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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헬, 유목민, 풀라니

가나 북부지역 연구 에세이 ②

by 비욘드발전연구소

서아프리카에 위치한, 국토의 80%가 사하라 사막인 니제르.


사막에 위치한 국가이니 만큼, 날씨는 뜨겁고 건조한 곳이다. 1년 중 약 3개월 가량만 비가 오고, 비가 오는 것도 2~3일에 한두번씩 내리는 수준이다. 기후학이나 지리학적으로 니제르의 북부는 건조(arid) 지역, 남부는 반건조(semi-arid) 지역으로 분류되는데, 이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보다 더 많은 양의 물이 땅에서 대기로 증발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우기 몇개월을 제외하고는, 수개월동안 대부분의 국토가 황량하고 척박한 모습을 보이는 곳이 니제르이다.

F8E48752-82AF-48C8-88B2-19D6BFF9F8CC.jpg 니제르의 수도 니아메

날씨가 날씨이니 만큼 니제르 북부지역에서는 농사가 불가능하다. 니제르 북부지역은 사하라 사막과 사헬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유목민족이 오래도록 생활해오고 있다. 대표적인 유목민족은 투아렉(Touareg)과 풀라니(Fulani). 투아렉은 오래 전부터 니제르, 말리, 부르키나파소, 리비아, 알제리 등 서북부 아프리카 여러 국가의 국경을 넘나들며 낙타, 염소, 양들을 기르는 생활을 해오던, 흔히 이야기하는 노마드(normad) 민족이다.


풀라니 역시 전통적으로는 유목 목축을 하는 집단이지만 투아렉보다 훨씬 더 넓은 국가에 걸쳐 분포하고 있다보니, 비교적 다양한 형태의 생계활동을 가지고 있는 민족이다. 우기 때는 특정 지역에 정착해 있다가, 건기 때는 풀을 찾아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반유목 형태를 지닌 풀라니 집단들도 있고, 아예 특정 지역에 정착해 농업이나 다른 생계활동에 종사하는 풀라니 집단들도 존재한다.


니제르의 남부 지역으로 내려오면 사하라 사막이 포함된 북부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건조하고 척박한 지역이다. 건기 때는 영락없이 사막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지역이지만, 비가 오고 난 후의 몇개월 간은 초록초록함을 느낄 수 있다. 모든 것이 바짝 말라버린 건기의 모습을 보면 이곳에서 어찌 농사가 가능할까 싶지만, 이곳의 사람들의 주요 생계수단은 농업이다. 3개월 간 수수, 조와 유사한 곡식 작물들(millet, sourghum)을 재배하고, 염소, 닭 등 작은 가축들을 키우며 생활한다. 수확한 작물들은 대부분 자체적으로 소비하고, 나이지리아 등 국경에서 판매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주민들에게 농사는 돈을 버는 경제적 수단이기 이전에, 가족들이 직접 섭취할 식량을 생산하는 활동이다.


남과 북으로 특징이 나뉘는 니제르. 주로 거주하는 민족들도 다르고 생계활동도 다르다. 큰 틀 안에서 나눠보면 북부는 유목민 중심, 남부는 정착 농민들 중심으로 지역의 인구가 구성된다고 표현할 수도 있다. 언뜻 보면 크게 접점이 없이 생활할 것 같은 두 부류. 하지만 이 지역의 연구를 찾아보면 유목민과 농민, 두 집단 간의 갈등이 꽤나 심각한 문제임을 알 수 있다.


특히, 기후변화로 인해 유목민들이 목초지를 찾기가 어려워져 남쪽 농민들의 농경지로 점점 내려오면서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농민들의 농경지에서 가축 방목을 하거나, 가축들에게 물을 먹이며 수자원을 사용하는 등 땅과 물의 사용을 두고 갈등을 빚다가 결국에는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심각한 폭력에 이르기까지 한다. 이러한 사건은 비단 니제르에서 뿐만 아니라 말리, 부르키나파소, 가나 등 비슷한 기후조건을 지닌 지역에서 다수 보고되고 있다. 니제르를 비롯한 사헬지역에서 연구된 유목민-농민 간 관계에 대한 연구는 대부분 이 갈등 문제를 다루고 있다.


반면, 두 집단이 인근 지역에서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는 경우들도 있다. 니제르에서 파견근무를 하며 보았던 경우가 그러했다. 수도에서 약 30km 가량 떨어진 농촌지역의 주요 집단은 농민들이었지만, 인근 지역에는 유목민족인 풀라니들이 정착해 지내고 있었다. 물론 유목민들이 공동체 생활을 하지는 않았다. 농민들의 마을은 200-300가구 규모의 사람들이 한데 모여 큰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면, 유목민들은 가족 단위로 흩어져 지냈다. 그럼에도 해당 지역은 유목민들이 정착한지 오랜 시간이 지난 곳이었기 때문에, 유목민 아이들의 학교가 별도로 존재했었다. 이 지역의 풀라니 사람들은 본인 소유의 가축들을 돌보거나, 정부가 대리 사육은 맡긴 가축들을 돌보며 생활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지역의 유목민들처럼, 풀이 없는 건기에는 남쪽 지역으로 이동해 생활하는 등 반유목 형태의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니제르에서 2년 간 파견근무를 하면서 농촌 지역을 대상으로 지역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했었기 때문에, 니제르의 농촌지역에 대해서는 꽤나 많은 정보들을 쌓아왔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니제르에 있는 동안에는 풀라니 사람들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갖지 못했었다. 사업지역을 오가는 길에 소와 염소를 치고 있는 이들을 자주 마주칠 수 있었지만, 당시에 나에겐 그저 그 지역의 소수 민족 정도로만 여겨졌다. 그렇게 니제르에서의 시간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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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제르 농촌지역의 학교(좌) / 풀라니 아이와 소(우)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풀라니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니제르를 떠난 이후, 석사 과정 공부를 하면서부터이다. 니제르가 위치한 사헬 지역에 대한 여러 논문들을 찾아보던 중 유목민에 대한 논문들과 연구프로젝트들을 보게 되었고, 그때부터 니제르 농촌지역을 오가며 자주 마주쳤던 풀라니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들의 삶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여러 지역을 이동하는 유목형태의 가축 사육방법이 풀라니 민족과 같은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생계 전략이라는 연구들을 보면서, 이들의 삶의 모습, 이들이 지닌 지식과 경험들을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사헬 지역이 유목민이나 풀라니 사람들에 대한 연구 자료를 찾아볼수록, 관련 연구들이 매우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불어권 아프리카이다 보니 영어로 작성된 논문이 적은 것도 이유겠지만, 농민-유목민 간 갈등관계를 다루는 논문이 대부분일 뿐, 유목민이나 풀라니 자체를 다루는 연구들은 상대적으로 그 수가 너무 적었다. 사회로부터 관심받지 못하는 사헬지역 유목민과 풀라니, 이들의 소외감이 느껴졌다.



니제르 외에 다른 지역에서 만났던 풀라니들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자신들의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세네갈 북부에서 만난 풀라니 사람들은 강 유역지역에서 쌀 농사를 지으며 지내며 그 지역의 주류 민족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반면, 세네갈 중부지역에서 만난 풀라니들은 수십년 전 유목생활을 마치고 도시 외곽지역에 정착했지만, 여전히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번 연구를 통해 만나게 될 가나 북부지역의 풀라니들은 내가 만나봤던 니제르의 풀라니들처럼 반정착 유목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니제르의 풀라니들과는 또다른 상황에 놓여있다. 가나 북부 지역의 풀라니들은 가나 외부 지역에서 이주해온 탓에 가나 정부와 사람들에게 여전히 외부인과 같은 존재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삶은 어떠할까, 특히 점점 가속화되는 외부의 여러 위협(기후 위기, 시장 불안정 등) 하에서 이들은 어떤 전략으로 어떻게 이 상황들에 대응하고 있을까. 특히, 인근 지역에서 생활하고 있는 농민들의 삶과는 어떻게 다를지, 두 집단을 함께 들여다 보고 싶다.


연구 환경의 여러 제약과 내 부족한 역량으로 인해 여러 한계점들이 많을 수밖에 없는 연구겠지만, 사헬과 유목민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누군가가 이 지역과 이곳의 사람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고 관심가질 수 있게 된다면, 그저 그 자체로도 의미있는 도전이 될 것 같다. 논문이라는 연구의 결과물을 떠나, 누군가의 삶이 또다른 삶들과 연결될 수 있도록 풀라니들의 이야기들을 가능한 생생하게 기록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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