롭고 효율적으로 사회적 임팩트를 생산하고 확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중간조직들이 공통으로 사용하는 개념 중 하나는 '비영리 스타트업'입니다. 루트임팩트 뿐만 아니라 다음세대재단, 아산나눔재단, (구)서울시NPO지원센터에서도 수년 전부터 '비영리 스타트업'들을 지원하는 사업을 운영해 오고 있는데요. 루트임팩트에서는 비영리 스타트업을 '새로운 기술, 빠른 의사 결정 등 스타트업의 특징을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특정한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명확한 목표 의식을 지닌 비영리 특성을 함께 갖고 있는 조직'으로 설명합니다. 


지난 4월 다음세대재단이 개최한 '비영리스타트업 임팩트 역량평가지표(ICAN)' 개발 연구 보고회 영상과 자료를 보면, 비영리 스타트업이 무엇이고 왜 중요한지에 대한 배경이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특히 연세대 최영준 교수님 진행하신 발표와 첫번째 보고서를 보면, 국내 비영리 분야의 역사와 흐름 속에서 근래에 등장한 비영리 스타트업은 무엇이고 왜 등장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떠한 면에서 중요한지에 대한 내용이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전통적인 비영리조직과 비교하여 비영리 스타트업이 갖는 차별성입니다.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며 다양한 사회문제들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전보다 다양한 이슈들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 수준이 높아지면서 인권, 환경, 젠더 등의 이슈에 대한 더욱 많은 활동들이 필요해 졌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후원자 서비스에 대한 부담, 위험회피적 경향, 복잡한 행정구조 등의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기존의 비영리 조직은 새롭고 다양한 문제를 발굴하고 해결하는 기능을 충분히 발현하기 어렵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국제개발 분야의 비영리 조직들의 상황을 보면, 우선 대형기관들은 후원금 모집액이 수백억원 이상의 단위로 증가하면서 수많은 후원자들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니즈에 민감히 고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형기관들의 후원자 관리·서비스팀의 팀원 수만 보더라도, 후원자 관리를 위해 얼마나 많은 자원 투입이 필요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대규모의 예산을 다루기 때문에 행정시스템이 체계화되면서 동시에 보수적이고 관료화되는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 중소형기관들은 후원 모집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새로운 시도에 많은 제약이 있습니다. 모집액이 크진 않지만 후원자들이나 후원기관의 니즈를 민감히 고려해야 하는건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정보 보조금 의존도가 높을 수록 역시 보고를 위한 보고, 행정을 위한 행정에 휩싸일 때가 많습니다.


규모를 떠나 국제개발 비영리조직들의 공통적인 한계는 전통적인 자선단체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대다수의 후원자들은 월 3만원의 후원금이 본인의 결연아동들에게 모두 쓰이길 바라고, 인건비나 운영비의 필요성에 대한 이해는 매우 낮은 상황입니다. 개인후원금에 대한 의존도가 높든, 정부 보조금에 대한 의존도가 높든 어느 쪽이든 국제개발 비영리 조직이 대상지역의 다양하고 복잡한 사회·환경·경제적 이슈에 자유롭고 유연하게 대응하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솔루션을 시도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현실적 제약들이 있습니다. 



한편, 다음세대재단의 연구 보고서에서는 비영리 스타트업의 조건으로 공익성·혁신성·사회적 가치·임팩트 확장성·초기단계·비영리성을 제시하고 있는데요. 아래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이, 비영리스타트업은 전통적 비영리조직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더욱 혁신적인 방법으로 사회적 가치를 생산하고 확산하려 합니다.

비영리스타트업의 개념상 위치 (출처: 최영준 외, 2023)

결국 '재원'과 연계된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기존의 전통적 비영리조직이 혁신적이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앞서 이야기했듯이 새로운 방법을 시도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는 재원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각 국제개발 비영리조직이 가진 특색과 장점을 살려 국제개발 사업에 적용할 수 있는 재원이 있다면, 보다 자유롭고 도전적인 비영리기관들이 더욱 생겨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러한 재원 마련을 지원해 주는 사업들이 중간지원조직들의 '비영리스타트업 지원사업'입니다. 



그렇다면 국제개발 분야에서 비영리조직들이 '혁신성'을 갖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말 그대로 누군가는 시도해 보지 않았던 새로운 방법으로 문제해결을 도모하는 혁신적인 접근법이 필요합니다. 단, 여기서 새로운 방법이 꼭 새로운 기술일 필요는 없습니다. 즉 혁신이 비단 기술적인 혁신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국내 국제계발계가 지니고 있는 여러 한계점들을 생각해 본다면 새로운 도전을 통한 혁신을 추구할 수 있는 부분들이 꽤나 많습니다. 


우선 다양성 측면에서, 국내 국제개발계에는 수많은 기관들이 존재하지만 그 다양성은 부족합니다. 정부 산하 ODA기관, 사회공헌활동을 하는 기업, NGO, 대학, 그리고 민간 컨설팅사. 다양해 보이지만 지리적으로는 수도권에 매우 집중되어 있고, 재원적으로는 정부 ODA기금에 의존도가 높다는 점에서 공통점들이 많습니다. 현장이든 학계든 국제개발 사업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예시가 되는 사업들은 대부분 정부 ODA기금 기반의 사업이지, 민간 펀드가 기반이 된 사업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논의는 전무 하다시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여전히 자선 혹은 단순제공 위주의 프로젝트들이 많고, 서로 다른 주체 간 협업도 정부 ODA사업을 위한 컨소시엄이거나 혹은 ODA기금·기업 재원 투입에 의한 수직적 관계인 상황이 많아 다양한 주체들 간의 협업 시스템이 부재합니다. 


또한, 대다수의 국제개발 관련 기관들이 프로젝트 발굴과 수행에 집중하고 있고, 연구나 어드보커시 영역에서의 활동은 너무도 부족합니다. 연구 활동은 적고 현장과 단절되어 있습니다. 국제개발 이슈들과 깊이 연관된 인권·환경 등의 영역에서 어드보커시 활동 또한 제대로 기능하고 있지 않습니다.


자선 혹은 단순제공 위주의 프로젝트들, 다양한 주체들 간의 협업 시스템 부재, 약한 연구와 어드보커시 영역, 실천과 연구 영역 간의 단절 등 국내 국제개발계에서 정체되어 있는 여러 이슈들을 고려한다면, 새로운 도전을 바탕으로 혁신이 필요한 부분들이 정말 많습니다. 



국제개발 뉴스레터 김치앤칩스를 발행하는 공적인사적모임도 새로운 도전을 하는 혁신의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공적인사적모임은 '청년들이 재미있게 활동할 수 있는 국제개발협력 생태계 조성에 기여하고자 하는 자발적 플랫폼'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국제개발협력 분야가 점점 많은 청년들이 일하고 싶어하는 영역이 되어 가는 동시에, 적지 않은 청년들이 이 생태계 속에서 지치고 실망하며 업계를 떠나가는 상황 속에서 청년들 간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다양한 정보와 활동을 공유하며 청년 간의 연대를 강화해 가는 커뮤니티입니다. 


조직의 형태도 일반적인 국제개발 비영리 조직의 법인 형태인 재단법인이나 사단법인이 아닌 사회적협동조합 형태를 지향하는 것은 국제개발협력 생태계 내의 청년들이 겪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청년 개개인이 직접적인 주체가 되어 해결해고자 하는 의지로 보이기도 합니다. 해결이 필요한 일이지만 기존에는 아무도 하지 못했던 일에 도전한다는 점에서, 새롭고 혁신적인 도전입니다.


이러한 시도들은 분명 국제개발협력 생태계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는 청년들에게 든든한 지지대가 될 수 있는 활동입니다. 또한, 기존의 전통적인 국제개발 비영리 조직의 형태와 역할에서 벗어나 보다 다른 형태로 이전과는 다른 역할을 하는 비영리 조직이 생겨난다는 점에서, 국제개발협력 생태계의 다양성을 더해 주는 의미있는 도전입니다. 그리고 앞서 말한 비영리 스타트업 지원사업들은 이러한 도전들을 지원하기 위해 존재합니다(구. 서울시NPO지원센터-[2022 비영리스타트업 피칭데이] 공적인사적모임 피칭 영상 참고).



사회 변화와 혁신은 모든 국제개발 비영리 조직들의 목표이자 지향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회 변화와 혁신이라는 키워드를 사회적경제, 혹은 영리 분야에서 더 주도적으로 가져가고 있는 것 같아 못내 아쉬웠습니다. 그러던 중 알게 된 비영리 스타트업 지원사업의 존재는 참 반가운 소식입니다(사실, 제가 몰랐을 뿐 이미 수년 전부터 지원사업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국제개발 분야의 비영리 조직들도 보다 자유롭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기존의 재원 조달방식 외의 다양한 형태의 기금 유치에 도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물론 그보다 먼저, 지금보다도 더 넉넉한 규모의 기금과 지원들이 마련되어 꿈과 비전을 품은 여러 인재들과 기관들이 부담없이 도전할 수 있는 생태계가 더욱 단단히 구축되길 기대합니다. 비영리 스타트업의 초기 지원 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성장을 지원해 줄 수 있는 보다 길고 넓은 범위의 지원사업들이 생겨나길 기대합니다.


덧붙여서, 기존의 전통적인 비영리 조직 중에서는 천억원이 넘는 예산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기관들도 여럿 있습니다. 국내 비영리 생태계에서 국제개발 분야만큼 기관들 간 양극화가 심각한 분야도 없는 것 같습니다. 보다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만들어 가기 위해선, 기존의 대형 비영리기관들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아무리 규모가 크더라도 복잡하고 다양한 이슈들에 발빠르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협업들이 필요합니다. 더욱 개방적인 자세로 국제개발 비영리 조직의 균형있는 성장을 위해 노력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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