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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 북부 농민과 유목민 비교연구: 무엇을 연구할까?

가나 북부지역 연구 에세이 ④

by 비욘드발전연구소

동료 가나연구자를 통해 가나 북부의 농민과 유목민(풀라니 민족) 비교 연구의 실행 가능성을 확인하고서는, 가나 현장 연구를 진행하기 위한 연구 지원금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사실 그 이전부터 니제르에서 연구를 진행한다는 가정 하에 어떤 연구지원사업에 도전할 수 있을지는 이미 조금씩 살펴보고는 있었다. 다만, 사회과학 분야 박사과정생이 도전할 수 있는 지원사업은 거의 찾아보기 힘든 수준이었을 뿐.


연구지원사업에 도전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연구계획서'이다. 입사 지원 시 제출하는 일종의 자기소개서와 같은 역할을 하는 문서이다. 연구계획서에는 다양한 내용들이 담기지만, 내가 어떤 연구를 왜 하고자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배경, 목적, 방향과 방법을 구체적으로 담아야 한다. 무엇보다, 이 연구가 과연 무엇을 탐구하고자 하는지를 명확히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학원 입학지원서에 야심 차게 적어낸 주제는 니제르 농민 민족과 유목민 민족(풀라니)의 기후 회복력(climate resilience) 비교였다. 기후위기(가뭄, 태풍 등)를 맞이했을 때 빠르게 위기에 대응하고 일상으로 회복할 수 있는 능력과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국제개발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접근방향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강우량, 온도, 습도 등 기후 조건과 매우 밀접한 농업과 목축업에 생계를 의존하며 기후변화에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는 농촌지역의 농민과 유목민들에게, 기후회복력은 너무나도 중요한 개념이 되었다. 비가 충분히 오지 않는 니제르나 가나 북부 같은 지역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내 연구의 대상이 기후변화에 취약한 지역과 인구집단이라는 특징을 토대로, 농민과 유목민 집단이 기후위기에 처했을 때 얼마나 빠르게 대응하고 회복할 수 있는지, 또 이런 대응의 준비가 얼마나 잘 되어있는지를 판단하는 '기후 회복력'을 살펴보고 싶었다. 특히, 농업을 위주로 생활하는 농민들과 가축들을 돌보며 유목생활을 하는 유목민들의 기후 회복력 수준은 얼마나 다를지, 알아보고 싶었다.


그리고 이 주제의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 박사과정생 연구지원사업에 선정되었다. 연구 대상지역만 니제르에서 가나 북부 지역으로 변경되었을 뿐, 박사 입학지원 때부터 계획했던 연구 주제로 연구를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연구지원사업에 선정된 후, 연구 수행을 위해 다시 여러 문헌자료들을 조사하며 연구계획을 구체화해 나갔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기존 연구계획의 몇몇 한계점들을 발견했다. 우선, 기후회복력은 여러 요소들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개념인데, 이를 측정해서 수치화하는 것에는 여러 어려움들이 존재했다. 물론 기존의 연구들을 바탕으로 나름의 기준을 잡고 측정할 수는 있으나, 여러 심사를 거쳐야 하는 박사학위논문 주제로는 무리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이 이어졌다.


결국 이 한계를 인정하고, 연구 주제를 더 구체화시키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박사학위논문의 대주제인 농민들의 생계전략(livelihood strategy)과 연결시켰다. 꽤 오랜 기간 동안 문헌 검토를 한 후, 기존 주제보다 더욱 구체화된 주제를 설정했다(기존의 연구계획서를 기준으로 연구지원을 받은 연구이기 때문에, 위의 구체화된 주제로 세부연구를 진행하되 대주제는 '기후회복력'과 연결시킬 예정).

소득원 다양화가 가나 북부지역 농민 및 유목민의 가구 소득, 지출 수준 및 식량안보에 미치는 영향


기존 계획에서 보완된 점은 첫째, 측정이 어려운 기후 회복력 대신 소득 및 지출 수준 식량안보라는 개념을 살펴보기로 했다. 식량안보 역시 정의가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개념이지만, 여러 선행연구들이 많이 다뤄온 개념들이라 실천 현장이나 학계에서 널리 사용되는 측정지표들이 이미 존재하는 개념이다.


두 번째, 농민과 유목민을 단순 비교하기보다 '소득원 다양화'라는 전략이 농민과 유목민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기로 했다. 쉽게 말하자면, 한국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N잡(job) 전략이 농민과 유목민의 가구 소득 및 지출 수준과 식량 안보에 어떻게 '다르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펴보는 연구이다.


N잡, 즉 소득원을 다양화(농업, 축산, 일일 노동, 소규모 비즈니스 등)시키는 것은 여러 위기 상황에서 농민과 유목민들의 생계를 안정적으로 유지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많이 활용되는 생계전략이다. 하지만 N잡은 경우에 따라서 그 효과가 다를 수 있다. 누군가에는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것이 소득을 극대화하는 데에 유리할 수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 반대일 수 있다. 이 차이를 농민(비풀라니)과 유목민(풀라니)이라는 인구집단적 특성을 기준으로 살펴보기로 했다.


연구지원사업에 선정이 되면서, 상상만 하던 연구를 실제로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상상 속의 연구를 현실에서 실현시키기 위한 준비과정은 (돈만 있다면 금방 진행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생각보다 길게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선행연구들을 읽으며, '이런 내용을 이미 연구한 연구자가 있구나, 대단하다'라며 감탄하기도 하고, '이미 이 내용을 탐구한 연구자가 있구나(그렇다면 내 연구의 차별점은 무엇일지 더 고민해야 한다!)'라며 의기소침해지기도 한다. 긴 호흡으로 임해야 하는 연구를 하다 보면 여러 답답함을 느낄 때가 많지만, 연구 주제 설정은 앞으로의 모든 연구과정의 기반이 되는 것이기에 소홀히 할 수는 없다. 더 많은 연구 경험이 쌓이면, 이러한 과정을 거치는 것도 점차 적응이 되겠지.


어쨌든, 내 연구가 조금 더 현실화되었다.

이렇게 또 한걸음 더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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