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 북부지역 연구 에세이 ③
약 2년 간의 파견 근무를 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복귀하던 날. 정들었던 니제르를 떠나던 순간의 수많은 생각과 감정들을 정리하긴 쉽지 않았지만, 머지않아 꼭 다시 오고 싶다는 마음은 분명했다. 내가 앞으로 추구해야 할 삶의 방향과 가치관에 큰 영향을 준 곳이니 만큼, 니제르에 다시 꼭 오고 싶었고 분명 다시 올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한국에 돌아와 여러모로 분주하게 지내다 보니 니제르에 대한 마음이 점차 옅어지기도 했었다. 코로나 팬데믹까지 겹치면서, 니제르뿐만 아니라 다른 프로젝트 현장과도 몸과 마음이 모두 멀어졌었다. 하지만 박사과정에 도전해 보고 싶다는 마음, 특히 학위논문을 니제르의 농민과 유목민에 대해 써보고 싶다는 마음이 든 순간부터는 조만간 니제르에 다시 갈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점차 다시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 연구를 할 수만 있다면 그 자체로 박사과정에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어쩌면 무모할 수도 있는 도전을 계속 부추겼다. 그렇게 30대 중반에 박사과정생의 삶이 시작되었다.
박사과정에 입학한 순간부터 또 다른 사회와 마주했다. 박사과정생이라는 새로운 포지션, 그리고 주변의 모든 환경이 바뀐 상황에 적응해야 했고, 동시에 밀려드는 수많은 연구 과제들을 쳐내느라 삶과 일의 경계가 무너져갔다. 박사 학위논문을 고민할 겨를 없이, 그때그때의 과업들을 헤쳐 나가느라 모든 에너지가 소비됐다.
그러던 중, 니제르에 다시 방문할 수 있을지도 모를 기회가 생겼다. 니제르에서 진행된 UN WFP 프로젝트의 종료평가를 수행해야 하는 과업을 맡게 되었던 것이다. 니제르에 관련된 일을 할 수도 있다는 사실 자체로도 너무 설렜다. 프로젝트 종료평가를 위해선 보통 현장을 방문하기 때문에, 어쩌면 니제르에 다시 가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을 품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불안한 치안 상황으로 인해 니제르 방문은 진행되지 못했다. 말리 국경 지역에서 오래도록 격화되고 있는 무장테러세력들의 위협으로 인해, 사업 현장 방문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종료평가 과업에만 연관된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염두에 두고 있던 니제르의 연구 대상지역도, 외국인이 방문하기 위해서는 높은 비용을 지불하고 군인들의 에스코트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박사과정생의 학위논문을 위해 무릅쓰기에는 너무 큰 위험이 따르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치안 상황이 나아지길 기다릴 수도 없었다. 니제르의 치안 이슈는 너무 오래도록 이어져온 문제였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2023년 7월 26일 군부 쿠데타가 발생하며 니제르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니제르에서의 연구는 진행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리고, 다른 국가에서 진행하고 있는 연구과제를 기반으로 졸업논문을 준비해야겠다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즈음이었다. 당시 우리 대학원에 가나에서 온 박사과정 방문 연구생들이 있었는데, 그중 한 명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가나 북부에도 유목민들이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그 유목민들은 니제르에서 만났던 풀라니 민족이었다. 가나 북부지역은 반건조 지역으로 내가 연구 대상지역으로 설정하고 싶었던 니제르 남부지역과 굉장히 유사한 기후, 지리적 특성을 공유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에도 외부에서 이주해 온 풀라니 사람들이 반정착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침 이 이야기를 나눈 가나 연구자는 가나 북부지역 출신 사람이었고, 연구의 가장 중요한 데이터 수집 방법인 가구 설문조사를 전문적으로 하는 컨설턴트 일도 하고 있던 연구자였다. 이 친구가 한국에 머무는 6개월 동안 나는 틈틈이 가나 북부지역과 유목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고, 내가 생각하고 있는 연구 주제에 대해서도 공유했다. 특히, 함께 나주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한 후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를 기다리며, 기차역 대기실에서 대화를 나눴던 순간들이 길게 기억에 남는다. 흥미로운 주제라며, 가나 북부에서도 충분히 연구가 가능할 것이라고 호응해 준 친구의 반응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나는 선행 연구들을 분석하면서 연구의 필요성과 타당성 등을 검토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연구가 이미 존재하는 연구인지, 유사한 연구가 존재한다면 내 연구는 그 연구와 어떻게 다른지, 어떤 다른 관점으로 학계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지 판단해야 했다. 그 결과, 가나 북부지역에서도 내가 생각하고 있던 연구가 진행 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 유사 연구들이 있긴 했지만, 고유 민족을 주요한 변수로 다루는 연구는 찾기가 어려웠다. 특히 농민과 유목민을 비교하고자 시도한 연구는 없었다. 가나는 아직 한 번도 방문해 보지 못한 낯선 국가이지만 영어권 국가이고 참고할 만한 선행연구들을 비교적 찾기 쉽기 때문에, 나 같은 초보 연구자가 연구를 진행하기에는 오히려 니제르보다 더 적합한 지역이기도 했다.
정말 예상치 못한 기회로, 그토록 하고 싶었던 연구를 실행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이 생겼다. 너무나도 귀한 현지 동료 연구자를 만난 덕분이었다.
비록 이번 기회에는 니제르가 아닌 가나라는 낯선 국가에서 연구를 진행하게 되었지만, 이번 가나 연구를 통해 나의 시야와 관점을 더욱 넓힐 수 있기를 기대한다. 조금 더 큰 꿈을 품어보자면, 니제르에서 가나로 옮겨온 시선이 다시 가나에서 니제르로 확장되어 니제르에서도 연계 연구를 이어가는 꿈을 그려 본다. 동시에, 니제르에도 평화와 안정이 어서 찾아오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